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낮달

by 남연우

보름을 나흘 앞둔 낮달이 수평선 위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겨울바다.

하얗게 질린 낮달마저 없었더라면 쓸쓸하여 뛰어갔을 것이다.

감정의 중량을 달아보는 모래사장엔 푹푹 파인 발자국이 뒤따라오고 갈매기도 떠난 이 바다가 무섭다.

내향적인 겨울바다는 애송이 흰 달을 외면하고, 마치 빛나지 않는 흰 달의 쓸모를 무시하듯 고압적이다.

수평선에서 멀찍이 떨어진 까닭도 바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리라.

하늘에 군림하지만 도무지 하늘 같은 바다를 어려워하는 낮달이 애처롭기는 나를 보는 것 같다.


하늘과 바다,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은 스카이블루 다크블루 그레이블루 세 겹의 파랑이 겹쳐 기묘한 대칭구도를 이루는데 그 사이 샌드위치처럼 들어간 모래사장은 이 엄격한 구도의 완충 역할을 수행하며 팽팽한 대립을 안식처로 이끈다. 그 많던 물새들은 어디로 떠난 걸까.


낮기온이 영하에 머문 중부지방에 비하면 동해안은 영상 3도, 포근한 편이다.

이마저도 추운 날씨라서 인기척이라곤 없다.

암초를 알리며 파도에 떠밀리는 노란 부표 등대가 파란 바다를 더 돋보이게 한다.

'바다'라는 고정관념을 없앤 이 공간의 개방성과 확장성과 탁 트임은 얼마나 매력적이고 멋진가.

무색의 깊이를 파고들면 푸름으로 귀결되는 저 색채 또한 수없이 나를 이 바다에 우뚝 세운다.

태양에 맞서는 달의 은근한 백치미 또한 은유적이다.


빛을 내기 위해 태양의 반대편에 서서 어둠을 기다리는 흰 달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푸름 뒤에 숨은 저 반쪽의 얼굴은 희망적이다.

곧 자신이 빛날 것임을 알기에 몹시 기대하는 표정이다.

온전히 드러내지 않은 감춤이 있어 수막새의 미소를 완성하듯 보는 이의 마음을 여백으로 채우는 반쪽짜리 낮달에 나의 얼굴을 덧대어 본다. 드디어 완성되는 하나의 얼굴, 싱긋 미소 짓는 드러냄과 감춤의 미학을 저 낮달에게 배운다.

예전에 감자를 깎는 삐딱 숟가락이 있었다.

놋으로 된 삐딱술(이렇게 부름)은 절반이 삐딱하게 파인 숟가락으로 감자껍질을 긁는 부분이 닳고 닳아서 반질반질 빛이 났다. 침착하게 해 넘어가는 시각을 기다려 서서히 테두리부터 빛이 날 무렵 저 달은 분명 감자를 깎는 삐딱술을 닮아가리라.


본격적으로 어둠이 배어들면 엄마의 시간은 오늘과 내일이 혼재하기 시작한다.

시계가 가리키는 자정이 없다면 오늘과 내일을 구분 짓는 가림막은 사라지고 만다.

언제나 현재진행형 오늘을 살뿐이다.

그리하여 밤 세수를 하고 난 엄마의 하루는 새롭게 시작된다.

그때부터 엄마는 주간보호센터 갈 생각에 얼굴에 찍어 바를 파운데이션을 손바닥에 떡칠한다.

주간보호센터 다녀와서 한숨 자고 일어났으니 또 갈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곧 먼동이 틀 것이라 여기는데 시계는 자정 전 아직도 오늘이다.

언제나 오늘을 산다면 오지 않을 미래의 걱정 불안도 없지 않을까.

행복한 미래를 위한 오늘의 여정을 생략한다면 그것도 권유할 사항은 못 된다.

다만 노인에게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도 무방하다.


식은 밥을 데우고 잔반을 챙겨 닭장에 갔다.

이 한파에 닭들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닭장을 관리하는 이웃 아저씨가 도시 집으로 가셨기 때문에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데 닭장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겨있다.

노끈과 와이어 소재 그물망으로 이중 삼중 둘러쳐진 닭장은 물 샐 틈이 없다.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모이는 바닥났고 물통도 보이지 않는다.

수탉 한 마리에 암탉 여덟 마리가 굶고 있었다.

뒤로 돌아가니 한 뼘 조금 안 되게 뚫린 부분이 있었다.

거기로 비닐에 담아 간 음식 찌꺼기를 뿌려 주었다.

마침 아랫부분이 평평한 횃대여서 음식물이 그 부분에 먹기 좋게 떨어졌다.

힘센 수탉이 먼저 올 줄 알았는데 용감한 암탉이 먼저 와서 먹기 시작했고 수탉은 그 뒤에서 기다렸다.

구석에서 몸통이 제일 작은 암탉도 먹이 냄새를 맡고는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녀석 순서는 제일 마지막이 되리라.

머무는 며칠간 닭모이를 챙겨주어야겠다.

수분을 보충할 수 있게 과일껍질도 투척해야겠다.

뚫린 구멍을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엄마와 데이트하러 나섰다.

솔밭이 우거진 식당에서 서로 입맛이 없다며 칼국수와 비빔막국수를 시켜서 먹고, 부엉이카페에서 사이좋게 엄마 한 잔 나 한 잔 자색 고구마라테를 마셨다. 엄마의 기억력은 때론 정확해서 여길 전에 다녀갔음을 알아냈다. 곧장 기억으로 직행하는 시간은 언어를 동반하지 않아도 햇살 한 자락을 얹은 이 행복한 동행만으로 의미는 충분하다. 한파를 떨치고 오지 않았더라면 누워서 지내는 엄마는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말을 걸고 함께 자고 이렇게 외식하고 차를 마시는 이 시간이 나와 엄마에게 다르게 읽힌다 하더라도 언젠가 흘리게 될 눈물 한 방울의 아픔을 조금은 덜 서럽게 덜어줄 것임을 안다.


코스피 5000 시대 각자 손익계산이 분주한 그 틈바구니 속에서 쫄쫄 굶는 닭모이를 주고, 노모를 돌보고, 겨울바다를 거니는 혼자만의 한적한 이 시간. 설날 꽉 막힌 귀성길을 뚫고 다시 올 생각에 머리가 어질어질하지만 차분히 빛을 기다리는 낮달을 만났고, 층계 사이 먼지를 끌어모아 뿌리내린 키 작은 광대나물이 분홍색 꽃눈을 틔운 걸 보았다.


춥다고 핑계 대지 마라.

할 일은 하는 낮달과 광대나물 앞에서 무슨 핑계를 대랴.

마땅히 도리를 다하고 나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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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 틈에 뿌리 내린 광대나물 좀 보세요!

이 한파에 여릿여릿 실눈을 뜹니다.

참 기특하죠?

솜털을 쓰다듬어주었답니다.

입춘에 맞춰 꽃을 피우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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