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로맨스": 타란티노의 시작

by 꼬불이

1993년, 한 편의 영화가 할리우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총격전과 마약, 살인과 배신이 난무하는 범죄 영화인데도 제목은 '트루 로맨스(True Romance)'였다.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순간 그 제목이 완벽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영화야말로 진짜 로맨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었으니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숨겨진 명작

『트루 로맨스』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쿠엔틴 타란티노다.


『펄프 픽션』을 만들기 전, 무명 시절의 타란티노가 생계를 위해 팔아넘긴 각본.


그는 이 시나리오로 받은 5만 달러로 『저수지의 개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란티노가 직접 연출하지 않은 이 작품이 그의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토니 스콧이 연출을 맡으면서 타란티노 특유의 냉소와 잔혹함은 부드러워졌다. 대신 순수한 사랑의 힘이 더욱 강조되었다. 타란티노 본인도 나중에 인정했다. "토니 스콧이 내가 쓸 수 없는 따뜻함을 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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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로맨스' 줄거리


클래런스 월리(크리스찬 슬레이터)는 디트로이트의 초라한 코믹북 가게에서 일하는 23세 청년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에 열광하며 B급 영화와 만화책에 빠져 사는 전형적인 루저다. 23번째 생일을 혼자 보내던 그는 영화관에서 앨라바마 휘트먼(패트리샤 아퀘트)이라는 금발 여성을 만난다. 팝콘을 흘린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둘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다. 그런데 앨라바마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녀는 포주 드렉슬 스프라이트(게리 올드만)가 클래런스의 생일선물로 보낸 콜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진짜 사랑에 빠진다.


다음 날 아침, 앨라바마는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클래런스는 분노하지만 곧 그녀를 용서하고 청혼한다. 시청에서 즉석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 하지만 클래런스는 아내가 드렉슬의 소유물로 남아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앨라바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드렉슬을 찾아간다. "내 아내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드렉슬은 비웃으며 거절한다.

결국 총격전이 벌어지고, 클래런스는 드렉슬을 죽인다. 그런데 황급히 도망치면서 앨라바마의 옷가방 대신 엄청난 양의 순수 코카인이 들어있는 가방을 실수로 가져온다.


클래런스는 아버지 클리포드(데니스 호퍼)를 찾아가 작별인사를 한다. 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상황을 짐작하고 안전을 위해 LA로 떠날 것을 권한다.


LA에 도착한 신혼부부는 클래런스의 친구이자 배우 지망생인 딕(마이클 라포포트)의 집에 머문다. 코카인을 팔기 위해 딕의 룸메이트이자 마리화나 딜러인 플로이드(브래드 피트)의 도움을 받아 할리우드 프로듀서 리 도노위츠(사울 루비넥)와 접촉한다.

하지만 드렉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마피아 보스 빈센조 코코티(크리스토퍼 워컨)는 도난당한 코카인을 되찾기 위해 킬러들을 보낸다. 마피아는 클리포드를 납치해 고문하며 아들의 행방을 캐묻는다.


동시에 경찰도 수사에 나선다. 마약 수사관들이 도난당한 코카인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클래런스와 앨라바마는 호텔에 숨어있지만, 마피아 킬러 버질(제임스 간돌피니)이 앨라바마를 찾아낸다. 클래런스가 부재중인 사이 앨라바마는 버질과 처절한 격투를 벌인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끝내 버질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거래 당일, 호텔에서 코카인 거래가 이뤄지지만 경찰과 마피아가 동시에 들이닥친다. 치열한 삼파전 총격전이 벌어진다.


최종적으로 클래런스와 앨라바마는 살아남아 멕시코로 도망친다. 해변에서 아들과 함께 행복한 새 삶을 시작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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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의 장애: 평범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


외면적 장애

클래런스의 외면적 장애는 명확하다.

경제적 궁핍. 코믹북 가게 직원의 월급으로는 변변한 삶을 살 수 없다.

사회적 고립. 23세 생일을 혼자 보낼 정도로 외롭다. 친구도, 연인도 없다.

현실 도피적 성향. 엘비스 프레슬리에 중독되어 있고, 코믹북과 B급 영화에 빠져 산다.


내면적 장애

더 중요한 것은 클래런스의 내면적 장애다.

자존감 부족.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놈이 무슨 여자를..."

용기 부족. 평생 안전한 곳에서만 살아왔다.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영화 속에서만 봤다.

