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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자의 수레바퀴 Mar 22. 2022

장어를 제압하는 자가 술자리를 지배한다

계란찜은 거들뿐

거자필반, 회자정리


참고로 나는 어찌 되었건 크리스천이다.

그래도 저 말은 좋아한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대충 이렇단다.(두산백과 참조)


사실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 깊이가 만남의 횟수와 비례하진 않는다.

사실상 친구는 학창 시절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조건 없이 그냥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육두문자를 남발하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그런 격 없는 관계 말이다. 뭐 그렇다. 그렇다고 대단한 추억이 존재할 이유도 없다. 그냥 한 때의 소속감이 깊었고 짙었다면 그걸로 끝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지금은 너무 성인이고 어른이 되어버려서 할 수 있는 최종병기는 그저 술이다.

그리고 난 술과 친구들만 있으면 그만인데, 그래도 깡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 음식점에서 술을 곁들이는 선으로 장소를 협의한다.

대놓고 술집은 가지 않는다. 일단 안주가 너무 맛이 없으니까.


그냥 아저씨들이 가는 곳을 가면 된다. 그곳이 맛집이고, 그 맛에 술을 더하면 그만이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 둘과 볏짚 냄새가 나는 고깃집을 가려고 했다.

친구 녀석 작업실에서 가까운 서오릉으로 가보려 한다.

약간의 시골 내음과 서울을 아주 잠시 벗어나는 느낌을 가져보려 한다.


하지만 가는 날은 장날이다. 월요일이었고, 가려던 고깃집은 휴무다.

간단하게 고기 대신 장어를 택한다.


고기는 너무 흔하고 뻔할 수도 있으니 의외로 장어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난 언제 먹었나 기억도 안 나지만...

그리고 무조건 소금구이를 먹는다. 아니 여기는 소금구이만 판다.


양념은 별로다. 양념은 책상다리를 버무려도 맛있을 것이다. 양념 맛으로 장어를 훼손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간 시간대는 4시 2분 정도로 추정되는데, 뭐 대충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장어의 실함을 볼 줄도 모르는데, 실해 보인다.

오지랖을 피우며 장어를 어디서 공수하는지 물어본다. 직접 양식을 한단다. 뭐 암튼 실했다.


장어를 직원 분의 손놀림으로 오와 열을 세워서 노릇노릇 구워지면 그걸 생강을 곁들여서 먹으니 소주가 잘 들어간다. 그 이후에 우리가 제주를 갈 거라는 생각은 못하면서 말이다.


장어는 계속 익어가고, 해도 서서히 넘어가고, 술자리는 짙어진다.

중간에 식당의 센 불로만 가능하다는 계란찜도 주문한다.


그렇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사실 기억도 안 나는데, 술병이 쌓이고 장어를 계속해서 먹어댔다.

그렇게 장어를 먹다가 우리는 제주로 향했다. 마치 내일이 없는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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