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중첩되어 살아가는 개인의 시간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과거를 촘촘히 소환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제어할 수 있다면 시간은 과거와 현재라는 씨줄과 날줄이 엮이면서 직조되는 캔버스 위에 어떤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나가는 과정이다.
시간이라는 화살표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도, 뒤로 물러서기도, 현재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피라미드형 첨탑 아래 안정적인 기반을 뿌리내린 기억을 더듬어 인식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몰입하는 시간을 할애한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시간이 흘러 흘러 좀 더 너그러워지면서 수용하게 된다. 관용의 품이 넓어지는 것이다.
며칠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아버지 편지를 보게 되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 인터넷 글방에 올려보고자 요청드렸더니 좋아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아버지 글을 우편으로 받아서 올렸던 시간이 일 년에 걸쳐 진행되었었다. 처음에는 조회수를 말씀드리고 혹 댓글이 달리면 아버지께 읽어드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기뻐하셨다.
계절이 거듭 지남에 따라 그 일이 점차 숙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남루한 기억을 전하는 일에 신선함이 떨어지고 있었다. 2020년 봄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편지글은 이듬해 봄 끝났다. 서랍에 꽉 찬 두툼한 편지봉투를 꺼내어 펼쳐보았다. 엊그제 쓴 것처럼 꾹꾹 눌러쓴 아버지의 필체를 보는 순간 눈가에 따듯한 모닥불이 타올라서 마음을 훈훈하게 데웠다.
아버지 글은 제목부터 서정적이다. '웃음 속의 지혜', '참배나무에 핀 아름다운 꽃이여', '꽃향기가 좋다 하나 잘 닦은 마음의 향기에 비하랴', '농부의 하루', '구름 타고 가는 나그네의 하루', '영원한 행복', '정년 퇴임사'까지 들어있었다.
주름 잡힌 편지지를 펴서 투명한 비닐 파일 안에 한 장씩 넣었다. 힘차게 뻗어나간 필체로 내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도 보기 좋게 차곡차곡 넣었다. 기억의 기수를 예전으로 되돌리자 자취할 때 보내주신 편지도 꺼내어 파일에 정리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지금의 내가 딸들에게 하는 말을 똑같이 전하고 계셨다.
"오토바이 조심해라. 낯선 사람 조심하여라. 새봄이 돌아오니 옷을 사 입어라."
더 젊어서 더 정교한 아버지의 필체를 보면서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피부로 확 체감되면서 그 품이 그리워졌다. 어릴 적 아이들은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어도 더 세심한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원한다. 칭찬이라든가 스킨십이라든가 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 부분이 빈 채로 성장한 나는 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웠다.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늘 겉도는 아이였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무거운 말씀으로 훈계를 하셨고 그 말씀은 어린 내 마음에 메아리쳤다. 언제나 점잖은 모범생은 객지에 나와서도 아버지 하라는 대로 말씀을 이행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뼈마디는 아버지 체형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펜으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 습성 또한 기다란 아버지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겨울 그믐달과 샛별을 좋아하고 구월의 아침 들판 말갛게 떠오른 햇살 속에 영롱하게 대롱거리는 이슬과 오월의 아카시아 꽃들을 사랑하신 감성을 빼닮았다. 그런 아버지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사람들을 좋아하셨고 나는 사람들을 슬슬 피한다는 점이다. 바다 곁에 사신 아버지는 낚싯줄 한 번 던져본 적 없는 농부셨고 나는 관조의 바다를 좋아한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6.25전쟁에 참전하신 역사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살아내다 보니 웃음을 거둔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다. 당신의 인생길이 너무 험난하여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거친 숨을 몰아쉬셨다. 소중한 불씨를 가슴에 품고 어두운 밤길을 말없이 걸어가셨던 아버지.
빈 페이지 없이 꽉 채운 클리어파일 표지 위에 <아버지 글 모음집> 이름표를 붙였다. 채울 길 없어 허전했던 마음의 여백이 아버지의 향기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 집에 짚고 오셨던 붉은색 명아주 지팡이도 거실 벽에 세워두었다. 남들은 고인이 마지막까지 소장했던 물건은 태운다는데 나는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지팡이가 내가 인생의 기로에 설 때면 올바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해 줄 것만 같아서 든든하다.
시간은 인정사정없이 나아가지만 시간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시간의 화살을 구부려 지난 시간을 들추어 본다. 다래덩굴을 엮은 설피를 신고 황막한 설원 위로 걷다 보면 시간은 둥글게 굽어서 환원한다. 내가 서있던 본래 그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