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숙자의 알코올

소막맥와양사

by 홍작자

쌓아 올린 책보다 박스에 담은 술병이 더 많던 작업실의 모습이다.

작업실에서 지내는 동안 후배 녀석이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작업실을 놀러 온 것이 아니라, 밖에서 나랑 술을 마시고는 하루 자고 가기 위해 누추한 이 공간을 들렀던 게지.

그리고는 내게 질문을 했다.

'형은 담배는 안 피는 게 신기해요'


그렇다 보통은 글을 쓴다고 하면 추리한 모습에 삼선 쓰레빠 정도 질질 끌면서 무릎 나간 츄리닝을 입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행색은 술. 담배에 쩔어있는 모습을 이따금 상상하게 된다. 왜 그럴까 나도 고민해봤는데, 좋게 말하면 글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게으른 것이다.


담배는 기호식품이고 딱히 애연가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태어나서 펴 본 적도 없다. 다들 끊은 줄로 알고 있지만...


술은 청소년 보호법이 발효되기 전에 학창 시절을 보내서 종로의 후미진 술집에 가면 누가 봐도 고등학생인 것을 알면서도 술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마셔본 것 같다. 사실 본격적으로 마신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직장생활을 하면서다. 사실 대학교 때 미친 듯이 마실 법도 한데 술이 몸에서 잘 받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냥 애주가의 삶을 살진 않았다. 직장생활은 좀 달랐다. 그냥 퇴근 후에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집에 가긴 싫고 그냥 젊은 20대 회사 동료들끼리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게다가 직장이 강남이라 더더욱 유흥의 환경으로는 적합했다고 해야 할까.



직장을 관두고 장기 여행 중에도 술을 마셨다. 물론 이때는 특이한 것이 그냥 나는 여행자니까라며 낮에도 마셨다. 아니 낮부터 마셨다. 술에 낮과 밤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여행 중에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었으니까.

프라하 민박집에서 만난 대학생 청년들과 근처 슈퍼마켓에서 거기 파는 맥주를 모조리 사 와서 마시기도 하고,

자그레브에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면서 기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말이다.


스벅에서는 커피를 마시고, 작업실에서는 맥주, 소주, 막걸리 주종에 상관없이 마시면서 살았던 것 같다.

한 때는 만나는 상대가 소주 한 병만 마시는 주량이길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적도 있다. 어쩜 그렇게 술들을 싫어하나 모르겠다. 나의 과거의 그녀들은. 아니 나를 싫어했던 것이겠지.


주로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그냥 책상 한편에 가지런히 놓인 하이네켄 전용잔이지만 카스인 저 모습이다. 소주와 막걸리는 안주가 필요하고, 맥주는 안주 없이도 홀짝일 수 있어서 보통 작업실에서는 맥주만 마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가볍게 맥주도 마시고, 무겁게 소주도 마시고, 이따금씩 막걸리도 마시며 그냥 술꾼으로 거듭났을 뿐이다.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술을

마신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습관일 뿐이다.

커피와 술은 그저 거들뿐이다.


몸에 좋지도 않은 카페인과 알코올을 일부러 찾아서 사서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다.

술기운에 평소와 다른 글감이 떠오를 수는 있겠지만, 최종적으로는 맨 정신에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결국 절대적으로 의지 해야 하는 것은, 술이 아니라 맨 정신으로 꾸준히 써 내려가는 습관일 것이다.


말은 쉽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술은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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