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남연우
먼지 속으로 걸을 때는 모른다
눈앞이 침침해도 그러려니
숨이 막혀도 그러려니
보이지 않는 길을 빗살무늬 비질
오늘 하루 갈 길 내면
새들이 먼저 와서 고운 발자국 반겨준다
지난해 떨어진 낙엽 나무들 발치로 되돌려주고
내게서 떨어진 생각의 파편들 무작정
쌓아두고 살았다
시간이 끌고 가는 이 모든 흔적
간신히 떠받친 붕괴
먼지바람이 분다
풍향계 반대쪽 바람이 걸어온 길
그 길 끝에서
향긋한 봄 미나리 내음 빗방울들이
지구별 그림자에 거울을 비춘
정월 대보름달을 적신다
메마른 분화구에 붉은 꽃이 핀
블러드문,
먼지가 씻겨 저절로 드러난 길
봄비가 다녀간 직후였다
어제 36년 만에 뜬 정월 대보름 블러드문 보셨나요?
수도권은 구름에 가려져 달이 그림자에서 벗어날 무렵 부분 개기월식 보았답니다
신비로운 블러드문,
불그스름 꽃이 핀 달의 얼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겨우내 가득 쌓인 먼지를 씻겨준 봄비,
저 달 분화구에도 내렸다면 분명히 잠든 꽃씨를 깨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