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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시점의 힘": 모성 서사의 힘

스토리텔링 심화편

by 꼬불이

“나는 딸을 잃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평생이 걸릴 것이다.”



세 명의 여성이 있다. 라이언 스톤, 루이즈 뱅크스, 밀드레드 헤이즈. 영화 '그래비티' . '컨택트(어라이벌)' . '쓰리빌보드' 의 주인공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딸을 잃은 어머니다. 그리고 모두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선다.


『그래비티』의 라이언은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

『컨택트』의 루이즈는 외계와의 조우에서

『쓰리빌보드』의 밀드레드는 사회 시스템과의 전쟁에서


각각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만약 이 세 작품을 1인칭 시점으로 다시 써본다면 어떨까?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는 상실과 회복의 이야기는 어떤 새로운 차원을 보여줄까?





8문장 요약


『그래비티』- 라이언 스톤의 이야기

의료공학자 라이언 스톤이 첫 우주 임무 중 우주 쓰레기 폭풍으로 홀로 우주에 남겨진다. 4살 딸 사라를 놀이터 사고로 잃은 그녀는 지구보다 우주를 선택했던 여성이다. 동료 우주비행사들이 죽고 산소가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국제우주정거장 ISS로 향해야 한다. 베테랑 맷 코왈스키가 도와주지만 그마저 자신을 구하다 우주로 사라진다. 혼자 남은 라이언은 중국 우주정거장까지 가서 탈출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어가며 그녀는 딸과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다. 마침내 다시 살기로 결심한 그녀는 지구 대기권으로 향한다.



『컨택트』- 루이즈 뱅크스의 이야기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가 지구에 도착한 외계 우주선과의 소통을 위해 투입된다. 딸 한나를 희귀병으로 잃은 그녀는 헵타포드라 불리는 외계인들의 언어를 해독해야 한다. 전 세계가 외계인의 의도를 두고 불안해하며 군사적 대응을 준비한다. 루이즈는 헵타포드들의 비선형적 언어를 배우면서 시간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시간 인식을 바꾸는 도구였다. 루이즈는 미래를 보기 시작하고 자신이 딸을 낳을 것임을 안다. 동시에 그 딸이 어린 나이에 죽을 것도 미리 본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미래를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쓰리빌보드』- 밀드레드 헤이즈의 이야기

밀드레드 헤이즈는 7개월 전 딸 안젤라가 강간당해 살해된 사건의 수사 진전이 없자 세 개의 광고판을 세운다. “강간당해 죽었지, 안젤라 헤이즈”, “아직도 체포자 없음”, “윌러비 서장님 어떻게 생각해?” 작은 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서장 윌러비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한다. 암에 걸린 윌러비 서장은 자살하며 밀드레드에게 편지를 남긴다. 경찰서의 인종차별주의자 딕슨은 밀드레드를 괴롭히지만 윌러비의 편지를 받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한다. 결국 딕슨과 함께 딸의 진짜 범인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복수보다 정의를, 분노보다 행동을 선택한 그녀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라이언의 독백으로 본": 『그래비티』


"나는 통제 불능으로 회전하고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사라야, 엄마가 너한테 곧 갈 것 같아. 아니야. 아직은 안 돼.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 알지만, 엄마는 아직 살고 싶어. 이상하지? 죽음 앞에 서니까 오히려 살고 싶어졌어."


1인칭 시점은 라이언의 내적 갈등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딸에 대한 죄책감, 삶에 대한 재발견, 모순된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루이즈의 시선으로 본": 『컨택트』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해한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그들의 시간이 나에게 흘러들어온다. 한나야, 나는 네가 태어날 것을 알아. 너의 웃음소리도, 첫 걸음마도, 마지막 꺼져가는 숨소리도... 그런데도 나는 너를 선택할 거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루이즈의 1인칭 서술은 시간의 비선형성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미래를 아는 어머니의 복잡한 심경이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밀드레드의 분노로 본": 『쓰리빌보드』


*나는 이 빌어먹을 광고판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안젤라, 엄마가 제대로 해내고 있는 걸까?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를 미쳤다고 하지만, 미친 게 당연하지 않겠니? 내 딸이 죽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분노가 나를 삼켜버릴 것 같지만, 이 분노만이 널 기억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야.*


밀드레드의 1인칭은 어머니의 원초적 분노와 슬픔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사회적 체면이나 도덕적 판단보다 더 근본적인 감정의 영역을 건드린다.






