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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Feb 26. 2021

세배

지난 설 명절에는 친정에서 설을 쇠게 되었다. 코로나 방역을 방패 삼아 느긋하게 부모님과 함께 쇠는 설. 얼마 만이던가. 친정과 시댁은 차로 20분 거리, 명절에 오가는 나의 동선은 일정한 거리의 법칙이 지배한다.     

 

지금은 다섯 시간 걸리는 귀향길이 예전에는 일곱 시간 걸렸었다. 차가 막히면 여덟 시간도 예사였다. 큰아이를 무르팍에 앉혀 오가던 그 시절 절반도 못 간 길 위에서 아이는 물었다.

“엄마, 외할머니 집 다 왔어?” “아니, 아직 한참 멀었어.”

“엄마, 외할머니 집 다 와 가?” “응, 조금만 가면 돼.”

얼마 못 가 또 묻고 답하길 열댓 번 하다 보면 아이는 지쳐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는 길 위에서 심심풀이 놀이를 하였다. 끝말잇기, 알파벳 순서대로 영어단어 말하기, 더하기 빼기, 동요 부르기를 하며 눈이 빠지라 달리고 달려 도착한 내 고향집. 마당귀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지피던 엄마가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차에서 내리면 생선 찌는 냄새가 구수했다.  

   

시장기를 알아차린 엄마는 언제나 싱싱한 횟감에 매운탕을 끓여낸 늦은 점심을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허겁지겁 먹어치운 밥숟가락 놓고서 노독을 좀 풀려는 내게 아버지는 “기다리는 부모 마음 다 똑같다.”라며 “빨리 시집으로 가라.”고 항상 채근하셨다. 부모님께 짧은 눈도장 찍고, 허기를 채운 발걸음을 아쉽지만 시집으로 떼곤 했다. 딸 가진 죄로 등 떠민 부모님 두 분이 외롭게 지내온 명절이었다.     


시야가 탁 트인 너른 들판 너머 바다가 저 멀리 바라보이는 친정과 달리 앞산 뒷산이 콱 막힌 시집은 산골. 한번 들어가면 오갈 데 없이 도리뱅뱅이 하는 그곳. 쉽사리 정을 붙이지 못했다. 친정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다 7번 국도에 올라서서 나란히 달리는 동해 철썩이는 흰 파도에 막힌 숨통을 뻥 뚫어내곤 하던 세월이 20년.     


이번 설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작년에는 추석에도 못 찾아뵙고 반년이 훌쩍 지나 뵌 부모님, 노쇠해지셨다. 농한기에는 살이 올랐던 엄마가 이 겨울에는 어쩐지 마르셨다. 엄마 손목을 둥글게 말아서 움켜쥐니 내 손안에 헐거운 빈틈이 남아돈다.    

  

무엇보다 거동이 둔해지셨다. 작아진 몸을 움직이는데 쉼표가 툭툭 찍혀 동선의 흐름을 끊어놓는다. 뵙지 못한 사이 부모님은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한 걸음 더 멀어져 있다. 점심을 먹고는 시댁으로 올라가서 인사드리고 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불 밝힌 거실에 들어서자 훈기가 가득하다.   

   

백년손님 주려고 엄마는 오계닭 백숙을 끓여놓으셨다. 수삼 대추 마늘을 넣어 푹 끓여낸 뚝배기 국물을 한 숟갈 떠넣자 몸에 붙어있던 냉기가 누그러들면서 그간 힘들었던 응어리들이 해빙하듯 녹아내린다. 이 엄동설한 오계닭이 어디서 났을까. 엄마는 직접 키운 닭이라고 하였다. 작년에는 병아리를 키우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작년(?) 닭. 냉동실에서 일 년 이상 유통기한을 넘긴 후에 마침내 식탁에 오른 소울 푸드, 왜 이리 맛 좋은 걸까. 모르고 먹으면 약. 알고 먹어도 약. 장시간 숙성되어 더 맛있다.     

 

밤이 되자 두 분은 각자의 공간에서 TV를 시청하신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허준을, 엄마는 거실에서 전원일기를 본다. 공통점은 음량이 엄청 높다는 것. 안방 문이 열리면 두 채널 주인공들이 걸어 나온 목소리가 집안을 들었다 놨다 귀가 먹먹하다.      


엄마 곁에 베개를 끌어다 누워서 전원일기를 같이 본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그냥 아줌마로 보였던 고두심이 지금 보니까 예뻤다는 사실, 그리고 재밌다. 8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대가족이 사는 한 지붕 아래 순수했던 인간애를 지켜보는 부모님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젊었던 그 시절을.   

  

동해가 건져 올린 쨍쨍한 새해 일출에 눈을 번쩍 떴다. 오늘은 설날.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한 며칠 먹어서 물린다는 떡국 대신 엄마는 산뜻한 나물국을 먹자고 하신다. 깨끗이 씻은 콩나물을 한 냄비 물을 부어 끓인다. 육수는 다시마 국물. 재빨리 국에 얹을 나물거리를 장만했다.   

   

삶은 고사리는 들기름에 볶고, 냉이와 토란대는 콩가루에 버무려 국물을 자작자작 살짝 끓여내고, 바다 내음이 물씬 나는 물미역은 부드럽게 빨아서 참기름에 무쳤다. 시금치나물도 한 양재기 무쳐놓고, 소고기를 깍둑썰기한 무와 조선간장에 들들 볶다가 물을 부어 한 냄비 끓이기 시작했다. 

