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의 첫 다섯 씬’

[ 원데이 원카드 스토리텔링 팁 ]

by 꼬불이

지난번 ‘노인과 바다의 첫 다섯 문장’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 이번엔 영화로 가보려 한다. 헤밍웨이가 문장으로 했던 걸, 실베스터 스탤론은 장면으로 어떻게 했는지. 록키(1976)의 첫 다섯 시퀀스를 보자.


첫 번째 시퀀스. 복싱 링에서 싸우는 두 남자. 그중 하나가 록키 발보아다. 싸구려 체육관. 관객 몇 명 없다. 록키는 이긴다. 하지만 파이트 머니는 고작 40달러 남짓. 락커비, 샤워비, 세금 다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얼마 안 된다. 이게 그의 일상이다. 삼류 복서. 그것도 서른 살.


두 번째 시퀀스. 록키가 아파트로 돌아온다. 비좁고 지저분하다. 거북이 두 마리가 전부다. 말 걸 사람도 없다. 외롭다. 노인과 바다의 84일처럼, 록키에게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 30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세 번째 시퀀스. 동네 체육관. 미키가 록키의 락커를 젊은 복서에게 임대했다. 록키의 짐은 “skid row” 구역에 가방에 담겨 있다. “넌 투지는 있지만 원숭이처럼 싸워.” (넌 인생을 낭비했어. 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미키가 던진 말이다. ‘노인과 바다’의 소년 부모가 “살라오”라고 말한 것처럼, 미키도 록키를 포기했다. 이제 아무도 그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네 번째 시퀀스. 록키가 고리대금업자 가조의 빚 추심을 한다. 복서가 아니라 거리의 양아치 취급이다. 채무자의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리라는 지시를 받는다. 록키는 못한다. “다음엔 진짜 부러뜨려야 해.” 가조가 경고한다. 록키는 안다. 자신이 추락하고 있다는 걸.


다섯 번째 시퀀스. 에이드리언을 만난다. 펫샵에서 일하는 조용한 여자. 록키가 말을 건다. 에이드리언은 대답도 제대로 못한다. 두 사람 다 세상에서 투명인간 취급받는다. 아무도 관심 없는 사람들. 노인에게 소년이 있었듯, 록키에게 에이드리언이 나타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


스탤론은 다섯 시퀀스로 록키의 외면적 장애와 내면적 장애를 모두 세팅했다. 외면적 장애는 명확하다. 30살. 삼류 복서. 돈 없다. 미래 없다. 하지만 진짜 장애는 내면에 있다.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아폴로와의 경기 전날 밤, 록키는 에이드리언에게 고백한다. “난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어.” 노인이 “살라오” 낙인을 받았듯, 록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었다.




그런데 이 다섯 시퀀스는 동시에 초목표도 제시한다. 외면적 초목표는 나중에 온다. 아폴로 크리드와의 타이틀 매치. 내면적 초목표는 이미 깔려 있다. “끝까지 버티고 싶을 뿐이야.” 록키가 에이드리언에게 하는 고백. 이기는 게 아니다. 15라운드를 버티는 것.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노인이 큰 고기를 잡으려는 이유가 생존이 아니라 존엄이었듯, 록키의 싸움도 벨트가 아니라 자존감이다.


헤밍웨이는 다섯 문장으로 했고, 스탤론은 다섯 시퀀스로 했다. 방법은 달라도 원리는 같다.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고, 왜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지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그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노인은 85일째 날 바다로 나갔고, 록키는 링에 올랐다.


요즘 관객들이 3분 안에 판단한다고? 맞다. 1976년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오프닝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당신의 이야기 첫 다섯 시퀀스에 주인공의 장애가 보이는가? 외면적 장애만이 아니라 내면적 장애도 드러나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변화의 씨앗이 싹트는가?


노인과 바다, 록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의 오프닝을 들여다볼까. 좋은 오프닝을 찾아내는 건 맛집 찾기와 같다. 파면 팔수록 기본에 충실 한 집이 맛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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