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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Feb 05. 2022

멈춰버린 9시 5분

터키 사람들의 애국심

 11월 10일 오전 8시경 관공서에 제출할 서류를 가지러 신랑과 함께 회사로 출근을 했다. 집을 나서서 회사로 가는 동안 안 그래도 셀 수 없던 터키의 국기가 그날따라 유난히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빌딩의 관리자들은 건물 앞의 달과 별이 새겨진 새빨간 월성기의 높이를 낮추느라고 분주했고 거리의 분위기도 평소와 사뭇 달랐다. "오늘 무슨 슬픈 날인가?" 하고 신랑에게 물어보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했다. 국경일이었으면 출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전해 들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 다다랐고 신랑이 아침 업무를 정리할 때까지 나는 잠시 사무실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고 9시경, 우리는 영문을 모른 체 현지 직원들에 의해 빌딩 밖으로 이끌려 나갔다. 재난 대피훈련도 아니고, 화재경보가 울린것도 아니고, 아무런 방송이나 안내도 없었지만 우리가 사무실을 나섰을 땐 이미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밖으로 이동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니 오늘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서거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두 거리로 모이는 중이었다. 건물 밖에 나오니 어느 틈에 걸어두었는지 마주 보이는 빌딩들엔 아타튀르크의 초상화가 담긴 대형 현수막들이 건물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고 바로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바람이 불고 온몸이 덜덜 떨리는 추운 날씨였는데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고 어깨를 움츠리는 건 그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인 우리뿐이었다.


 9시 5분, 나는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을 마주했다. '지금이야'라고 신호를 주듯 도로의 자동차들은 너도나도 경적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정확히 9시 5분이 되자 모든 자동차들은 도로에서 멈춰 섰다. 차들이 멈추자 도시 한복판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잘 보이는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를 마주 보고 멈춰 섰다. 버스에서도 택시에서도 순찰 중이던 경찰차에서도 모든 터키인들은 차에서 내려 그를 보았다.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누군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터키는 한순간에 정지되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요함 속에 터키의 모든 사람들은 아타튀르크를 향해 묵념을 하고 있었다. 덩달아 덜덜 떨고 있는 내 몸도 분위기에 압도당해 멈춰졌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곧이어 이슬람 기도소리 아잔만이 흘러나오던 확성기에서 터키의 국가 '독립 행진곡'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아타튀르크의 넋을 기리고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다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터키의 국가를 들었는데 독립 행진곡답게 멜로디가 두근거렸고 혁명의 노래처럼 이방인의 가슴도 뜨겁게 만들었다. 국가는 엄마와 같다. 우리가 엄마라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처럼, 각국의 노래들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나는 터키 사람도 아니고 내가 들은 건 애국가도 아닌 데다가 터키에 온 지 이제 겨우 한 달뿐이고, 당시엔 아타튀르크를 사진으로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때만큼은 터키 사람들과 같이 잠시 멈춰진 세상 앞에 마음과 자세가 경건해짐을 느꼈다. 사랑하는 조국, 그리고 그 조국을 있게 한 위대한 인물은 이렇게 세상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고 자연스레 터키의 역사와 아타튀르크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더불어 나는 이들처럼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온 맘 다해 뜨거워졌던 적이 있나 하는 반성의 시간이 몰려왔다.


 1938년 11월 10일 9시 5분, 그날은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일 동시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그의 삶이 멈춰진 것처럼 매해 그 시간이면 터키의 전국이 멈춰진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돌마바흐체 궁전의 시계는 여전히 9시 5분으로 멈춰져 있다. 터키 사람들은 정말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터키의 공항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타튀르크 공항이 있으며 그의 업적을 알리고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도 곳곳에 있다.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은 아타튀르크의 자서전을 필독하고, 터키에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 중 하나는 그의 사진을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욕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무슨 공산당 같고 북한이 떠오른다. 그런데 확실히 터키는 공산주의와는 다르다. 여태껏 수많은 대통령이 나왔는데도 누구도 그들을 추모하거나 사진을 걸진 않는다. 오직 아타튀르크만이 터키 사람들에게 영광스럽고 위대한 존재다. 간단히 말하자면 케말 아타튀르크는 진정 터키라는 나라를 있게 한 인물이다. 터키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무너진 오스만 제국에서 으쌰 으쌰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위인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대명제 아래 이슬람 종교가 국가의 권력이 되지 않도록 술탄 제도를 폐지했다. 자랑스러운 투르크인이기 위해 당시 사용하던 아랍어 대신 터키 고유 언어가 탄생했고, 국민 99%가 이슬람교라고 할지라도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다르게 히잡과 터번을 의무적으로 쓰지 않아도 됐다. 남녀가 평등하게 교육을 받고 문화를 공유했고 평등을 기반으로 종교적 영향보단 민족주의를 강화해서 대대 손손 '우리 민족 최고'라는 부심이 생겨난 것 같다. 쉽게 말해 국부가 국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셈이다. 모든 걸 열거할 순 없지만 그는 개혁과 개방에 힘을 쏟으며 많은 것들이 국민의 삶을 이롭게 했음은 분명하다. 말로서 정치가 아니라 실제로 국가의 번영을 이루었기에 터키에서 그를 비교할 대상은 없을뿐더러 그의 존재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나는   거리에 모인 터키 사람들을 보고 학창 시절 운동장으로 모여 아침 조회를 했던 풍경이 떠올랐다. 태극기를 바라보며 국민의례와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그리고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했던  아침 조회. 그게  형식적이다 생각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의식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터키 사람들은 운동장과 교장선생님이 없어도 남녀노소 모두 자발적으로 거리로 모였고, 국가와 국부에 대해 한마음을 가졌다.  모습에서 터키인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처음 터키에 와서 여기저기 거리의 월성기들만 보아도 느껴졌지만 이들은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 결코 공산주의처럼 오랫동안 받아온 세뇌와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인 진심과 마음을 느낀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가져지듯이 국가가 있는  애국심은 누구에게나 마음에 있다. 그리고 그건 한나라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마음이다. 얼마나 자주  마음이 꺼내어지고 진심으로 똘똘 뭉치는지는 리더에게 달렸다. 좋은 예로 뭉치나쁜 예로 뭉치든 그건 모두 애국에 의한 것이다. 과거 우리의 촛불시위는 기쁨의 뭉침은 아니었지만 결론은  나은 미래를 위해서 뭉쳐졌다. 요즘 터키는 경제문제로 난리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리더와 경제가 어떻든간에 과거의 훌륭한 리더 아타튀르크   사람으로도 모두를 똘똘 뭉치게 했다. 국가의 존재를 감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터키 사람들처럼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애국심을 불태우게 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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