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혹한 속 포로병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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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2월 13일, 측면에서 전후방에서 중공군의 산발적인 공격이 심해지고 있다.

아군의 주력 부대원도 흩어져서 열 명씩 대여섯 명씩 무리 지어 가던 중 납치되고 만다. 나도 오후 3시경 대여섯 명의 병력과 함께 이동하다 중공군에 포로가 돼버렸다. 그 순간 내가 갖고 있던 카빈총을 손에 쥐고(군인은 총이 생명이다) 두 손을 들었더니 중공군 한 놈이 내게 총구를 겨누었다.

‘아, 여기서 죽는구나!’


맥이 스르르 풀리면서 만감이 교차하는데 옆에 있던 전우가 손에 쥔 총을 던지라고 말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아직 총이 들려 있었다. 재빨리 아무 쓸모없는 물건처럼 땅에 총을 내던졌다. 그제야 견주었던 총구가 돌려졌다. 단 몇 초 동안 아찔한 생과 사의 갈림길이 오고 갔다.


그로부터 사흘 동안 내리 굶주렸다. 함께 있던 신병 몇 사람이 어디서 구했는지 보리쌀 반 돌 반 삶아낸 야생 날짐승의 먹이처럼 보이는 식량을 같이 먹자고 한다. 마지못해 한 술 입에 떠 넣으니 모래주머니가 없는 사람의 혀로서는 씹을 수가 없다. 돌이 굵고 너무 많아서 목이 메는데 미군 중령 한 사람이 다가와서 컵을 내밀었다. 그 역시 배가 고프니 한 술 달라는 거다.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동정심이 밀려왔다.


혈연 지연 학연도 없는 이역만리 동족의 혈연끼리 싸우는 타국에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것일까. 참된 인간의 가치가 훼손당하는 것을 그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내버려 두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내 일처럼 달려와 주었다. 이 땅에 고귀한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하려고 목숨을 내어놓는 그들의 희생정신에 존경심이 우러났다. 우린 못 먹어도 미군에게 한 컵 내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반을 덜어 나눠주니 미군 중령은 버리지 않고 미군들이 수용된 곳으로 귀한 먹거리라 여겨 가져 갔다.

나흘째 되는 날 처음으로 중공군이 콩을 삶아 주었다. 사흘 동안 굶은 데다 콩을 먹고 보니 배 속이 뒤틀리고 연거푸 물을 찾는다. 얼어붙은 개울물을 깨고 닥치는 대로 퍼마시고 얼음 조각도 씹어 삼켰다. 배가 “구르렁~ 구르렁~” 소리 내며 설사가 멈추질 않는다. 며칠이 지나자 어둠 속에 이동이 개시되었다.

도로 양측으로 세워 앞뒤로 중공군이 집총 경계하고 북으로 이동하는 대열은 칠흑에 매몰되어 보이질 않는다. 오직 한 걸음 앞서 걷는 앞사람에 의해 나의 좌표는 이동될 뿐 새벽이 되면 어느 촌부락 빈집에 수용되었다. 밤새 100여 리를 보행하다 보면 손, 발은 물론이고 숨결에 눈썹까지 모두 얼어붙어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배가 고프면 잠도 잘 수가 없다. 이것이 생지옥이었다.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고 추운 밤길 끝도 없이 걸어갈 때 잠에 취해 대열을 이탈하여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사방에서 죽음을 경고하였다.


이때 나를 그 무서운 추위로부터 살려준 건 바로 우연히 얻어 입은 파카이다. 점퍼보다 훨씬 여유 있는 파카 소맷자락으로 양손을 깊이 찔러 넣고 팔짱을 껴서 걸어가면 훨씬 따뜻하고 동상도 예방할 수 있었다. 고급 장교 옷을 입고 있는 나를 중공군이 지휘관으로 오해할까 봐 허리에는 새끼줄을 졸라매고 빈집에서 구한 옷가지로 목도리를 했다. 머리에는 수건을 둘러 쓰고 손도 허드레 천으로 감쌌다. 추위에 얼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고 허접하게 보이기 위한 위장술이기도 했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팔짱을 낀 채 밤새 걸어가노라면 굳은 어깨가 팔을 붙잡고 놓지 않아서 한참을 낑낑대며 움직거려야 소매 속에 감춘 손을 빼낼 수 있었다. 얼굴을 감싼 목도리는 얼음 투성이었다.


중공군은 이동 내내 야포를 말이 끌고 가게 했다. 선두에 선 큰 말 한 필, 좌우로 따르는 작은 말 네 필, 총 다섯 필의 말이 밤길을 함께 했다. 얼어붙은 땅 위를 걷는 금속성 말발굽 소리와 이따금씩 들리는 말들의 푸념만이 이 가혹한 행렬이 어둠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오늘날에도 13억이 넘는 세계 1위 인구를 가진 중국의 6.25 전쟁 개입 수단은 인해전술 즉 사람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이다. 앞 병사가 죽으면 뒤 병사가 총알받이가 되어 밀고 나가며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어붙이는 공산주의의 만행은 자국의 인명을 총알 방패로 밖에 치부하지 않는 극악한 광기로 치닫고 있었다.

