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
파리가 날아다닌다
영상 15도 바깥보다는 집안이 더 살기 좋아서 들어왔나 보다
현관문이 열린 찰나를 놓치지 않은 눈치 고단수 생존본능에 파리채 사용을 잠시 미루기로 한다
엄마는 전기장판 위에 얇은 여름이불을 펼쳐놓았고
표정이 굳어 있었다
말수도 없었다
며칠째 혼자 지내신 터라 생각과 감정을 꺼내지 못해 생긴 공허한 무표정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지난주 담근 김장 한 통을 황금 보자기에 싸서 바삐 떠난 길,
점심 무렵 고향 집에 도착
엄마를 모시고 맛집에 갔다
따끈한 국물을 드시고
자동차 안 온열시트를 틀어드리고
손을 잡아드리고
온기를 나누자 차츰차츰 엄마 표정이 풀렸다
가벼운 웃음을 지으시고
실개천 같은 말들이 졸졸 흘러나왔다
집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으셔서
차가운 밑반찬과 부실한 식재료들이 냉장고 안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저녁에는 뜨거운 떡국을 끓여서 드리자 맛나게 잡수셨다
하룻밤만 자고 가냐고 여러 번 물으시며 또 마음을 단단하게 걸어 잠그려 하신다
맥없이 다 풀어버리면 다시 잠그는 데 많이 힘드신 모양이다
주무시면서 내 손을 더듬더듬 잡으셨다
어둠 속에서 당신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려는 것 같다
안심하시곤 곤히 잠자는 숨소리 들려온다
머리맡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든 공예품들이 놓여있다
작은 스티로폼 알갱이들을 물감에 개어 붙인 꽃신,
신혼밤을 밝힌 원앙 화촉, 파우치, 종이 공예품들이
예쁘게 색칠되어 아버지 사진 앞에 자랑하듯 놓여있다
'야들 아버지, 이것 보소. 내가 했니더.'
원앙 화촉 때문인지 엄마는 신혼 첫날밤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
"첫날밤에 술상을 받아놓고 있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참 유별났데이.
창호지에 손가락 구멍 뚫어놓고 구경한다고 난리였데이."
아득한 전설의 고향 같은 옛일을 어제 일처럼 그려보는 엄마,
재봉틀을 잘하시고 손 맵시가 좋은 엄마는 색감 능력을 타고 나신 듯
선을 빗나가지 않으면서 칠한 색상이 조화롭다
우리 아이들의 미술적 재능은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였다
마당에 내려서서 금세 떨어질 듯 밤하늘에 매달린 별들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여름별들보다 더 정감 있고 깊이 있게 반짝거린다
당나무 가지에 걸린 코랄색 작은 별은 유난히 반짝거린다
누군가의 깜박거리는 눈동자가 모스 부호를 타전하듯..
그 별에게서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의 체온을 느껴본다
지난해 설 고향 집 마당에 서서 별들을 바라보았을 때는
불길함을 느꼈었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 큼지막한 별빛이 아버지를 곧 데려갈 것 같았다
그 밤 국자 모양으로 내려앉은 마지막 별이 고향 집 지붕 가까이 내려와서 더 그랬었다
같은 하늘 아래 잠들건만
별들을 잊고 산 도시의 내 집이 콘크리트로 하늘을 봉쇄한 감옥 같았다
먼저 간 영들의 신비로운 빛이 죽음을 가로지른 저편 세계에서 황홀하다
수평선에서 건진 동해안 햇빛이 투명하게 물드는 아침
엄마를 위해서
애호박전을 굽고
무청시래깃국을 끓이고
달짝지근한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불고기를 들들 볶았다
엄마는 한 상 차려냈다며 식사를 잘하셨다
곧 한파가 닥친다기에 니트류를 세탁망에 넣어서 세탁기 돌리고
파리가 찾아온 냄새의 근원을 수색하였다
원인은 김치냉장고였다
곰팡이 핀 밤봉지, 건어물, 생선이 부패한 통을 꺼내고
받침대를 들어내서 세척하였다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불러들이고 집안에 가둬진 공기를 내보냈다
이제 길 떠날 시간,
엄마는 다시 혼자가 된다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은 엄마를 안아드렸다
엄마가 용감하게 씩씩하게 잘 사시길 염원하였다
집 근처 무덤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지난해 이어 올해도 붉은 철쭉꽃을 이 겨울에 피워놓으셨다
산능선에 걸쳐진 빛이 사선으로 흘러들어 기적적으로 피운 꽃,
아버지는 하늘에서도 생명의 꽃을 가꾸셨다
피와 살과 뼈로 맺어진 부모자식 인연
아,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언제쯤 이 눈물이 마를 수 있을까
슬픔을 닦고 나자 고향 집은 저만치 멀어져 간다
그 빈자리 동해안 짙푸른 바닷물이 밀려온다
바퀴 달린 배를 띄웠고
지는 석양을 데리고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하였다
나는 또다시 혼자 눕는 엄마의 밤을 걱정하였다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엄마, 벽에 달린 보일러 맨 아래 빨간 버튼 눌러.
빨간 거 눌러."
엄마가 만든 꽃신과 원앙 화촉
말린 장미꽃을 엮어 내가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 엄마가 물려주신 손 맵시..
** 타이틀 사진_ 고향 밤하늘 별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