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처럼

by 남연우

2주 만에 되돌아간 고향, 안방 테레비는 또다시 먹통이 되어있다.

파란 화면이 위성 케이블을 연결하지 못해 멈춰있다.

엄마의 손끝에서 스친 오류임에 틀림없다.

빨간 전원 버튼과 채널 오르내림 두 버튼만 있으면 아무 문제 될 일 없기에 리모컨을 어떻게 봉쇄할지 잠시 고민하였다. 반짝 아이디어는 휴식할 때 번쩍 떠올랐다. 맨 상위 전원 버튼과 중간 채널 버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랩으로 감싸 친친 감고서 투명 테이프로 여러 번 돌려 감았다. 엄마의 손이 스쳐도 터치될 일 없는 무디고 뚱뚱해진 멍텅구리 리모컨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못 생겨도 엄마에게 효자 노릇 톡톡히 할 것이다. 우리 살아감도 불필요한 관계와 기능들은 과감히 생략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생활하는 것이 맑은 정신과 통찰력을 길러준다. 다양한 삶의 채널을 줄이고 멍텅구리 리모컨을 눌러본다. 평소 좋아하는 채널 한두 개로도 충분하였다. 어쩌면 주어진 수많은 선택권을 유예하며 자아도취에 빠진 건지 모른다. 널리고 널린 오락거리들을 언제든 취할 수 있다는 자기 착각 말이다. 거듭된 시간의 결이 만들어낸 소통의 윤기,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이미 선택한 내 것들이 나다움을 빛나게 해 준다.



설 특집 어떤 예고편을 보고는 혹하여 시간에 맞춰 시청하였다.

채식을 만드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수행을 하는 분이셨기에 정갈한 음식들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그분이 구사하는 말이 예쁜 화면에 재를 뿌리는 것 같았다.

만족감을 주는 시각과 달리 청각이 영 불편하였다.

설날 전 국민이 시청하는 공중파 채널임을 아시는 분이 현장에서 음식을 만들 때 반토막말을 사용하였다.

물론 젊은 피디 양반에게 편하게 건네는 말투임은 알지만 시청자들의 다양한 나이대는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조금 젊은 내가 그러할진대 어르신들 듣기에 많이 거북하였을 것이다. 모르는 타인들에 대한 우리말의 기본은 존칭어를 사용한다. 한 분야 최고 전문가의 자리에 군림할지라도 어법의 기본은 존칭이다. 어투 어휘 음색 그리고 음성의 온도까지 마음의 태도를 실시간 실어 나른다. 정갈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손길에 겸손하고 따듯한 마음을 곁들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혼자 만드는 명절 음식에 노동요는 빠질 수 없다.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재생목록을 틀어놓고 세 가지 나물을 장만하였다.

고사리를 삶고 도라지 껍질 벗기기는 도움을 받고 초록색 섬초는 다듬어 데쳤다.

무치고 볶음은 설 당일 아침에 할 생각이다.

대구전을 노릇노릇 부치고, 백조기 민어 가자미를 비 맞은 댓잎을 깔아서 찌고, 깍둑썰기 한 무를 고기랑 같이 조선간강을 넣어 들들 볶다가 두부 버섯 투척 탕 끓이고, 배 사과 양파 착즙 오미자 간장 청주 맛술 마늘 파 송송 참기름 후추 촤악 뿌려서 갈비 양념을 재고, 흰자 노른자 구별한 지단을 부치고, 돌김을 구워서 얌전하게 잘라놓고, 떡국 육수도 미리 내놓았다.



우중충한 바람을 데려와 우수수 댓잎을 흔들면서 비 내리던 날씨가 설날 쾌청한 하늘을 데려왔다.

전날 미리 준비를 해놓아서 빠르게 음식을 만들어냈다.

