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길을 걸으면서
2025년 7월 10일 목요일. 제주 날씨 : 안개 자욱하고 바람 쌀쌀함
오전 6시 57분. 가려진 창틀 사이로 자욱하게 떠돌아다니는 안개를 뚫고 지나오는 빛에 눈 부신 듯한 제스처를 한다. 막걸리처럼 하얀 이불을 맨살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스쳐 지나간다.
"째깍째깍."
조잘대는 벽 위를 바라보고는 식탁 위 널브러져 있는 짐들 사이 500ml 생수를 집어, 들이킨다.
"꼴깍꼴깍."
"째깍째깍."
"꼴깍꼬올깍."
"째깍째깍."
"꼴깍."
"탁."
"저벅저벅."
빨간색 팬티를 천천히 내리고 슬그머니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간다.
냉수와 온수 사이로 손잡이를 가지고 가 그대로 올리니, 차가운 물이 쏴아아. 깜짝 놀랐지만, 금세 적응하고 찬물로 온몸을 적신다. 작은 창으로 울려오는 "짹짹" 소리를 들으며.
샤워를 마치니 잠에서 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머리카락을 말리기도 전에 에어컨의 바람 세기를 올렸다. 샤워하고 외출을 준비하는 동안에 흘리는 땀이 제일 짜증 나기 때문이다. 긴바지와 긴팔의 바람막이를 입으니, "사각"소리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옷을 입고 어제의 무거운 가방과 카메라를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검은색 트래킹화를 신었다. 신발을 "꽉" 쪼임과 동시에, 문을 여니, 비 오는 날 버스 안 유리창 같은 자욱하게 떠다니는 안개의 하늘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숙소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지도를 봤다. 목적지까지 40분 간의 걸음이 필요했다. 인도는 없었다. 차도로 도로를 채운 길의 가장자리. 그곳 위를 걸어갔다. 오전 7시 43분. 이른 시간이라 차들이 다니지 않을 줄 알았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달리는 차들이 많았다. 조심스레 히치하이킹을 도전해 볼까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아니라서 빠르게 포기했다. 여전히 안개는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고, 하늘은 뭐가 그리도 슬픈 지 "뚝. 뚝." 눈물을 흘렸다. 두 귀에 살며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걷다 보니, 도착한 제주도의 어느 곳. 그곳에서 시작될 세계유산탐험의 첫날. 안개는 내 옷의 주머니에 들어올락 말락. 시작된 탐험. 여전히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 하나와 검은색 카메라가 내 몸을 누른다. 빗물에 미끄러운 숲길로부터 올라오는 풀내음이 코를 스쳐 지나간다. 물방물에 반사되어 더욱 영롱한 모습으로, 내 눈을 유혹하는 청바지에 검은 티를 입은 그녀의 눈동자 색 같은 진한 초록색들의 잎사귀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자욱한 안개에 겁먹어 숨어 있는 풀벌레들과 늦잠 자는 새들 없이, 오로지 나와 이곳의 초록색 영롱함. 천천히 불어오는 공기들. 빵빵거리는 자동차들의 엔진과 뜨거운 아스팔트 없이, 오로지 나와 이곳의 초록색 풀내음.
위로 세 걸음. 중간 크기의 돌 두 개를 "탁탁." 밟는다. 아래로 네 걸음. 커다란 나뭇가지를 "우득." 밟는다. 앞으로 두 걸음 반. 갓난아이의 피부처럼 부드러운 나무에 기대며, 아래로 두 걸음을 뻗는다.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세 걸음...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처럼 나를 대해준다.
자연은 언제나 예전의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기 위해, 내 속도를 맞춰준다.
자연은 어제도 나에게 알맞은 속도를 위해 노력했다.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삶을 위해 언제나 변화한다.
"짹짹". 새들의 울음소리가 나의 시야를 올려줬다.
자연의 소리가 들리니,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떠한 생각이든 비울 수 있다.
오로지 길과 나.
이 둘만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생각이든 할 수 있다.
오후 1시 3분. 어느새 도착지의 근방에 다가가고 있다. 꿈에서 깨어나기 5분 전은 꿈속에서 가장 꿈같은 시간이다. "저벅.. 저벅.." 발소리는 무겁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래기 위해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서 한 입 베어 문다.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는 안개들은 집을 찾아 돌아간다. 얼굴은 땀방울들로 범벅이고, 숨소리는 꽤 걸칠게 들려온다. 살랑이는 나뭇가지들은 떠나가는 나를 붙잡고 떼쓰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에서 깨어난다. 따스한 햇빛이 눈부시다는 듯한 제스처를 한다.
사아 아아
스사아 아아
짧은소리에도 흔들리는 걸음과 달리
자리를 지키며 온전히 즐기는 너.
묵묵히 그 자리에서
누구를 맞이하려고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나.
하얀 날갯짓에도 속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청아한 울음소리에도 입꼬리 조금 씰룩이지 않고
누구를 맞이하려고 한 자리를 지키고 있나.
사아 아아
스사아 아아
짧은소리에도 흔들리는 마음과 달리
자리를 지키며 차분히 흐느끼는 너.
천천히 그 자리에서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투명한 물방물에도 몰입이 묻어나고
맑은 하늘 아래 신나서 춤을 추고 있나.
스사아 아아
하는 거 없이 많은 것을 하며 빛나고 있구나.
그래서 난 너만 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