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겨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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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1951년 2월 11일, 다시 북진하여 강원도 횡성전투에 임했다. 2월 12일 저녁의 암호는 겨울비, 오후 5시경 고참병들이 술렁인다. 잠시 후 다발총 사격이 가해 왔다. 산을 타기 시작했다. 명령 계통은 없다. 각기 살기 위한 필생의 의지로 산 능선을 타고 헤쳐 모이는 점조직처럼 많은 병력이 이동하는 무리를 따라 남으로 가는 중이었다.


비명소리에 내려다보니 흑인 병사 한 사람이 다리에 박격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구원을 요청한다. 언어장벽을 뛰어넘는 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서 도움의 손길 건네주는 사람 없다. 또 국군 한 병사는 배를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비명과 함께 뛰어들더니 그대로 뻗는다. 유탄에 적중했나 보다.


산에는 잔설이 깔려있고 설한풍에 바람은 몹시 차가운데 사지에서 헤매고 있는 등에는 온통 식은땀이 흐른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진다. 전방만 보고 눈길을 헤쳐 가며 걷던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여성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넘어지고 있었다. 금녀의 구역인 전장에서 이 여자의 정체는 뭘까. 철모 아래로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고, 창백한 얼굴에 동그란 두 눈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고요함과 애절함이 빛나고 있었다.


태풍이 휘몰아치며 지나가는 밤하늘 운 좋게도 드러나 반짝이는 단 하나의 별처럼 마주친 여자, 철면피라도 외면하지는 못하리라. 헐렁한 군복을 대충 구겨 입고 물음표 같은 자신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 채 위태로운 바다 위를 폴짝폴짝 날아다니는 한 마리 나비처럼 보였다. 사나운 파도가 한순간에 손아귀를 벌려 할퀴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텐데 왜 날아온 걸까.


지금은 눈과 귀를 모두 닫은 번데기가 되어 철저히 기다려야 할 동면의 시간 아니던가. 겁을 모르는 여자에 대한 의구심도 잠시 무쇠도 삼킨다는 뜨거운 이팔청춘 남자도 눈밭에 빠져가며 산길을 간신히 오르는데 저 여성은 얼마나 힘이 들까. 나도 그렇고 여군도 포위된 신세, 포수로부터 도망치는 산짐승처럼 겁에 질리긴 마찬가지 후들거리는 두 다리는 맥없이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사선을 넘나드는 우리 두 사람의 묵비권은 동지로서 살아남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로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전부터 만났던 사이처럼 아무 말없이 그녀가 미끄러지면 나도 미끄러지고 내가 넘어지면 그녀도 넘어진다. 처절한 생존기에 예고 없이 나타난 여자는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라 굴러온 혹처럼 가혹하였다. 자꾸만 달라붙는 그 손을 뿌리치고 내 한 몸 가벼이 달아나고 싶다가도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동정심과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싹트고 있었나 보다. 지금부터 넘어야 할 산은 저 고지가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와의 싸움, 내 투지 위에 그녀의 작은 의지나마 함께 보탠다.


생각은 생각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산을 타는데 어느 시점에서 나도 미끄러지고 그 여군도 미끄러지면서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손에서 놓친 공처럼 저만치 아래로 미끄러져 휑하니 먼 거리가 생겼다. 애처롭지만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몸뚱이는 구해줄 여력이 없었다. 내게 먼저 다가온 것도 멀어진 것도 그 여자였으므로 나는 나의 길을 가야만 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단독 행동하는 패잔병의 선두가 보이질 않는다.


그날 저녁 암호는 겨울비, 밤길에는 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전투가 계속되는 산야에는 맹수를 비롯하여 하찮은 산새 한 마리도 없다. 짐승 그림자도 얼씬 않는 푸른 설원에 느닷없이 패잔병의 무리가 서너 명씩 대여섯 명씩 나타날 때는 머리끝이 쭈뼛 서고 식은땀이 내의를 적신다. 내가 “겨울비”하면 상대도 “겨울비”한다.