금화를 지나 철원 땅에 도착하니 여기에는 열병이 번져 입으로 토하고 열이 나는 전염병이 나돌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는지 먼저 도착한 포로병들이 환자가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도, 환자의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들어도 어느 한 사람 전염된 이 없었다. 무서운 세균도 강한 정신력을 이기기는 힘들었나 보다.


몇 날 며칠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행군 끝에 도착한 곳은 성호리 방공호 앞이었다. 그날부터 방공호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닥에는 볏짚을 깔아놓았고 바람을 막아주니 따뜻하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의지로만 버텨낸 강행군이었기에 접힌 뱃가죽이 등허리에 가 붙어도 따듯하니 잠이 쏟아진다. 쓰린 배를 움켜쥐고 깔아놓은 볏짚을 헤쳐 더러 붙어있는 벼 이삭을 까먹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밤에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와 보니 이곳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평양으로 가는 전찻길이 복선으로 깔려있다. 부락명은 미림이라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림 비행장이었다. 밤늦게까지 환경정리를 하고 돌아왔다.


그 이튿날 소대를 편성하여 미림 마을 민가에 분산 입주하고 미림 비행장에 작업하러 가게 됐다. 여기에서 인민군은 우리가 입고 온 군복을 벗기고 인민군 군복과 작업화 등을 지급하였다. 우리는 벗어놓은 군복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였다. 주인집에 알아보니 우리가 입고 온 군복은 그 당시로는 고급 의류였다. 염색을 하고 약간의 손질만 하면 품질 좋은 의복으로 탈바꿈하였다. 평양을 왕래하며 밀수하는 사람에게 몽땅 팔기로 하고 돈을 건네받았다. 하도 배가 고프고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아서 이 돈으로 떡을 해 먹기로 합의하고 주인 할머니께 부탁하기로 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주인 할머니는 젊은 시절의 고운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계셨다. 혼자서 예닐곱 살 손자를 키우고 있었는데 소탈한 성품과 인자하신 마음씨가 얼굴에 내비쳤다. 할머니의 아들도 인민군으로 참전했을 텐데 인정을 나누는 일에는 사상이 가로막지 않았다. 까마득히 고향을 떠나온 우리들은 할머니를 내 부모처럼 모시고 존경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들은 그토록 먹고 싶은 떡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였고 할머니는 쾌히 승낙하셨다. 떡값은 충분하였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끈한 시루떡을 내어주셨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참으로 오랜만에 구경하는 먹음직스런 떡이었다. 우리 포로병 열 명과 인민군 분대장 한 명 해서 11명 분과 할머니 몫까지 나눠놓고 맛나게 먹으려는데 전원 집합하라는 전달이 왔다. 아쉽지만 그림의 떡을 각자 별도로 보관해놓고 집합장소로 갔다.


밤에 쌀을 운반하기 위해 40리 길 왕복하는 노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간에 일하고 40리 밤길을 다시 부림 당하니 불평심이 올라왔지만 여기서는 통할 리 없다. 투덜투덜 말없이 걷고 있었다. 각자 감당할 무게에 맞게 짊어지고 귀로에 오른 어느 지점에서 분대원 중 한 사람이 떡을 먹으라고 슬쩍 나에게 내민다. 분명 저녁에 우리가 먹으려던 그 시루떡이었다.


아무도 분대장에게 준 적 없는 떡이 버젓이 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다. 우리가 떡을 해 먹은 사실이 분대장에게 발각된 것일까. 우리 분대원 중 한 사람이 분대장과 내통하고 있다는 의심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이렇게 되고 보면 우리끼리 하는 일 모두 분대장에게 알려지게 될 터 비밀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포로 신분 우리에게는 비밀 유지가 참으로 중요했다. 만에 하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면 엄청난 시련의 메아리가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누가 내통하고 있는가.


떡을 분대장에게 준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걸으면서 귓속말로 평소 언행이 이상한 자를 가려보았다. 이북에 가까운 강원도 출신 전우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벌써 사상적으로 전향했을지 모른다면서.

의심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스르르 풀려버렸다. 우리들이 집합장소로 떠난 뒤 분대장이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때 주인 할머니께서 분대장 몫으로 맡겨둔 떡을 내주었는데 분대장이 그 떡을 먹지 않고 그대로 싸서 들고나갔다고 한다. 잠시 잠깐 전우를 의심한 못난 마음 부끄러웠다.





*제목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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