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켜있는 나날

by 홍작자

일단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늘 정해진 곳이 없다. 5호선이냐 7호선이냐를 고민한다. 물론 목적지 인근에 서점이 있으면 좋겠다. 이 날도 그냥 익숙한 을지로 입구 역을 택한다. 이것도 5호선 왕십리역에 다다라서 내릴까 말까를 고민하다 내려서 얻은 결과다. 을지로 입구역에서 내려서 롯데백화점 지하를 지나 다시 신세계 쪽으로 향하다 사과주스를 한 잔 마시고는, 명동을 끼고 다시 을지로 입구로 와서 종각역으로 향한다. 사실 요즘 같은 봄날에는 어디든 무작정 걷기는 좋다. 영풍문고를 훑고는 다시 신호등을 건너서 인사동을 끼고, 갑자기 안국역 삼청동으로 향한다. 오늘은 헌법재판소가 있는 계동 쪽으로 그냥 걸어가 본다. 언덕이 나오는데 계속 올라가 본다. 그냥 길을 잃고 싶다. 무작정 길을 잃고 또 헤매고 싶다. 그렇게 여기서 사진 한 장 건지고 허무하게, 잽싸게 북촌 언덕을 내려와서 광화문까지 걸었다가 종로 3가까지 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그냥 걸었을 뿐인데, 여전히 마음은 그녀로 엉켜있다. 사실상 끝난 것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불씨를 나 혼자 되살려보려고 무던히도 애써보지만, 그냥 잽싸게 재빨리 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의 집중은 집착일 뿐이고,
더 이상의 관심과 호감은 불편과 민폐일 뿐일 테니까.


극명한 온도차를 완벽하게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염없이 걷다가 혹시 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시도 때도 없이 쳐다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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