"1인칭 시점의 장점"


1인칭 시점에서는 주인공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게 된다. 라이언이 “나는 딸을 잃고 살 이유를 잃었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그녀의 우주 도피를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그 고통에 공감한다.


루이즈가 “나는 한나가 죽을 걸 알면서도 사랑할 거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선택의 숭고함을 느낀다.


밀드레드가 “나는 이 세상이 내 딸을 잊어버리는 게 가장 무섭다”고 토로할 때, 우리는 그녀의 폭력적 행동조차 이해하게 된다.


1인칭에서만 가능한 것이 있다. 바로 '생각의 실시간 중계' 다.

내 손이 떨리고 있다. 왜지? 무서운 걸까, 아니면 흥분된 걸까?

안젤라라면 뭐라고 했을까? "엄마, 진정해. 숨 좀 쉬어."

그래, 딸아. 엄마가 숨을 쉴게. 그리고 싸울게.


이런 내적 독백은 3인칭에서는 어색하고 인위적이 된다. 하지만 1인칭에서는 자연스럽고 강력하다.



1인칭 화자는 독자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아니,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 할 수 있다.

라이언: “나는 단지 지구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진실: 돌아갈 이유를 찾고 싶다)

루이즈: “나는 외계인과 소통하고 있다.” (진실: 딸과 소통하고 있다)

밀드레드: “나는 정의를 원한다.” (진실: 딸이 잊혀지는 게 두렵다)


이런 자기기만과 점진적 깨달음은 1인칭 서사의 핵심이다.




"1인칭 시점의 단점"


1인칭의 가장 큰 한계는 "화자가 모르는 것은 독자도 모른다는 것" 이다.

『그래비티』를 라이언의 1인칭으로 쓴다면, 휴스턴 관제센터의 상황은 전혀 알 수 없다. 러시아 위성 폭파의 배경도, 다른 우주정거장의 상황도 모두 라이언이 직접 겪는 범위 내에서만 서술 가능하다.

『컨택트』를 루이즈 시점으로만 쓴다면, 다른 국가들의 외계인 대응 상황이나 군부의 구체적 계획은 그녀가 아는 선에서만 제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1인칭 화자는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어렵다.

“나는 키 170센티미터의 아름다운 여성이다”라고는 오글오글 거려서 쓸 수는 없으니까. 이런 정보들은 모두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특히 밀드레드 같은 캐릭터의 경우, 그녀의 거칠고 도전적인 외모와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를 1인칭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세 작품 모두 주인공 외의 중요한 인물들이 있다. 맷 코왈스키, 이안 도넬리, 딕슨 경찰관 등. 이들의 독립적인 이야기나 주인공이 없는 장면에서의 변화는 1인칭으로는 직접 다루기 어렵다.





"모성 서사에서 왜 1인칭 시점이 강력할까?"


모성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본능이고 감정이다. 1인칭 시점은 이런 원초적 감정을 전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비티": 라이언의 모성

우주복 안에서 나는 사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엄마, 왜 혼자 있어?"

네가 없으니까. 네가 없으니까 엄마는 어디에 있어도 혼자야.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나는 너 없이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미안해, 아가. 엄마는 더 살아볼게.



"컨택트": 루이즈의 모성

한나야, 나는 네가 12살에 죽을 걸 알아. 그런데도 너를 낳을 거야. 미친 짓일까?

아니.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야. 12년이라도, 너와 함께라면 충분해.



"쓰리빌보드": 밀드레드의 모성

안젤라야, 사람들이 엄마를 미쳤다고 해. 광고판을 세우고, 경찰서를 불태우고, 시장에게 대들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정상이야. 네 엄마니까 정상인 거야. 네가 잊혀지는 게 미친거야.



1인칭 시점은 상실의 5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를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 라이언은 우주에서 부정과 협상을 거쳐 수용에 이른다. 루이즈는 처음부터 수용의 단계에서 시작해 사랑의 선택으로 나아간다. 밀드레드는 분노에서 시작해 행동을 통한 치유로 향한다.


