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남연우
저 질퍽한 가슴에 고인 습기를, 울분을
하늘 알갱이들은 감히 알지 못한다
진퍼리새 우거져 촘촘한 그물을 엮어봐도
사발 한 그릇만 한 목마름이 웅크리고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하는 녹슨 자물통이
열쇠를 잃어버린 시간에게 묻는다
변하는 것은 검은 펜촉으로 소묘한 자화상임을
흐물흐물 빠져드는 욕망의 뒷덜미를
거울 속 두 눈이 노려본다
샛바람 놀아나는 실버들에 봄볕 한 움큼마저
몸에 들러붙은 그림자를 집요하게 가두고
신성불가침구역에 감춰진 세상의 뚜껑을
스스로 열거나 닫을 수 있을 때까지
오리나무는 댕댕, 막대종을 울리거나
노여움을 모르는 얼굴 하얀 새 한 마리
가장 기쁜 언어로 노래하거나
마침내 늪의 정령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생기로운 표정으로 고요히 거닐거나
봄비 오는 토요일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산 아래 자리한 작은 도서관에서 네 권의 책을 대출하고는
도서관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벚나무가 서있는 뒤편을 돌아가면
수양버들, 오리나무 우거진 늪이 고여 있습니다.
걷기 좋게 데크길이 놓인 그곳
처음 발견했을 때는 경이로웠어요,
매립되지 않고 보존되었다는 사실에.
이런 습기를 보존한 지형의 특별함에 끌려서.
봄이 막 다가오는 숨결이 느껴져서
오월에는
붓꽃이 화사한 정원으로 변모할 날을 기대하면서.
질퍽한 습기를 가둠으로써
물기를 좋아하는 수생식물을 키우는 늪
도시에선 귀한 환경입니다.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기 어려운
형체와 본질이 불분명한
악어가 득실거리는
외부인의 발길을 잠금장치해버리는
늪은 그런 장소일까요?
도서관 옆에서 만난 늪은
산뜻했습니다.
물기는 꾸덕꾸덕 고인 듯 만 듯
고요한 정기가 스민 비밀정원 같았죠.
거기 발걸음을 들인 나는
허름하고 새로운 시간의 문으로 들어가서
옹달샘 같은 기쁨을 잠시 누렸습니다.
어느새 늪은 시간이 굳은
노파의 자화상을 스케치하며
시간의 열쇠를 찾아야한다고 속삭입니다.
신성불가침구역에 숨겨진
세상의 뚜껑을 움켜쥐라고 말합니다.
그게 어디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것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고 있는 걸까요..
다시 시간이 흐릅니다.
거울 속 두 눈이 노려보는 내 모습
눈동자는 거울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허상만 비춥니다.
두뇌 따로
심장이 뛰는 맥박 따로
생명체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절실한 것인지
봄을 가장 기쁜 언어로 노래하는
새들에게
배워보렵니다.
꽃이 피어나는 이유를,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어디인지.
봄은 어디로 흘러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