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늘 행복했다. 그래서 갑자기 '사람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많은 이들과 함께했고, 공동체에 익숙했고, 감사하게도 여전히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코로나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유로 길고 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지금까지 지독하게도 외로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했다.
가장 먼저 깨달았던 것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음에도 단 한번도 온전히 마음을 연 적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의 솔직한 마음, 연약하고 못난 부분을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냈을때 그들이 받아들여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말이다. 누군가는 나를 믿어 주었는데 나는 그를 믿지 못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그만큼 외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나 자신이니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정말 그런지도 의문이다. 나도 도통 스스로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으니까. 내가 이런데, 하물며 타인이 나를 알 수 있을까. 그렇게 점점 사람에 대한 기대를 놓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면 나는 두려워했을까. 차라리 마음 편하게 솔직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라고 단정하면서도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갈망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실망할 나 자신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를 열망하는 사람만이 천사가 없음에 절망한다. 파라다이스를 간절히 열망하는 사람만이 파라다이스가 없음에 절망할 수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대사를 기억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아마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이해하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품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외로워야만 하는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