정체성 혼란.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엘비스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 초반, 클래런스는 전형적인 루저다. 하지만 앨라바마를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클래런스의 초목표: 진짜 남자가 되기


외면적 초목표

클래런스의 외면적 목표는 단순하다.

앨라바마와 함께 LA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

코카인을 팔아서 돈을 벌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부부가 되는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피아와 경찰을 피해 살아남아야 한다.


내면적 초목표

클래런스의 진짜 목표는 더 깊다.

진짜 남자가 되는 것. 사랑하는 여자를 지킬 수 있는 용감한 남자가 되는 것.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더 이상 수동적으로 살지 않고,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

엘비스의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이 되는 것.


영화 내내 엘비스의 환상이 클래런스에게 나타나 조언을 해준다.

"가끔은 차가운 피를 흘려야 해." 이것이 바로 클래런스의 내면적 여정을 상징한다.



응원받는 주인공의 조건


클래런스는 완벽한 응원거리다. 왜일까?

언더독의 매력

그는 처음부터 약자다. 코믹북 가게 직원 vs 마피아. 승산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응원한다.


순수한 동기

클래런스가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다. 오직 사랑 때문이다.

앨라바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의 각오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성장하는 모습

매 장면마다 클래런스는 조금씩 변한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남자로, 수동적 인간에서 능동적 인간으로.

특히 드렉슬을 죽이는 장면에서 그의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180도 변화한 캐릭터 아크


시작: 겁쟁이 루저

영화 초반의 클래런스는 전형적인 루저다.

혼자 생일을 보내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엘비스 흉내를 내며 현실을 도피한다.

아버지(데니스 호퍼)와의 관계도 어색하다.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전환점: 사랑의 발견

앨라바마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나는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이 한 마디가 클래런스의 인생을 180도 바꾼다.


결말: 진짜 남자

영화 마지막, 클래런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마피아와 맞서 싸우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결국 앨라바마와 함께 멕시코 해변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더 이상 엘비스의 환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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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바마: 완벽한 연인


패트리샤 아퀘트가 연기한 앨라바마도 놀라운 캐릭터다.

그녀는 단순한 '구원받는 여성' 역할을 넘어선다. 클래런스만큼이나 용감하고 주체적이다.

드렉슬의 부하 버질(제임스 간돌피니)과 벌이는 호텔방 격투신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맞고 또 맞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앨라바마는 클래런스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신도 변화한다. 돈을 위해 몸을 파는 여자에서 진정한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 수 있는 여자로.

MV5BYTUxYzljMTItNzg5ZC00NTQ2LTgwYzctNzVkZjQ5YzFiOTZkXkEyXkFqcGc@._V1_QL75_UX1616_.jpg 악당 버질을 연기한 배우는 '소프라노스의 토니' 다.



타란티노식 대화의 힘


『트루 로맨스』의 가장 큰 매력은 대화다.

타란티노 특유의 팝컬처 레퍼런스와 일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대화들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엘비스 vs 비틀즈 논쟁

클래런스와 앨라바마가 처음 만나서 나누는 대화.

단순한 음악 취향 논쟁이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성격을 완벽하게 드러낸다.


"시칠리아인의 역사" 연설

데니스 호퍼가 크리스토퍼 워컨 앞에서 하는 연설.

인종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극한 상황에서 한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파이 대화

영화 후반부 엘리엇의 집에서 나누는 파이에 대한 대화.

긴장된 상황에서도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타란티노식 유머.

이런 대화들이 영화에 리얼리티와 유머를 동시에 제공한다.



폭력과 로맨스의 절묘한 균형


『트루 로맨스』가 특별한 이유는 폭력과 로맨스를 절묘하게 균형 잡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의미

이 영화의 폭력은 쾌감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클래런스가 드렉슬을 죽이는 것도, 앨라바마가 버질과 싸우는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다.

『펄프 픽션』의 스타일리시한 폭력과는 결이 다르다. 더 절실하고 감정적이다.


로맨스의 순수함

클래런스와 앨라바마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다.

하룻밤 만에 결혼한다는 설정이 황당해 보일 수 있지만,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그것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다는 그들의 사랑이 모든 폭력을 정당화한다.



가장 순수한 사랑 이야기


『트루 로맨스』는 역설적이다.

마약과 총격전으로 가득한 영화가 가장 순수한 사랑 이야기라니.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극한 상황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

클래런스는 앨라바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짜 자신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사랑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남자로. 수동적 인간에서 능동적 인간으로. 엘비스의 모방자에서 자기 자신으로.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힘.

진정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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