이런 심리적 여정을 1인칭 내적 독백으로 따라가는 것은 3인칭보다 훨씬 강렬하고 생생하다.



어머니의 내적 독백은 특별한 리듬이 있다. 걱정, 후회, 다짐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다.

잘못된 예: "나는 딸을 잃었다. 매우 슬프다. 하지만 살아가야 한다."

올바른 예: "딸아, 엄마가 그때 조금만 더 일찍 집에 왔더라면... 아니다, 그런 생각 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런데도 자꾸 생각나네. 만약에, 만약에... 아니야, 이제 그만.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세 작품 모두에서 어머니는 죽은 딸과 대화한다. 이것이 1인칭 모성 서사의 핵심 기법이다.

현재 상황 설명하기: “한나야, 엄마가 외계인을 만났어.”

과거 기억 소환하기: “네가 그때 말했잖아, 시간은 원이라고.”

미래 다짐하기: “엄마가 네 몫까지 살아볼게.”



어머니의 기억은 대부분 감각적이다. 딸의 체온, 웃음소리, 냄새 등을 1인칭 서술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야 한다. "우주복 안이 차갑다. 사라를 처음 안았을 때도 이렇게 차가웠었나? 아니다, 그때는 따뜻했지. 내 가슴에 안긴 작은 체온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어."



모든 어머니는 죄책감을 갖는다. 1인칭 서사에서는 이 죄책감의 극복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야 한다.

라이언: “내가 그날 집에 있었다면…” “사라가 원했던 건 내가 우주에 가는 거였어.”

루이즈: “미리 알았는데 막지 못했어…” “사랑은 막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거야.”

밀드레드: “내가 더 조심스럽게 키웠다면…” “안젤라는 내가 싸우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거야.”





"장르별 1인칭 활용의 차이"


SF에서의 1인칭: SF 장르에서 1인칭은 경이감(sense of wonder)을 개인적 체험으로 바꾼다. 우주의 광활함, 외계 생명체의 신비로움을 거대한 스펙터클이 아닌 한 개인의 내밀한 경험으로 전달한다.

“나는 지구를 보고 있다. 이 푸른 구슬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니...”



드라마에서의 1인칭: 현실적 드라마에서 1인칭은 사회적 갈등을 개인적 동기로 환원한다. 정의, 복수, 용서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번역한다.

“나는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안젤라가 잊혀지는 건 용납할 수 없을 뿐이야.”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편지와 일기 활용은 1인칭의 정보 제약을 극복하는 전통적 방법이다. 라이언이 NASA 동료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루이즈가 딸에게 쓰는 편지, 밀드레드가 안젤라의 무덤에 두고 가는 쪽지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한 정보 전달은 다른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1인칭 화자가 모르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라이언, 휴스턴에서 연락이 왔어. 러시아가 자국 위성을 폭파했대.” 이런 식으로 화자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도 대화를 통해 전달 가능하다.


의식의 흐름 기법은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기법을 활용해 논리적 서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딸... 사라... 놀이터... 그네... 왜 그때... 아니야... 우주... 차가움... 혼자... 또 혼자... 하지만... 살아야... 살고 싶어... 사라야..."






마무리


1인칭 시점으로 모성 서사를 쓴다는 것은 시청자나 관객을 이끄는 강력한 선택이다. 독자를 어머니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가 그 고통과 사랑을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논리적 판단보다 감정적 공감을 우선시한다.


하지만 그만큼 큰 책임도 따른다.


진부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감동을 줘야 한다.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진리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 어머니의 고백을 모든 어머니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라이언, 루이즈, 밀드레드. 세 어머니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들의 개별적 고통이 인간 보편의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상실과 슬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사랑과 희망. 이것이 바로 1인칭 모성 서사가 가진 궁극적 힘이다.


당신이 1인칭으로 써내려갈 어머니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 어머니는 어떤 딸을 잃었고, 어떤 방식으로 그 상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1인칭 시점은 독자와 화자 사이의 거리를 제로로 만든다. 그 순간 독자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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