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자

by 남연우

_ 남연우



어떤 불순물도 끼어들지 않은

순도 100% 광선에

빨랫거리는 죄다 널어놓고

젖어 무거워진 생각도 꺼내 말린다


잎자루에 살짝 걸터앉은 가시광선이

유채색 물감을 덧칠하는 오후 창가의 풍경은

염세주의자의 아침 눈매보다

쾌활하고 더 깊어져 있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생각하는 의자에 앉혀놓은 온순한 아이에게

다가와서 뒷머리를 쓰다듬어

착한 사람이 되도록 은총을 내려주시는


가을볕은, 비타민이 들어있는 약볕이다

최고의 기도발이다


등짐 지고 고갯길 넘는 십이령 보부상같이

무지갯빛 파장 주렁주렁 달고

마른 들길 걸어가는

열렬한 광신자光信者가,


경전 한 줄 읽을 줄 모르면서

새로 맞이한 다육 신자들에게

양광의 복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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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光信者,

빛을 믿는 사람입니다.

산과 들에 광신자들이 넘쳐나는 계절이죠..

가을볕에는 마법의 기운이 들어있어요.

마술봉이 닿은 자리마다, 색채의 변주가 시작되니까요.


노랗게 빨갛게 갈색으로 물드는 나뭇잎을 보세요.

아름다운 광선을 꿀물처럼 빨아들이는 금잔화 산국 구절초 꽃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자신의 빛깔과 향기로 피어나고요.

가을장미도 찬스를 포착하네요.

내 마음의 장벽도 허물어져, 허물어져

자꾸만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 옛날 십이령 고갯길 넘던 보부상같이

등짐을 매달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싶은 계절.

염세주의자의 눈빛도 부드러워지죠.


빛은,

평화 그 자체입니다.

그 어떤 종교보다 위대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발이 생깁니다.

동그마니 고인 햇빛 속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할머니의 모습.

산골짜기 화전민이 사는 너와집 끝자락에 머문 햇빛 한 자락.

존 덴버도 -Sunshine- 노래했죠.

"내게 당신을 위한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항상 햇살이 당신께 비추기를..."


마법의 순간을 꽉 붙잡는 당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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