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숙자의 키보드

기계식 키보드

by 홍작자

공부를 잘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민수는 제도 1000 샤프 천 원짜리 와 플러스펜 빨. 파. 검 그리고 컴퓨터용 사인펜만 정갈하게 그 녀석의 필통에 담겨있었다. 다른 문구류는 필요하지 않았다. 민수는 1학년 때부터 좋은 대학을 아니 서울대를 갈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서울대를 갔다.


필기류는 사실 공부랑 전혀 무관하다. 뭐 그냥 본인에 성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일 뿐이다.


글과 키보드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내 경험에 비추어 결과를 말하면 아무 관련도 상관도 없다.

그냥 키보드 핑계나 키보드 타령을 하면서 내 욕심을 마치 맘에 드는 기계식 키보드를 산다면 잘 써질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할 뿐이다.



키보드 여행


노트북의 자판만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혹은 모니터와 키보드를 따로 연결해야 하는 일이 없다면 크게 개의치 않았을 일이다. 맥북을 사면서 자판의 불편함을 느꼈고, 다시 맥북에 모니터와 키보드를 외장으로 연결하면서 문제는 커졌다. 물론 집에서 작업실에서 글을 쓸 때의 일이다.


그냥 무선 블루투스 키보드면 충분했다. 키보드에 크게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싸구려는 싸구려였다.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타건감,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레이턴시 등이 또 다른 키보드를 찾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로지텍 k780 모델을 들였다. 기계식은 아니었지만 키감도 나쁘지 않고,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잘 써왔다. 하지만 무선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뭔가 이슈만 생기면 블루투스는 속절없이 끊기고, 레이턴시는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곧 잘 일 년을 잘 써왔다. 아니 거의 이 년 가까이를...


다시 애플 정품 매직 키보드를 들였다. 이거는 사실 아이패드에서 작업을 할 때 쓰려고 샀던 것인데, 종종 집에서도 작업실에서도 간간히 써봤다. 높이가 좀 아쉽다. 다 맘에 드는데 말이다. 무선, 유선 다 연결도 가능하고 키감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기계식 키보드로 결국 가야 하나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로지텍 g613 맥 전용도 아닌 윈도 싸구려 기계식 키보드를 들였다. 그래도 잘 써왔다. 나름 기계식이라서 그래도 로지텍이니까 큰 문제는 없다고 그냥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고작 6개월을 썼던 것 같다.


또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싸구려 여러 개를 살 것이 아니라 한 방에 맘에 드는 것을 샀어야 했나라고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유선. 맥 전용. 기계식 키보드를 검색해본다. 바밀로 v87 mac라는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운 좋게 나름 저렴하게 구입을 하고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래도 만족을 하면서 잘 쓰고 있다.


결국은 삽질이다. 시행착오가 아니다.

아예 싼 거를 사서 써보다가 아예 좋은 걸로 바꾸던가도 아니고, 그냥 애매하게 싸구려로 써보겠다고 최소 5만 원에서 최대 12만 원까지 서너 번을 구입한 것이 패착이다.


당분간은 키보드를 살 일이 없겠지.

리얼포스 r3가 눈에 밟히고는 있지만.

키보드를 살 일이 아니라 글을 쓸 일이 더 중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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