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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섭 Nov 18. 2018

#2. 나만의 소울메이트 도시는?

나만의 소울메이트 도시는 어디일까  

결혼 전에 남자 많이 만나보라고들 한다. 한 두명 만나봐서는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고.

연애도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내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내가 어떤 스타일의 이성과 있을 때 가장 편안해지는지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 수많은 도시 가운데, 내가 어디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100%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값비싼 옷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남들 눈에 과시하기 좋을 순 있어도 정작 내 몸은 어색하고 불편한 것처럼,

무조건 비싼 돈 주고 가는 럭셔리 투어만이 여행의 만족을 높여주는 건 결코 아니다.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 지루하고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인 만큼, 그 목적 달성에 최대한 가까이 데려가 줄 나만의 소울메이트 도시를 찾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휴가기간이 한정돼 있고,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직장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여행지를 찾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일인 만큼 인생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과정이 된다.)


내 영혼의 단짝은 어디에 있을까


일주일에 이틀씩 밤을 새도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던 20대 시절. 서유럽이 나의 영혼의 단짝인 줄 알았다. 눈만 뜨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니 이건 뭐 꿈인지 생시인지. 이미 그럴 나이는 지났지만, 런던에 어학연수라도 와서 6개월쯤 눌러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100번씩 돌려보던 30대 초반, 나의 영혼의 단짝이 바뀌었다. 그녀들의 도시 뉴욕으로! 드라마 속의 화려한 세상을 누려보고 싶어 2년에 걸쳐 맨해튼으로 날아갔다. 유럽이 시시해졌다. 마음 참 쉽게 뒤집힌다. 브로드웨이에 숙소를 잡고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골목골목을 들쑤시고 다녔다. 하루에 2만보를 걸으며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활홀경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캐리도 늙고 <섹스 앤 더 시티> 영화 시리즈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되면서 마음이 급속도로 식어갔다. 캐리만 늙는 게 아니라 나도 늙어가니, 뉴욕을 여행하는 건 왠지 피곤한 일이 됐다. 또 한 번 영혼의 단짝을 잃는 순간이다.


나는 온통 아름다움으로 도배된 유럽의 도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인 줄 알았는데, 세련되고 시크한 도시를 사랑하는 여행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아니었다. 도대체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취향의 사람인가.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그 답을 찾고 싶었다.


이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그러다 우연히, 아무 기대 없이 찾아간 그곳... 두둥~! 이런 게 운명의 데스티니인가. 나는 세 번째 소울메이트와 조우하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소박 of 소박한 휴양지, 호이안!


나의 현실 도시인 서울보다 무조건 화려한 도심 속 여행지만이 최고라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눈 돌아가는 볼거리보다 온전한 휴식을 원하는 여행자가 된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무려 18년이나 했다. 여행이 노동이 되는 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서울생활과 180도 다른, 한없이 느리고 느린 휴식이 필요해었나보다. 드디어 나는 내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어떤 여행을 원했던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런 타이밍에 호이안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100%의 남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소울메이트 도시도 그렇게 알아챌 수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이안 숙소의 아침

베트남의 시골 중에서도 상 시골. 보이는 건 흙바닥이요, 건물이라곤 띄엄띄엄 가뭄에 콩 나듯 있는 미개척지. 내가 숭배하고 우러러보던 유럽, 뉴욕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게 맞나 의심이 되는 속도의 시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복잡하게 뭘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멍 때리고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곳이 바로 여기 호이안이었다. 생활에 지치고 여행에 지쳤던 나에게, 완벽한 도시였던 거다.


첫 여행의 만족이 눈으로부터 찰칵하고 채워지는 게 90이라면, 점차 그 만족의 형태는 특정 순간, 경험으로 옮겨간다. 다시 말해, 컷(cut)에서 씬(scene)으로 바뀐다. 1차원적인 감각에서 해마에 오래 저장되는 복합적인 감각으로 영역이 바뀐다는 얘기다. 그런 강렬한 경험을 바로 여기, 호이안에서 하게 된 거다.


안방비치 앞에 있는 나의 아지트 <소울 키친>

호이안의 대표 관광 스폿인 안방 비치에 내 아지트를 정해뒀다. 카페이자 식당이자 바이기도 한 소울키친. 널따란 침대형 의자의 오션뷰.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 사이로 무지개색 풍선에 매달린 사람들이 떠다녔다. 거기에 자리를 잡고 몇 시간이고 빌 브라이슨을 읽었다. 세월아 내 월아.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일절 없는 곳에서 맥주, 커피, 식사를 차례로 시켜가며 오로지 책만 읽었다. 일찍이 그 어디에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완벽한 자유를 누린 순간이었다. 10년을 넘게 여행을 다니면서 이보다 더 마음이 평화로운 적이 있을까 싶다. 이래서 여행을 오는구나. 이게 휴식이구나.


마음이 갑갑하고 숨통이 막힐 때마다 난 여기를 찾아간다. 내가 언제라도 도망치면 꿀 같은 휴식을 안겨주는 도시. 이런 소울메이트를 발견했다는 게 나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대도 반드시 영혼의 단짝을 만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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