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하고 나니 지저분하던 주변 정리가 끝났다. 이동 명령이 내려졌다. 여기서 평북 안주로 갔다. 안주 비행장 복구 사업에 투입되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존의 비행장 같지는 않다. 새로 건설하는 건지 폭격으로 파괴된 곳을 복구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높고 낮은 들판의 지형을 고르게 다듬는 일이었다.
높은 곳을 파내어 낮은 곳에 갖다 메우는 것이다. 찔통이라는 것이 있다. 이 찔통은 가마니를 접어 등에 지게처럼 짊어지도록 만든 것인데 삽으로 퍼주는 흙을 날라야만 하는 일이었다. 주간에는 비행기 공습으로 쉬고, 밤이 되면 작업을 해야 한다. 고된 일이었다.
작업을 하기 전 이들은 궐기대회를 연다. 전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내가 하는 일을 목표 초과 달성해야 된다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캄캄한 밤에 작업 감독관은 있으나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독촉은 없다. 그럼에도 해가 동녘에서 뜰 무렵이 되면 전날 배정받은 흙더미가 다음날 아침 신기하게도 높고 낮음이 없이 평지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작업이 계속되고 보니 나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신세다. 하루 세끼 밥은 그런대로 주고 있으나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야밤에 막일을 하니 우리에게는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의 연속이었다.
우리들의 숙식은 민간 부락에 배치되었다. 방이 크면 한 방에 1개 분대, 방이 작으면 네댓 명씩 배치되고 일일 분 식량이 매일 지급되었다. 쌀은 밭에서 재배된 거라 미질이 나쁘고 밥에 찰기가 없다. 부식으로는 된장, 콩기름, 소금, 약간의 채소였다. 이것으로 우리들이 스스로 밥을 해 먹어야 했다.
여기서도 동족애는 피할 수 없는 것인지 주인집 아들이 현재 인민군에 입대해서 전선에서 싸우거나 혹은 전사하고 유족으로 있는 처지이면서도 포로병인 우리에게는 친아들처럼 따뜻이 대해주었다. 우리들이 지급받은 쌀은 달리 처분하고, 부족하지만 미질이 좋은 자기들 쌀로 밥을 해서 준다. 부식도 찌게, 나물 등 먹음직스럽게 매일 제공해주니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때 그들에게는 한 집마다 가마니 100장씩 짜서 국가에 바쳐야 하는 막중한 노역이 배당되어 있었다. 볏짚으로 짜는 가마니 100장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고 그것을 꿰매야 하는 일이라 그들에게도 주야로 쉴 여가 없는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농촌 출신들은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말벗도 해주었다.
그들은 남한의 자유로운 생활상을 몹시 부러워하고 탄복하였다. 우리들은 새로 이동하여 민간 부락에 배치되면 그 집 주인의 성분부터 분석한다. 이 집 주인은 공산당 간부인가, 공산당원인가, 아니면 그들의 학정에 시달리는 비당원 집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는 일 자체가 고되고 현재 처지가 포로 생활의 가련한 신세, 불평심으로 하는 말이 그들의 정책에 좋을 리 없다. 공산당 간부이거나 당원 집이면 항상 언행을 조심해야 하고 눈치를 살핀다. 집주인이 비당원이면 그들과 한 편이 되어 마음 놓고 생활하고 언행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동 명령에 따라 북쪽을 향해 떠났다. 도착한 곳은 한만 국경선이 인접한 신의주이다. 광복 전 경의선 간선도로가 놓여있던 자리는 왕복 8차선 도로와 맞먹을 정도로 넓다. 그 길 위로 중공군이 8열 종대로 압록강 다리를 건너 남하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운송하는 장비는 모두 새것이며 군복 또한 전장의 화염이 묻지 않은 깨끗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미 쑥대밭이 된 한반도에 끝없이 밀려드는 외세의 군화 소리가 답답한 가슴 위로 짓밟고 지나간다.
거기에서 의주 방면으로 야간 이동을 하면서 부녀자들이 일하는 작업 현장을 보게 되었다. 시월의 찬 이슬을 맞으면서 맨발로 네댓 명씩 한 조가 되어 흙더미 가득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밀고 당기고 있었다. 초겨울 냉기가 살갗을 파고드는 이때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한마디 불평은 금물이다.
새들도 둥지 안에 날개를 파묻고 잠드는 시간 여자들의 노동력을 확보해서라도 달성해야 할 목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비 맞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인간의 권리를 아프게 묵과해야만 했다.
그네들의 조직체는 다양하다. 노동당원, 청년동맹 등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암암리에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작업량은 조직별로 할당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받는, 무서운 조직체이다.
행군은 계속되어 평북 구성 지방을 스쳐 가게 되었다. 심심산골 아름다운 곳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했던가. 높은 산이 내뿜는 물길은 수정처럼 맑아서 피로에 찌든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더니 이내 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천연색 색동저고리처럼 물들어가던 구성의 가을날은 자연스런 기쁨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속에 뛰어 들어가서 깨끗이 목욕하고 발도 쉬어가게 하고 싶다.
아무리 뛰어난 명승지라도 감상할 시간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깨끗한 천성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은 특유의 자정작용으로 제 모습을 지킬 줄 안다. 거기 비하면 이념이네, 사상이네 하면서 온갖 불순한 겉치레를 달고서 자신의 추한 모습조차 간파할 줄 모르는 인간의 타락은 무엇으로 구원받을 것인가. 선조들이 보전하여 대대로 물려준 금수강산을 동족의 피로 물들인 죄 어떻게 씻을 것인가.
그렇게 눈을 정화시키면서 평북 영변에 당도하였다. 여기서 이삼일 쉬어간다고 한다. 사람의 피부는 고무풍선과 같아서 실컷 대기에 노출되어 산소를 마시지 못하면 탈이 난다. 뾰족한 바늘이 풍선을 터뜨리듯 자꾸 건드리고 자극을 주면 성난 피부는 미처 몰랐던 풍선을 부풀린다. 내 몸에 이토록 많은 풍선이 숨어있었던가. 터진 풍선은 딱지가 앉을 때까지 말썽이다. 계속되는 행군으로 인해 군화에 쓸리던 내 발에도 물집이 여러 개 생겼고 핏물이 스며들더니 쉬는 동안 꾸덕꾸덕 마르기 시작한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민족의 애창시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이 여기에서 피고 지는 줄은. 알고 보니 김소월 선생의 고향은 우리가 막 지나온 구성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은 영웅호걸보다는 시인을 길러주었다. 10월 말이라 곱게 핀 진달래꽃은 볼 수 없지만 새봄이 돌아오면 삼천리강산을 남에서 북으로 아무 제약 없이 휴전선을 넘어가는 봄꽃 소식은 수채화 물감 번지듯 이산가족의 애타는 마음 또한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여놓을 것이다.
영변의 약산은 해발 480M로 그리 높지 않으나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진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였고 지형이 품고 있는 약초와 약수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찔한 바위 벼랑에 발을 내디딘 진달래꽃은 평지의 꽃보다 빛깔이 곱다. 위험을 무릅쓰고 활짝 피우고야 말겠다는 꽃의 의지가 강한 빛깔로 표출되는 게 아닐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의 진달래꽃이 포로병 신세로 찾아든 우리들 걸음걸음 한스러이 맺혔다 시들어버린다. 지금은 원자로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영변 땅, 3대에 걸친 폭정과 인류를 위협하는 무서운 플루토늄 독소를 지하에 품고 있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돌아오는 봄은 무구한 진달래꽃들, 그 골짜기에 피워내겠지. 진달래는 우리 민족의 한과 눈물을 먹고 피어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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