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심화편
'주인공의 눈' '관찰자의 눈' '작가의 눈'
카메라를 어디에 놓고 어디를 비추냐에 따라 같은 장면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드라마 트리트먼트를 쓸 때마다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1인칭으로 쓸까, 3인칭으로 쓸까, 아니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쓸까?
단순한 문법의 문제 같지만, 사실 이것은 관객을 어디에 앉혀둘 것인가의 문제다. 주인공의 머릿속에 앉혀둘 것인가, 멀리서 지켜보는 카메라 뒤에 앉혀둘 것인가, 아니면 신의 관람석에 앉혀둘 것인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가?
그럴 때는 스토리텔링 개론편의 '연어와 곰' 이야기를 보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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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점' 을 좀 더 깊이 후벼 파 보도록 하겠다.
『그래비티』
기존 3인칭 관찰자 시점: 라이언 스톤이 우주 공간에서 회전하며 날아간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산소 게이지가 빠르게 줄어든다.
1인칭 시점 변환: 나는 통제 불능 상태로 회전하고 있다. 속이 뒤집힌다. 우주선이 점점 멀어진다. 이대로 죽는 건가? 사라야, 엄마가 너한테 곧 갈 것 같아.
1인칭 시점은 관객을 주인공의 머릿속에 완전히 밀어넣는다. 라이언의 공포가 나의 공포가 되고, 라이언의 절망이 나의 절망이 된다. 관객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체험자가 된다. 1인칭 시점의 장점은 완벽한 몰입이다.
『브레이킹 배드』
1인칭 시점 변환: “나는 암에 걸렸다. 가족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그것만이 이유일까? 나는 내 자신조차 믿을 수 없다.”
관객은 월터의 자기기만과 합리화를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의 타락 과정을 안에서 지켜보게 된다. 1인칭 시점의 또 하나 장점은 ‘주인공이 모르는 것 = 관객이 모르는 것’이라는 점이다.
『노팅힐』
1인칭 시점 변환: “나는 그녀가 세계적인 스타인 줄 몰랐다. 단지 아름다운 고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지는…”
정보의 점진적 공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제한 된 정보량으로 좁은 시야를 갖게 된다. 주인공이 없는 장면은 쓸 수 없다. 『왕좌의 게임』 같은 멀티 플롯 드라마는 불가능하다.
드라마 트리트먼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점이 바로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이유는 영상적 묘사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록키』
3인칭 관찰자 시점: 록키가 로커룸에서 코피를 닦는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다. 무언가 말하려다 멈춘다. 그는 자신이 삼류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이 있다.
카메라는 록키의 표정을 잡는다. 관객은 그의 내면을 추측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는 없다. 이 거리감이 묘한 긴장을 만든다. 3인칭 관찰자의 힘은 객관적 긴장감을 준다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라는 빙산이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적용해야 한다.
『컨택트』
3인칭 관찰자 시점: 엘리가 아버지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바라본다.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그녀는 과학자다. 감정을 억누르려 한다. 떨리는 손을 꽉 쥔다.
관객은 엘리의 내적 갈등을 행동과 표정으로 읽어내야 한다. 이 과정이 더 깊은 몰입을 만든다. 카메라를 자유롭게 영상적 묘사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 클로즈업에서 롱샷까지, 주인공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체 상황을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1인칭 시점도 아니고 전지적 시점도 아닌, 관찰자 시점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다. 모든 것을 행동과 대사로 보여줘야 한다. 특히 내적 변화가 중요한 캐릭터 아크를 그릴 때는 한계가 있다.
전지적 시점은 작가가 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그들의 마음속 깊은 비밀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왕좌의 게임』
전지적 시점: 존 스노우는 자신이 타르가르옌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독자는 안다. 그의 진짜 정체성을. 그리고 그 정체성이 웨스테로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도.
관객은 인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 이 정보의 비대칭성이 아이러니와 서스펜스를 만든다. 전지적 시점의 뚜렷한 장점은 스케일의 확장이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 『브레이킹 배드』에서 월터의 이야기와 제시의 이야기, 행크의 이야기를 모두 전지적 시점으로 서술할 수 있다.
심지어 인물 본인이 스스로도 모르는 내면의 동기까지 파헤칠 수 있다.
월터가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할 때, 전지적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월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진짜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신의 능력' 인 전지적 시점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전지적 시점으로 쓰다 보면 “그는 슬펐다”, “그녀는 화가 났다”처럼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어바웃타임』에서 팀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작가가 “팀은 슬펐다”라고 설명하는 대신, 팀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그 슬픔을 보여준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이것은 진리다.
동일한 장면을 세 가지 시점으로 써보자.
예시: "주인공이 연인의 배신을 발견하는 상황"
1인칭 시점: 나는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오늘 밤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손이 떨렸다.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것이 현실인가? 3년간의 사랑이 한 줄의 문자로 끝나는 건가?
몰입도 최고, 주인공의 고통을 시청자나 독자가 직접 체험하게 된다.