선창하는 나의 암호를 적병이 따라서 대면 어쩌나 염려된다. 십여 차례 아군과 조우할 때마다 적병은 아닌가 싶어 가슴은 두 방망이질하고 손아귀에도 계속해서 긴장의 체액이 배어난다. 긴긴 겨울밤 매서운 눈바람과 함께 산을 넘고 넘는 동안, 중공군의 피리 소리가 구슬프게 첩첩산중 어둠에 묻혀 들려온다.

가까이에서 혹은 먼 곳에서 부는 듯한 피리 소리는 포위망을 뚫고 후방 안전지대로 나가려는 패잔병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며 꽹과리 소리는 수많은 적군이 엄습해오는 듯 가슴이 서늘해지는 마법을 부린다.


배고픔은 잊은 지 오래 청각은 더 또렷해지고 환영처럼 들리는 그 소리는 이 세상 것이 아닌 천상의 몽롱함으로 다가온다. 차가운 눈밭에 엎드려 그대로 잠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며 귓불을 꼬집고 잡아당겼다. 두 눈은 감길 대로 감겨들어 꿈길을 걷는 듯 휘청대며 넘어지고 나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나어릴 적 국민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한학을 공부할 때 통감 책을 배웠다. 옛날 한패공과 항우가 천하 패권을 쥐려고 싸울 때 한패공의 모사인 장량이 전술로 쓰던 작전이 소개돼 있었다. 열 번 싸워 열 번 이기는 항우장사의 고집불통과 인간 됨됨이를 비웃고 결코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노래로써 상대 적군의 전의를 잃게 만들고, 사랑하는 처자식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유인책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간장을 녹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달빛은 교교히 흐르는데 맑고도 구슬픈 가락은 병사들의 심중에 사무쳐서 주효했다. 항우의 명장을 비롯하여 장졸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가니 결국 한패공에게 천하를 내주고야 말았다. 전설적인 이 전술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6.25 한국전에서도 사용됐으나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눈보라 휘몰아치는 차디찬 고지 바람과 함께 쌩쌩 귀밑을 지나가는 유탄이 죽음의 소릴 내는데 그들의 한가로운 악기 타령이 귀에 들어올 여지는 없다. 나는 보병이 아닌 포병으로서 적과 직접 교전한 적 없었기에 유탄이 지나가는 소릴 들으면 그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패잔병의 대열은 주저함 없이 앞으로, 앞으로 쉼 없이 나아갔다.


해가 영영 나타날 것 같지 않던 잔혹한 겨울밤이 지나가고 동녘 하늘이 아껴둔 태양을 데워 붉게 떠오를 때 적과 아군은 비로소 식별이 가능하다. 우리들은 산 능선을 타고 중공군은 산 밑에서 바짝 붙어 위쪽을 쳐다보며 허공을 향해 연속 쏴 올린다. 찰거머리 같은 그놈의 중공군을 증오한 나머지 고지 위에서 아군 서너 명이 누구의 지시도 없었건만 산 아래 한 명의 적군이라도 맞히겠다는 각오로 집중 사격을 가한다. 분노의 총알이 사람을 피하는 것일까.


저쪽에서 포복한 놈은 좌우로 데굴데굴 구르면서 집중 사격을 피해 은폐하고 말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지친 능선은 밤새 올라탄 우리들을 골짜기 평지에 내려놓았다.


어제 초저녁 눈길에 미끄러져 헤어졌던 여군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느 순간 내 앞에서 걷고 있다. 지난밤 혹한 속에 동사한 줄 알았더니 용케 살아남아 보란 듯이 걷고 있는 거다. 어깨에는 야전용 작은 가방이 걸쳐져 있고 밤새 지쳤는지 걸음걸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가방에서 비스킷을 꺼내 먹는다. 일반 사병은 구경도 못한 과자를 먹고 있다면 고급 장교를 가까이한 것 같다.


