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은 나무 친구

by 남연우

_남연우



벌거숭이 나무들은 추위를 그저 견디는 줄 알았다

두터운 살갗 위로 고드름 맺혀도

끄떡없는 줄 알았다


삭정이가 되어 부러지는 가지를 보고서야

나무도 동상 입는 허약체임을 알게 되었다


정동 거리 나무들이 옷을 입었다

뜨개질한 줄무늬 땡땡이 노르딕 사슴 스웨터를 입고

허리를 감싼 나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안아주었다


간지럼을 타는 나무가 움찔, 배꼽 웃음 짓는다

가끔 나무에 기대어 얘기하고 아는 척하는

나무 친구 한 그루, 있어도 괜찮겠다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를 곁에 두어

옹그린 움 각피를 뚫어 새봄 손 편지글

처음 내미는 날에


아스피린 먹은 나뭇잎들이 비쩍 마른 모습으로

멀리멀리 떠나는 날에


나무 아래 작은 탁자 마주 보고 함께

차를 마시고 싶다


밀어내는 각질을 재미 삼아 벗겨주면서

뽀얀 속살 온기 손끝으로 만져볼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멋진 옷 한 벌 입혀주겠다

흰 눈 내리는 날에는,

자작나무가 거기 서 있음을 알 수 있게

나뭇가지에 리본 달린 예쁜 방울을

달아주겠다




bird-house-5770661_1920.jpg Image>> Pixabay



이 겨울에 우뚝 선 나무들의 가냘픈 실루엣을 바라봅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한파에 맞서게 하는지

위축되지 않은 당당한 그 모습에 눈길을 끕니다.

코트를 입고도 팔짱을 끼고 동동거리는

우리.


거추장스런 군더더기를 다 버리고

내면의 본질을 향해

안으로, 안으로 수그릴 때가 아닌가 합니다.


며칠 전 내린 첫눈은 헐벗은 나무들에게

순결한 드레스를 입혀주었어요.

발치 아래 자작자작 끌리는 그들의 맞춤복은

반나절 파티로 끝나고 말았지만

저마다 키높이와 체격에 꼭 들어맞는 의상을

제작한

흰 눈.

진짜 훌륭한 디자이너 아닌가요...


요즘도 정동거리 나무들이 옷을 입는지 모르겠습니다.

배꼽티만 걸쳐도

정말 따스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갔었죠.

나무 수액이 그곳을 통과할 때 데워지니까

핫팩을 붙인 거나 다름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흰 눈 날리는 희뿌연 눈보라 속에

자작나무들은 본격적인 숨바꼭질 놀이를 합니다.

너무 순수해서 안 보이는 그들을 위해

술래가 되어도 좋은 기다림.


훗날

마당이 딸린 작은 집에 살게 되면

제일 먼저 자작나무를 심겠습니다.

핏이 딱 들어맞는 옷을 입혀주고

예쁜 방울을 날씬한 가지에 달아주고 싶습니다.


사람과 만나기 어려운 이 시기에

집 근처

아님 즐겨 가는 산에

자신만의 나무 친구 한 그루 사귀는 건 어떤가요.

겨울을 나는 그들의 겨울눈을 관찰하면서

새순이 돋는 봄을 기다려봄 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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