3인칭 관찰자 시점: 그가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화면의 문자를 읽는다. 얼굴이 굳어진다. 휴대폰을 떨어뜨린다. 소파에 주저앉는다. 머리를 감싼다. 그의 어깨가 떨린다.
영상적 묘사 탁월, 관객은 상황을 추측하며 긴장. 빙산의 일각만 보여줌으로서 시청자의 상상력이 개입.
전지적 시점: 그는 그 문자를 보며 무너졌다. 3년간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 문자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헤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그녀 역시 진실을 말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었다.
복합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그로인해 아이러니 효과가 극대화 된다.
심리 스릴러: 1인칭 시점
『조커』 같은 작품. 주인공의 광기를 내부에서 체험하게 만든다.
범죄 수사물" 3인칭 관찰자 시점
『셜록』, 『마인드헌터』. 관객이 탐정과 함께 단서를 찾아가게 만든다.
대하드라마: 전지적 시점
『왕좌의 게임』, 『로마』. 복잡한 정치적 관계와 인물들의 숨은 동기를 동시에 다룬다.
로맨틱 코미디: 1인칭 또는 3인칭 관찰자 시점
『노팅힐』 같은 작품. 주인공의 내적 독백이 코믹함을 만들거나(1인칭), 상황의 아이러니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거나(3인칭).
트리트먼트 단계: 3인칭 관찰자 시점. 영상화를 염두에 둔 문서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움직임, 인물의 액션, 장면의 분할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록키가 미키의 체육관에 들어선다. 낡은 샌드백들이 줄지어 걸려있다. 록키가 그 중 하나를 친다. 둔탁한 소리. 미키가 뒤에서 지켜본다. 연출자가 영상으로 구현하기 좋은 서술로 작성한다.
소설(트리트먼트 노블) 단계: 캐릭터의 깊이에 따라 선택한다.
주인공의 내면 여행이 중요하다면, 1인칭 시점
세계관과 플롯이 복잡하다면, 전지적 시점
영상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다면 , 3인칭 관찰자 시점
초보 작가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다. 한 작품 안에서 시점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다. 사실 일부러 바꾼다기 보다는 시점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주인공 중심으로 쓰다가 막히면 다른 인물로 도망치는 습관이 체화 된 경우가 대다수 다.
잘못된 예시: 나는 화가 났다. (1인칭) 그 순간 그녀가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가 화난 것을 몰랐다. (전지적)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3인칭 관찰자)
미치고 환장한다. 독자가 혼란스러워한다. 트리트먼트를 검토하는 연출가나 제작자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시점의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처럼 챕터별로 다른 인물의 시점을 사용하거나, 『클라우드 아틀라스』처럼 시간대별로 다른 시점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단, 명확한 구분과 일관된 규칙이 있어야 한다.
스탠리 큐브릭: 3인칭 관찰자의 마스터.『샤이닝』을 보면 카메라는 잭 토런스를 냉정하게 관찰한다. 그의 광기를 내부에서 보여주지 않고 외부에서 지켜본다. 설명하지 않고 단지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알프레드 히치콕: 제한된 전지적 시점. 『버티고』에서 히치콕은 관객이 스코티보다 약간 더 많이 알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 정보의 조절이 서스펜스를 만든다.
빈스 길리건 - 다층적 3인칭 시점.『브레이킹 배드』에서 각 인물을 3인칭으로 관찰하지만, 에피소드마다 누구의 시선에 더 가까이 갈지를 조절한다. 월터 중심 에피소드, 제시 중심 에피소드, 행크 중심 에피소드가 따로 있다. 영화보단 여러시즌으로 이어지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에 효과적이다.
시점은 단순한 문법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관객이 이야기를 바라보는 렌즈다. 어떤 렌즈를 쓰느냐에 따라 같은 피사체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망원렌즈(1인칭)는 주인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감정의 세밀한 떨림까지 포착한다.
표준렌즈(3인칭 관찰자)는 자연스러운 거리에서 상황을 보여준다. 관객의 눈과 가장 비슷한 시각이다.
광각렌즈(전지적)는 넓은 세상을 한눈에 담는다. 개인을 넘어선 큰 그림을 보여준다.
어떤 렌즈가 좋고 나쁜 게 아니다. 당신이 찍고 싶은 사진에 따라,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따라 적절한 렌즈를 선택하면 된다. 세상에 다른 종류의 렌즈가 있다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그것은 작가의 자질에 있어 큰 차이다.
『그래비티』의 라이언처럼 개인의 내적 여정에 집중하고 싶다면 1인칭을.
『쓰리빌보드』의 밀드레드처럼 인물의 행동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면 3인칭 관찰자를.
『왕좌의 게임』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그리고 싶다면 전지적 시점을.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한번 선택한 렌즈는 끝까지 가져가라. 그래야 관객이 당신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시점은 작가의 첫 번째 약속이다. 관객에게 “나는 이런 눈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은 스토리텔러의 조건이다.
다음 주 예고: "다음 시간에는 '시점' 심화편 중 '1인칭 시점' 만 붙들고 후드려 패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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