목구멍에 넘어갈 밥도 허다하게 굶는 판에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전쟁은 동시에 수행될 수 없는 상극으로 북극과 남극의 거리만큼 먼 곳에 떨어져 있다. 어쩌면 여자의 어깨에 멘 작은 가방만 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전하고 있으리라.


나와 비슷한 앳된 스무 살 안팎 저 여성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어제 처음 만난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두 눈에 눈물자국이 고였고 눈두덩도 퉁퉁 부었다. 상처 입은 나비의 날개는 고운 빛을 잃었고, 파도에 젖은 나비는 얼마 못 가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다. 나비가 되어 움직이는 꽃은 위태롭다.


나는 눈길에 미끄러진 사람을 구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들었지만 어느 한 구간 생사를 같이 한 온정을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것 같아서 비스킷 하나를 달라고 말했다. 퉁명스런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마는지 응답이 없다. 순간 심술이 발동한 나는 더 크게 외쳤다.

“비스켓 하나만 줘요.” 역시 모른 척한다.


밤새 눈밭을 헤매며 적과의 신경전에서 살아남고 보니 몹시 배가 고프다. 그렇다고 달려들어 빼앗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다. 어떻게 된 건지 미운 마음도 없다. 그것을 먹고서라도 그녀에게 얼마간의 위로가 된다면 다행 아닌가. 내 먹이는 널리고 널린 새하얀 눈덩이면 충분했다. 여자를 앞질러 얼마쯤 갔을 때 적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거리를 두고 중공군 몇 명이 앞길을 막는다. 우리가 총을 버리지 않고 휴대하고 있으니 적도 더 이상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총구를 겨누면서 뒷걸음질하여 어느 밭 언덕배기에 엎드려 은폐를 시도하였다. 한참을 지나자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없이 조용하다. 이틈을 타서 막 일어나 가려는데 바로 옆에 저 혼자 살려고 열심히 비스킷을 먹고 가던 그 여자가 피로를 못 이긴 채 코를 골며 잠들어있다. 사방에 우글거리는 늑대들은 안중에도 없이 잠이 든 순한 양 한 마리를 어찌해야 하나.


도대체 이 상황과는 모순되는 여자, 핏빛 홍수에 겉도는 기름 한 방울 같은 여자, 바늘에 꿰어진 실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여자, 반짝 추위에 난분분 설렘으로 담뿍 쌓이다가도 금방 사라져버리는 봄눈 같은 여자. 가능하다면 화염이 번지는 불길 너머로 그녀가 속해 있어야 할 공간을 향해 멀리 저 멀리 앞만 보고 뛰어 달아나라고 흔들어 깨우고 싶다. 정신 차리라고.


과자 한 부스러기 나눠주지 않고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야박한 여자이지만 여기 이 자리에 두고 가면 짐승 같은 뙤놈에게 붙잡혀 불쌍한 신세되겠지. 이 전황에서 여자를 대하는 방식은 내 마음과는 달리 손이 아닌 군홧발, 엉덩이를 차서 깨웠다.

“일어나 어서 가요.”

“어서.”


그러자 이 여자 자기 집 안방으로 착각했나. 부모님에게 응석 부리듯 눈을 비비며 “나를 좀 업고 가요.”라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어떤 연유로 위험한 사지에 종군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죽고 사는 것이 경각에 달린 이 시점에서 그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어린 나도 할 말을 잃었다.

“그랬다간 우리 둘 다 죽어요, 빨리 피해요.”

철없는 여자가 따라오거나 말거나 나는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만약 그때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 발목이 붙잡혔다면 나는 불귀의 몸이 되었을 것이다. 순수한 약관의 청년으로서 책임질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과감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투명한 피부에 설경이 내비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혼과 목숨을 빼앗아 버리고는 뒤돌아서서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전설 속 설녀(雪女)처럼 눈밭에서 만났다 헤어진 그 여자가 아주 가끔 생각날 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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