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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_기찻길이 열리다

by 남연우

고향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대관령을 넘어 동해안을 왼편에 끼고서 쭉 내려가거나 충청도를 경유 상주 안동을 지나 영덕으로 빠져나가서 동해안을 우측으로 내다보며 위로 올라가거나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소백산을 넘어 영주를 경유하여 가는 길이 있다. 이 세 가지 길 중에서 그날의 교통상황에 따라서 제일 빠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머나먼 교통 오지 내 고향이 다가오는 12월 31일 드디어 기찻길이 열리게 된다. 기찻길 이름은 동해중부선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등한 세금을 내고도 기차가 다니지 않는 내 고향은 버스를 타고 아침에 길 떠나면 해 떨어져 도착하는 험지였다. 곧바로 가는 직행버스도 없었다. 서울 마장동에서 버스를 타면 강원도 진부를 거쳐 강릉에 도착 완행버스를 갈아타고서 가야만 했다. 이 길 위에 대설경보가 내리기라도 하면 굽이굽이 고갯길 엉금엉금 기어서 가면 열두 시간이 걸리곤 했다. 도로 교통은 많이 좋아졌지만 자가용이 아니면 지금도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 고단한 여정의 길에 레고 블록 같은 철도가 놓이고 이제 차 막히는 도로를 인내하지 않고도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새해 일출을 앞둔 예매 상황은 이미 매진이라고 한다. SRT를 타고 대구로 가서 동해중부선 갈아타고 고향에 도착 차 렌트하는 시간 감안하면 자가용으로 가는 시간이나 별 차이 없겠으나 하늘이 맑게 개인 날도 좋고 나직한 바람이 살살 부는 흐린 날에도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훌쩍 떠나는 이색적인 여정이 기다려져서 설렌다. 기차 창문으로 내다보는 동해 수평선은 더 멀리 시야를 원대하게 열어줄 것이다.


최근에 고향으로 가는 길은 소백산을 넘어서 영주로 갔었다. 풍기 IC를 빠져 점심때가 되자 예전에 들렀던 묵밥집이 생각났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메밀묵을 쑤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쩌면 폐업했을지도 모르겠다. 찾아가자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자식세대가 이어받아 식당을 계속 운영하고 있었다. 메뉴는 단일메뉴 전통묵밥, 조밥에 송송 썬 김치 김가루 양념간장 깨소금 듬뿍 얹은 메밀묵밥 김치 깍두기 명태포무침이 한상 나왔다. 출출했는데 먹어보니 옛맛 그대로이다.


주상절리 같은 육면체기둥 메밀묵을 국물을 헤쳐 건져먹느라 스뎅 그릇에 달그락 숟가락 부딪는 소릴 들으며 문득 이곳이 옛 주막 같은 정감이 들었다. 바지런히 발품 팔던 짚신이 자동차 바퀴로 바뀌었을 뿐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한 끼 식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절실하다. 그 옛날 소백산 죽령 고개 넘어가는 봇짐 단단히 동여멘 나그네, 과거시험에 낙방 한숨을 몰아쉬며 막 고개 내려온 나그네들이 이 주막에 들러서 허기진 배를 채웠을 것이다. 나그네는 그렇게 전통묵밥 한 그릇 후루룩 삼키고서 다시 길을 떠난다.


동지를 앞둔 해가 서산에 걸려 마지막 햇빛을 찬란하게 비추던 그 시각 먼 길을 달려온 차가 목적지에 이르러 브레이크를 밟고 고향집 골목으로 우회전하려던 그 찰나 어떤 풍경이 눈가에 가까스로 걸렸다. 저 너머 들길에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허리를 기역자로 꺾은 노파가 갈길 바쁜 석양보다 조금 빠르게 붉은빛으로 물들어 걸어가고 있었고 그 너머 예쁜 상아색 선박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어 검푸른 수평선을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 배를 보기 위해 차를 돌렸다. 그 배를 따라잡아야만 한다.

나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이 바닷가에 들판을 걸어서 갔다. 고향 바닷가에 일생일대 보기 힘든 아주아주 큰 배가 정박했다는 소문이 동네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전해졌다. 마치 큰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뱃고동을 울리듯이 시골 마을에 큰 이슈가 되었다. 학령기 전이니까 네댓 살 된 거 같다. 어린아이 눈에 처음으로 약간 흥분된 아버지 모습을 본 거 같다. 발이 작은 아이는 아버지 손에 이끌리다시피 아버지의 큰 걸음을 따라서 총총 뛰었다. 숨을 헐떡이며 바닷가에 도착한 키 작은 꼬마 눈에 거대한 배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큰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공동(空洞)을 보았다.


모래사장에서 선체로 건너가기 위해 동그랗게 구멍 뚫린 철판이 여러 개 덧대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 구멍에 조그만 발이 빠질까 봐 심장이 콩닥거렸다. 파도가 일자 철판이 출렁거렸다. 현기증이 일었다.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철판을 다 건너간 배 입구는 화물칸이었다. 어두컴컴했고 아버지는 갑판으로 올라가자고 이끄시는 것 같았다. 이미 겁에 질려 울고 있었던 아이는 가기 싫다고 발바닥을 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발길을 돌리셨다. 들길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큰 배에 올라서 큰 세상을 구경한 것처럼 자신감에 차서 앙감질 뛰어갔다.


석양에 물든 그 배를 보는 순간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구경 가던 그 배가 생각났다. 포구에 이르자 배는 사라지고 없었다. 수평선을 다 건너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방파제로 올라가 보았다. 북쪽으로 항해하는 배는 한줄기 청남색 수평선 위에서 산그늘에 가려져 그새 빛을 잃고 어두워져 있었다. 수평선과 만나는 하늘은 연보랏빛 분홍빛 연노란빛 연초록빛 하늘색으로 층위를 가르며 푸르렀고 그 아름다운 하늘 위로 이제 막 수평선을 뚫고 솟아오른 은백색 보름달이 배가 향하는 길을 살며시 굽어보고 있었다. 그 침묵의 공간을 함구하는 갯바위들 곁으로 차디찬 겨울 파도가 새하얀 포말을 일으켰다.


이 바다에 서면 언제나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이 바다는 태초의 원시 자연 그래서 나도 무일물 없어진다. 가식도 정체성도 잃어버린다. 무아지경 그 끝에 아스라이 서게 된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서서 푸근함을 느낀다. 내가 태어난 곳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나의 영원 나의 추억이 서린 이 바다. 하루해가 넘어가는 아무도 없는 이 겨울바다가 혼자만의 관능미로 황홀하다. 이 겨울바다와 함께라면 춥지 않다. 뜨거운 태양이 잠자는 이 바다는 따스하다. 이 바다를 보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


조금 전 아버지 묘소에 들러 인사를 하고 왔는데 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이 겨울에도 꽃을 피우고 계셨다. 색이 너무도 고운 철쭉꽃이 여러 송이 꽃을 피웠다. 활짝 핀 꽃송이 이제 피려고 부푼 꽃봉오리들이 겨울에도 꽃이 피는 봄이 한창이었다. 아,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해거름녘 음지인 그곳에서 아버지는 화롯불을 피우고 계셨다. 아버지도 보름달을 싣고 두둥실 떠가는 이 배를 보고 계실까. 고향에 기찻길이 열린다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전에 여러 번 말씀하셨다. 기차 타고 서울 딸네 집에 갔다가 부산 울산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면 참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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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g 이 겨울 봄으로 환생하는 아버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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