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방황하는 프로이직러 (1)
끝없이 방황하는 프로이직러 (1)
친구들이 나에게 가끔 농담처럼 부르는 말이 있다.
'프로 이직러'
칭찬인지, 놀림인지 헷갈리는 말이다. ㅎ
왜 나는 정착하지 못하는 걸까?
대학생 때, 나는 경영학과를 나와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너무나 많았다.
인사, 금융권, 은행원, 회계/재무, 공무원, 총무, 공기업, 영업...
친구들의 진로도 각양각색이였고,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뭐가 나랑 맞는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인지 하나도 몰랐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곧잘 하긴 했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벼락치기하기 일쑤였다. 학점도 과목마다 들쑥날쑥이었다.
돈이나 사회적 인식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면
대기업 직원이나 은행원을 했을 것이고,
안정성이나 워라밸이 중요했다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뭔가 가슴뛰는 일이 하고 싶었다.
나는 대학교를 논술 전형으로 들어갔고,
대학생 때 '사고와 표현'이라는 필수 교양 수업에서
'먼 미래, 인간이 우주 행성을 식민지로 삼게 되었을 시
외계인을 애완동물로 키워도 되는지에 대해서 논술하라'라는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받고
모든 학생이 한숨을 쉬며 고심할 때
눈빛을 반짝이며 논리를 써내려 갔다.
그 다음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선 내 이름을 호명하시더니
맨날 뒷자리에서 떠들기만 하더니, 의외라고 하셨다.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해서 그런지
해당수업에서 기말고사 때에는
'자유 주제로 광고를 기획해보는 팀플 발표 과제'를 주셨다.
(이 교수님과 나는 정말 성향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같은 괴짜 성향)
그 과제에서도 나는 똑같은 것이 싫었고, 특별한 것이 하고 싶었다.
당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맨홀이나 환풍구 등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을 때였고
'안전불감증을 환기하는 공익 광고'를 주제로 삼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좋다고 했고, TVCF나 여러 광고 아이디어가 나왔다.
나는 트릭아트를 활용해서
위험 요소가 있는 장소에 그림을 그려넣는 광고를 제안했다.
학교 학생들이 무단횡단을 자주 하는 횡단보도 앞에
옆을 보며 깜짝 놀라는 인물을 그려넣는 식이다.
그러자 팀원들이 '트릭아트를 활용한 안전불감증 공익 광고'를 주제로 아예 바꾸자고 했고,
발표 후 교수님께서 이 PT로 대회에 나가 보라고 권하기도 하셨다.
이 과목에서 나는 처음으로 A+를 받았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재밌는 과목과 재미없는 과목이 너무도 뚜렷했고,
딱 정해진 문제보다는
모호한 주제와 창작의 자율성을 주면
더욱 날개를 펼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회계보다 마케팅에 사로잡힌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