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자작나무

by 남연우

_남연우



겨울 산 외진 기슭

육각형으로 결빙된 세상 모든 눈물이

어깨를 부딪치며 쌓여갑니다


순백의 첫눈 위로 그대에게 가는 거리는

오직 열 걸음

첫눈에 반해서 첫 발자국 남깁니다

얼어붙은 발걸음 밤새워 걸어봐도

빙빙 맴도는 둥근 울음


설해목 부러진 자리 생살 파고드는

아픔이, 거뭇거뭇 고입니다

티베트 고원 날리는 오색 깃발처럼

오체투지에 쓸린 살갗이

바람의 말을 전하는 허공


푸른 가마솥 아궁이를 지어놓고

자작자작 흰 불 지펴

윗목에 선 그대 언 몸 녹입니다

휜 등골에 두터운 어둠 괴고서

오늘 밤 무슨 꿈을 꾸고 계시나요


달빛에 숨겨둔 그림자를 꺼내어

인형극 놀이를 하다 그만 까무룩 잠든 날들

은가락지 낀 손으로 뽀야니 입김을 붑니다

평생 기다려도 좋습니다

이대로 서서, 휘파람을 붑니다





그림>>D. YOUNSEO



오직 열 걸음이 모자라서

빙빙 맴도는

둥근 울음을 본 적이 있나요?


첫눈에 반해서

밤새워 걸어간 첫 발자국을 본 적이 있나요?


새벽빛에 푸른 발자국이

길을 냅니다.


겨울 숲 속에 우뚝 선 자작나무 한 그루의

설해목 부러진 흉터를

봅니다.

나무는 아픈 자리를 마디 삼아 딛고서

한 뼘 하늘로 자라납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백설 같은

뼈마디를 흰 손으로 쓸어내리며

바람의 언어를 노래합니다.


설원에 달빛이 찾아든 밤이면

꼭꼭 숨겨둔 그림자를 꺼내어

인형극 놀이를 합니다.

옆에 선 다른 나무들도 따라 합니다.


두런두런

웅웅...

새벽이 올 때까지


고독의 결은

나이테가 되어 독창적인 무늬를 새기는 나무들

고독한 사람도

글을 씁니다.

시를 짓습니다.

자작시!


혼자 반짝이는 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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