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김광섭 시 <저녁에> 인용
일교차가 벌어지면서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
메마르고 날 선 바람에 호숫가 갈대들이 서걱거리며 부대낀다.
허술하고 빈틈을 파고드는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서두른다.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문풍지를 돌려 막아야만 할 것 같다.
베란다에서 떡잎을 떨구며 묵묵히 더위를 견디던 동백들이 오늘 아침 들어 녹색 도톰한 꽃망울을 부풀렸다.
손가락 두 마디 열어놓은 창틈으로 밤기온이 급강하함을 알아차린 것이다.
처마 아래 세 들어 살던 눈치 빠른 제비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벌써 떠났을 것이고 북녘에 깃들어 살던 철새들은 그 바람과 함께 남녘으로 남하할 것이다. 가을은 이렇게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하며 떠남과 새로운 만남이 어우러지는 계절이다.
보름 동안 무채색으로 쏟아지던 빗줄기들이 여름을 훌쩍 데려가버렸다.
끈적거리고 치근덕거리던 여름을 붙잡고 귀청 따갑게 울어대던 매미 울음이 뚝 그쳤다.
두어 달 생존을 위한 칠 년의 기다림.
그보다 처절한 외침은 들어본 적 없으니 매미들은 짧은 생존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어느 날 문득 출현하였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시절인연이었다.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작 김환기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면점화 앞에 서서 까마득한 우주를 내다보았다. 네모 난 소립자들은 세포 같았고 그 안에 툭툭 찍힌 점들은 미토콘드리아 입자 같았다. 세포들이 모여 거대한 유기체를 조직한 하나의 생명체가 꿈틀대고 있었다. 감각을 수용하는 눈코입은 굳이 달려있지 않아도 무방하다. 영적인 심상, 심미안을 그려낸 마인드맵이니까. 세포 단위 입자들 사이로 여러 겹의 물결이 수평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신안 안좌도 고향의 바다를 가슴에 끌어안은 화가에게 바다는 우주이고 평생을 바친 오브제 아니었을까.
현미경적 미시 세계가 어느새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지는 거시 세계로 변하였다.
강약을 조절한 색채의 채도에 따라 별들 사이로 희뿌연 은하수가 흐르는 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의지로 헤쳐 모이는 우주의 길이었다.
우주에 흩어진 수많은 별들을 모아놓은 우리 은하를 화가는 한눈에 내다보듯 캔버스에 무심히 그려내었다.
신의 손길이 아니라면 인간의 심성으로 가능한 작업이었을까.
점화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서예붓을 들었다는 소개글을 얼핏 본 것 같다.
자의지를 실은 작은 점에 불과한 나는 지금 저 그림 어디쯤 실려 가는 것일까.
어디쯤에서 멈칫 꼬물거리며 저 무수한 우주의 길을 헤쳐 나아가는 것일까.
그 길은 또 어디로 영영 가는 것일까.
점과 점 사이 네모는 개폐 기능을 하는 문이다.
문을 닫으면 점은 움직이지 않는다.
점의 이동을 위해서 문은 기꺼이 열려야 한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문을 열고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수수께끼 같은 우주의 길을 해독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이 순간 나에게 와서 잠시 머물며 연결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저 억겁의 시간을 마주 대할 때 기적이어라. 이 생애가 아니고선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 그림 <우주>는 두 개의 소용돌이치는 서클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것은 무위자연의 음양, 빛과 그림자, 해와 달이 서로 상응하며 끌어당김으로써 조화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빛이 있어 어둠이 있으며 낮은 데가 있어 높은 데가 있고 물이 있어 불이 있는 것이다. 인과응보, 상대성 원리이다. 신성이 깃든 대작을 완수하고 예순한 살 나이로 영면에 든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람은 꿈을 가진 채 무덤에 들어간다."
"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섬에 보리가 누렇다 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부산에서 향과 똑딱선을 타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던 때...
맨해튼...
지하철을 타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해 본다." _ 1970 6 23
"종신형 죄수가 돼서 일하는 것 같고,
춘향, 일편단심, 페넬로페가 베를 짜듯이...
깜깜한 하늘, 밖에 한 번 못 나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뭇 소설의 여주인공들 중에는 반드시 한 사람의 소냐가 등장했었다.
소냐는 천진난만한 소녀일 때도 있었고 풍파에 시달린 젊은 여인일 경우도 있었으나 언제나 마음은 맑고 순진했으며 상처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 구원久遠의 여상女像이었다. 단테의 베아트리체처럼 영원으로 우리들을 이끄는가 하면 막달레나의 마리아처럼 사랑으로써 사람의 심장을 녹이기도 했다.
그 소냐의 영상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슴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나는 소냐한테서 배운 것이 많다.
그래서 내 구원의 여상이 소냐에게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소냐는 오늘도 내 가슴속에 사랑의 불꽃을 이루어 주니 어찌 된 일일까.
소냐를 제외하고는 내 마음을 부풀게 해주는 사랑을 나는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나의 사랑하는 소냐......"
사랑하는 소냐를 찾아서 떠도는 그는 지금쯤 어느 별을 헤매고 있을까.
늦여름 열기가 남아있던 9월 초순, 북악산 자락 미술관을 나오니 뭉게구름이 떠가는 하늘이 한 뼘 더 높아져 있었다. 비닐랩 두른 인절미를 가판대에 두고서 방앗간을 비운 주인장은 불과 네댓 걸음 떨어진 골목길에 앉아서 연신 부채질하고 있었다. 손에는 기다란 구슬을 꿴 염주를 굴리면서. 눈빛이 맑고 인도풍 분위기의 이국적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앉아서 서성이며 걸어오는 나를 저만치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동네 처음 오시나 보네. 떡 사실 거예요?"
"아니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지나쳤다.
후텁지근했고 입에 달라붙는 떡이 먹고 싶지 않았다.
집에 와서 후회했다.
염주알을 굴리면서 기다리는 할머니의 더위를 팔아줄걸.
언제 또 본다고...
_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하늘과 땅> 엽서 그림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