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길을 떠나 전에 일하던 안주 비행장으로 다시 왔다. 우리들이 기거할 민가는 바뀌어 새 주인과 만난다. 안주인의 남편은 국군이 북진했을 때 치안요원으로 활동하다 국군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원수처럼 대해야 함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갑게 맞아주고 보살펴주어 안심이 될 정도이다. 우리는 궁금했던 북주민의 생활상에 대해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그분은 부모 자식 간의 대립, 이웃 간의 감시 등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부자간에도 아버지는 비당원, 아들은 노동당원으로 이념이 갈라져서 대립각을 세운다고 한다. 낮에는 공동작업장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사상 주입교육 또는 온갖 회의, 작업장 배가운동, 궐기대회 등 잠시도 쉴 여가를 주지 않아서 살기가 팍팍하단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런 조직적 폭력에 대항해 한마디 불평이라도 했다가는 당대회 때 당원 자격 아들이 아비를 대중 앞에 불러 세워 맹렬한 추궁을 하고 아버지는 속수무책 눈물을 흘리며 자아비판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웃 간에도 4, 5호가 한 조가 되어 갑이라는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을이라는 사람이 갑보다 먼저 리인민위원회(우리의 이장과 같음)에 통보하면 갑이 늦게 알렸다고 해서 처벌을 받게 되어 사는 것 자체가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벌하다는 것이다. 끈끈한 혈육의 정을 사상으로 날조된 예리한 도구로 잘라내고 사이좋게 인사하던 이웃사촌을 칼눈을 치켜뜨며 감시하는 사회에 우리가 지금 몸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앞으로 언행에 더욱더 각별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평안도의 집 구조는 방이 여러 칸 나누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큰 방 중앙에 커튼 같은 가리개를 쳐놓고 사랑방 안방 건넌방을 구분해놓았다. 커튼 밑으로는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낯선 손님도 이런 구조의 방에서 잠을 청하고 생활한다. 어느 날 다른 집에 투숙했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일을 내고야 말았다. 밤에 일어나 용변을 보고는 잠결에 방을 잘못 찾아간 건지는 몰라도 주인집 과년한 딸이 잠든 건넌방으로 무단 침입한 것이다. 주인아저씨에게 바로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기 망정이지 사고 제대로 쳤다면 그는 즉결 처형 당했을 것이다.
안주의 비행장 작업은 전과같이 언제나 야간을 이용하고 낮에는 쉰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군계일학은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한눈에 띄어서 띄는 게 아니라 어떤 다급한 상황이 난 사람을 절로 가려내는 것이다.
전쟁이 휩쓸고 간 포로의 몸으로 자기 재능을 그저 잠재우고 있을 뿐이다. 한 번은 동료가 급성맹장염에 걸려 배를 움켜쥔 채 생사를 헤매고 있었다. 적지에서 병원은 어디 있고, 있다 한들 포로병에게 의료혜택을 줄 리 만무하다. 포로병 한 사람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 데서 맹장이 터지면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르는데 우리 일행 중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어떤 분이 급히 다가와서 환자의 배를 만져보고는 이대로 두면 환자 생명이 위태롭다고 한다. 그분 말이 이대로 죽으나 해보고 죽으나 마찬가지라면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자신을 외과의사라고 소개하였다.
곧 몇 사람이 달려들어 환자의 몸통과 사지를 붙들었다. 이제부터 동료가 살고 죽는 일은 하늘 소관. 의사라는 그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의료도구라고는 불에 그슬린 식칼과 피 닦을 수건 몇 장으로 마취도 없이 생사람 배를 가르고 맹장을 떼어냈다. 재갈을 물린 환자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시커멓게 변하더니 이내 창백해졌다. 그 고통 쳐다볼 수가 없어 남아있는 우리들은 자리를 뜨거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도 엎드린 채 숨죽였다.
지옥으로 추락하던 그의 비명이 바느질하는 실과 바늘로 복부를 꿰매는 동안 모기 같은 소리를 내며 통증을 수습한다. 큰 위기를 모면했으나 수술에 뒤따르는 사후 처치도 막막하다. 소독약이라든가 항생제의 도움 없이 자력갱생으로 뒤탈 나지 않도록 기도할 따름이다. 먹는 음식도 옥수수밥이 전부인데 영양 보충은 꿈도 못 꿀 일. 그런데도 환자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오직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력과 굳센 다짐으로 똘똘 뭉쳐진 정신의 면역력이 병균을 박멸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 없는 주간이라고 맘 놓고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폭격기 B-29 편대가 날아와서 밤새 일해놓은 활주로에 폭탄 세례를 퍼붓는다. 비행장과는 꽤 먼 거리에서 쉬고 있는 우리들 눈에 “쏴” 소리가 나면서 B-29 기체 밑바닥에서 새카만 덩어리들이 나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활주로에서 튕겨져 나온 흙더미가 하늘 높이 흙 사태를 일으킨다.
허수아비처럼 비쩍 마른 우리들의 힘을 합쳐 꼬박 밤을 새워 닦아놓은 활주로에 대한 보답으로 폭격기가 날아와서 보란 듯이 파괴한다. 그 기분 통쾌하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우리는 커다란 웅덩이가 된 그 자리를 밑 빠진 독처럼 메웠다.
B-29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미국의 전략폭격기이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로 유명하다. 당시 미 공군 기지가 있었던 남태평양 마리아나 군도에서 이륙한 B-29는 일본의 주요 도시를 폭격하였다. 1945년 8월 남태평양 티니언 섬에서 이륙한 에놀라 게이로 명명된 B-29 폭격기가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였고 3일 후 박스카로 불린 B-29 폭격기가 나가사키를 원자탄으로 폭격하였다. 이 두 번의 원자탄 투하로 B-29 폭격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행기가 되었다. 조종도 어려워 당시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빨리 내리고 싶은 비행기로 알려졌었다.
B-29 폭격기가 적지의 공중에 나타날 때는 아군의 전투기 2대가 반드시 호위하고 적군 전투기도 동시에 뜬다. 폭격을 마친 B-29의 조종사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아군 전투기와 적군 전투기 간에 공중전이 붙는다.
파란 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좇고 쫓길 때 시뻘건 예광탄이 쉼 없이 앞 비행기를 향해 유성처럼 날아간다. 육안으로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할 수 없으나 검은 연기를 토하면서 서해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아군임에 틀림없다. 안주와 서해는 항로로 가까운 거리,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해상에는 아군 함대가 항상 주둔하고 있어서 그리로 날아가면 조종사의 생명은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간혹 화염 속에 추락하는 비행기를 버리고 낙하산을 타고 낙하하는 조종사를 미군인 줄 착각하고 괴뢰군이 총칼로써 달려간다. 낙하하는 조종사는 착륙하는 순간 지상의 살벌한 죽음을 당할까 싶어 미리 공중에서 서툰 우리말로 “중국, 중국”이라고 외친다.
적의 후방에 날아와서 놈들의 군사요충지와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당당한 기세로 기체를 돌려 남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곧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다. 언젠가는 우리들을 구하러 적진 깊숙이 날아와 줄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마다 앙상한 손마디에 힘을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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