남들은 명절 제사 없앤다고 난리지만 아버지를 보내드린지 이태, 정성 들인 제사 음식을 간소하고 차분하게 차렸다. 준비할 땐 힘들지만 차려놓고 보니 다 산 사람들이 먹는 명절 음식이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처럼 새해인사를 예를 갖추어 행하는 것이었다. 제사를 굳이 짐으로 여길 필요가 없었다. 다만 임하는 마음의 태도에 짐이 될 수도 있고, 기쁨이 될 수도 있다. 내게는 기쁨이었다. 아버지 사진을 모셔놓고 절을 하는데 이 년 전 푸른 마고자를 입혀드리고 아버지께 세배하던 그 마음이 되살아나 기뻤다. 산소에 가서 절을 할 때 딸은 이렇게 말하였다.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엎드린 순간 진한 감동의 물결이 샘솟았다.

마치 아버지가 살아계신 듯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오냐"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는 느낌이 확 체감되었다. 그렇다. 새해 복은 고인께도 필요한 소중한 인사이다.

어쩌면 우린 동시에 두 개의 시제를 살아간다.

이전의 삶과 현재의 삶이 동시에 교차하며 서로 영향력을 미치는 영적인 삶이 그것이다.

어느 세상에 계시든 존재하시는 아버지께 지상의 딸과 손녀가 진심으로 빌어드리는 새해 인사와 명복을 아버지는 알아차리실 것만 같다. 시공간을 건너뛰어 연결된 염원이 영적으로 충만한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께 손녀가 건네는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보다 더 정감 넘치는 새해 인사를 들어본 적 없다.



하룻밤 사이 마당 뜨락에 있는 진달래나무가 분홍색 꽃망울 하나를 깨웠다.

분명 전날 입을 다문 겨울눈에 불과하였는데 신기한 일이다.

빗물을 머금고 화창한 햇살에 겨울잠이 화들짝 깨서 일어난 작은 꽃망울에 감탄사가 나온다.

올해 첫 진달래 꽃봉오리를 설날에 보았으니 올 한 해 복이 있으려나.

따사로운 햇살의 감질난 구애를 알아차리셨는지 엄마가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신다.

때를 놓치지 않고 잠바와 목도리를 챙겨 입히고는 보행 보조기를 붙잡고 운동을 하게 했다.

혼자 걸으실 때는 느릿느릿 느림보 움직임이 달리기를 하듯 빨라지신다.

바퀴를 따라서 잘도 걸으신다.

골목길을 나가서 우물이 있는 우물골을 따라서 마을 제일 윗집까지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신다.

조금씩 가빠지는 숨을 몰아쉬며 그래도 민첩하게 걸으신다.

내리막길에는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동행하며 곧 도착할 봄을 노래하듯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노래를 부르자 엄마도 따라 부른다.

엄마에게 약속받았다.

날씨 좋은 날에 매일 운동하겠다고.

엄마 운동도 시켜드렸으니 슬슬 출발해 볼까.



오후 세 시 반 출발 상경길에 올랐다.

고향을 상징하는 두 마리 은어가 마주 보는 은어다리를 지나는데 파란 하늘과 바다, 왕피천이 만나는 하류 지점 은어 비늘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은어는 바다빙어목에 속하는 조기어류로, 민물에서 부화해 바다로 내려가 자란 뒤 봄에 강으로 올라와 가을에 산란하고 하류로 내려가 죽는 회귀성 어종이다.

이 땅에서 나고 자라 타지에서 살아가지만 수없이 많은 날들 고향으로 회귀하는 나도 은어가 아닐까.

아직 남아있는 윤기 나는 비늘과 내 모든 창작의 원천 또한 고향의 회귀를 통해 거듭거듭 활력을 되찾는다.

봄은 새봄이어서, 여름엔 싱그러운 파도가 좋아서, 가을은 금강송이 품은 솔향이 좋아서, 겨울에는 텅 빈 들녘과 맑고 찬란한 별빛이 좋아서 무엇보다 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올 때 나는 진정 나다워진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열 시, 몸은 고될지언정 도리를 다 하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나는 참 좋다. 탄력적인 비늘을 뽐내며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물고기들에 비하면 이해타산에 둔감한 편인 나는 멍텅구리 은어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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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 마당에 맺힌 진달래 꽃봉오리,

봉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단 하룻밤 새 겨울잠에서 깨어난 영민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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