     

거품이 끓어오르면 걷어내고 한소끔 끓으면 다진 마늘 두부를 넣어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탕이 완성된다. 잡채는 생략, 엄마가 미리 재워놓은 갈비찜 문어숙회 명란젓 오징어식해 물김치 나물 전 3종 세트 찐생선을 콩나물국과 함께 명절 아침상에 차려냈다.      


음. 냠냠. 부모님 모시고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이 맛. 차원이 다른 미식을 개인 접시에 덜어 담아 맛있게 음미하였다. 상을 물리고 세배를 드렸다. 두 손을 눈높이까지 포개 올려 큰절을 드렸다. 

“어머니, 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공경의 마음이 우러났다. 건강하신 부모님 앞에서 이렇게 예를 갖춰 세배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영광스럽다.      

아버지는 예쁜 봉투에 세뱃돈을 담아주셨다. 

오, 어른이 돼서 처음 받아보는 세뱃돈이다. 

‘친정에서 설을 쇠니 세뱃돈이 생기는구나.’

집에 두고 온 딸내미 둘 영상으로 불러냈다. 쑥스러운지 엉거주춤 절하는 아이들. 설날 아침밥을 못 챙겨줘서 짠하다.      


고향에 오면 빼놓지 않고 행하는 습관이 있다. 들판을 건너서 바다로 가는 나의 힐링 로드이다. 이 길을 걸어야만 나는 비로소 고향에 발을 붙인 온전한 고향 사람이 되어 탈탈 털린 내면에 에너지를 채운다. 이 길을 걸어야만 답답한 도시로 향할 한줄기 위안을 얻게 된다. 이 길은 내 지친 어깨 위로 다정한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준다. 이 길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연결돼 있다. 이 길은 나의 유년, 나의 현재, 나의 미래로 뻗어있다.    

  

언제 이 빈 들녘 가득 벼들이 자랐으며 들풀이 우거졌단 말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낙망한 가슴을 열어 보이는 들녘이 세심한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곧 다가올 봄을 향한 부푼 기대감으로 회갈색 논두렁을 비집고 야생초들이 실눈을 여릿여릿 뜨고 있다.      


그때 영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개울가에 내려앉은 새들이 목을 축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얀 가슴 털에 꽁지는 검은 빛깔 작은 새들이 서너 마리씩 무리 지어 전선줄에 앉더니 온화한 창공 속으로 솟아오른다. 물을 좋아하는 물새 같다.     


새들도 안다. 새봄이 오리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저리 꽁지 깃털 가벼이 차올리며 노래 부르고 활기차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대지는 꿈을 꾼다. 봄비가 내리면 씨앗의 눈이 뜨고 마법같이 초록빛 색채로 물드는 그 날을. 진공묘유(眞空妙有),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가운데 지금 만난 새들도, 투명한 공기도, 햇빛도, 바다로 향하는 나의 걸음을 뒤따르며 충만한 인연을 맺어준다. 비어 있으되 꽉 찬 이 느낌이 참으로 좋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음에 단단히 걸어뒀던 빗장이 해제된다.

 ‘열라, 열라. 네 마음속 거리낌을!’

천상천하 저토록 푸른 이분법의 경계를 향하여, 우주로 나가는 비밀 암호를 숨겨둔 것 같은 저 명쾌한 획일, 바다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저 끝 모를 시공을 붙잡을 수 있을까. 블루 색채를 쪼개고 쪼개 한 점 입자가 되면 투명하다. 무색은 모든 색채를 담을 수 있는 빈 그릇, 나도 색깔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수평선 앞에서 등대를 만났다. 2월에 피는 빨간 장미 넝쿨 같은 등대를.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 불빛은 구원의 불빛 생명의 빛 태양과도 같다. 그만큼 절실한 밤의 불빛보다는 유쾌하고 화사한 대낮의 등대에서 누군가와 만나는 약속을 하고 바닷가 산책을 한다면 퍽 낭만적이겠다. 아름답다. 푸름과 붉음의 대비, 바다와 육지, 물러가는 겨울과 다가서는 봄, 차가운 이성과 따스한 감성이.     


바둑판처럼 구획된 들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 집이 보였다. 산그늘이 내려앉은 적갈색 벽돌집과 진초록 대숲이. 예전에는 초록색 기와지붕이었던 집. 내가 자라나고 나의 꿈을 키운 그린 게이블즈. 아끼고 사랑하리라.    

 

작은 결심이 섰다. 명절은 이제부터 친정에서 보내기로. 얼마간 현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시부모님은 친정 부모님보다 연세가 적으시다. 시댁에는 독신인 시누이와 아래 동서가 있고 모실 제사도 없다. 남편만 보내면 된다.  나는 친정에 남아서 내 연로하신 부모님 명절 음식을 해드려야겠다. 

여든여덟 엄마는 너무 지쳤고 기력이 달리신다. 명문화되지도 않은 시집법, 관습법이 무서워서 명절을 외로이 지내시는 친정 부모님께 등 돌려 옹고집 시집으로 갔던 나. 불효이다. 공정한 효도를 하고 싶다.    

 

딸 많은 집 다 소용없다. 그녀들은 그들의 제사를 열심히 받들고 있을 뿐이다. 생존해계신 내 부모님을 외면하는 관행, 이제 개선할 때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같은 지역 출신 남편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들길을 걸어오면서 다짐한 효행 한 가지, 꼭 실천하고 싶다. 내 부모님께 돌아오는데 무척 긴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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