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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ve on the Blue Mar 12. 2023

취업, 했습니다만

다사다난한 취업기

https://youtu.be/FkqAMwKrHH8

뉴진스의 <Ditto>, 너무 세련돼서 열심히 듣는 중
집 앞 마트의 웅장한 시계

-해당 글은 2월 중순에 작성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성탄을 지나 어느새 새해가 밝고, 아내와 함께 설도 쇠고, 2월도 벌써 반 이상 지났다. 작년 초에 작업실에서 짐을 빼던 생각이 난다. 1년 전의 나와 뭔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많은게 변한 것 같다. 당장에 글을 쓰고 있는 이 곳조차 새로운 집이기도 하고, <이어드림스쿨>도 무사히 수료하고, 집들이를 하며 오랜만에, 또 새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음악할 때와는 또 다른 다채로운 세상을 느끼는 중이다.


집들이 전문가

영광스러운 첫 집들이날

 

 이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2월 말부터 거의 매주 집들이를 하고 있다. 처음엔 정말 준비하는데 4~5시간은 걸렸는데, 하도 자주 하다보니 이젠 척하면 척이다. 그래도 여전히 장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고양이도 달래고, 세팅도 하고 하다보면 정신이 없긴 하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 보면 어느 날은 한 두명, 또 어느 날은 다,여섯명이 우리 집을 찾아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떠들석하게 앉아 열심히 차린 밥을 맛있게 먹고, 간식들도 먹어가며 하나 둘씩 이야기 꽃을 피운다. 요즘 사는 얘기부터 시작해 옛날 추억들, 미래에 대한 계획들, 진지한 얘기, 실없는 얘기들까지 실컷 하다보면 어느새 다들 집에 갈 시간이 되고, 못내 아쉽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인사를 건넨다.


 정말 여러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주셨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 각자의 친구들, 가족들... 매번 재밌지만 역시 가장 재밌는 건 아내와 나,각자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친구들을 만날 때인 것 같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일하면서 만났다고 얘기하던 사람들을 드디어 만나게 되고, '이 사람이 이 사람이었구나!' 하며 이야기 속 상대들의 퍼즐이 맞춰 끼워진 순간, 각자의 추억들에 좀 더 선명하게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손님들이 떠나고, 뒷정리를 하다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감사하게도 선물도 챙겨주시고,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보면 인연의 소중함과 우리가 받는 과분한 사랑을 느낀다. 다들 우리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행복을 느껴주시는 것 같다. 그 행복에 보답하기 위해 또 다시 힘을 내서 하루를 살아가본다. 

먼 곳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찾아온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이력서, 이력서, 이력서

지겹다 지겨워

 

 본격적인 취업 시즌으로 넘어오면서 이력서를 꽤 여러번 작성하게 되었다.

이력서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거의 반강제(?)로 지난 삶을 복기하다보면 과거에 나에 대해 다시 보게 된다. '이 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이 때 이랬어야 하는걸까?' 따위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보글보글 끓는다. 그러다 그런 생각들에 매몰될 무렵, 자소서 쓰는 팁이 돌연 뇌에 박힌다. '단순한 경험이나 자랑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성과로 연결지으세요!'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에서 끓고있던 소음들이 이내 고요해진다.


 내가 지원한 많은 기업들이 대부분 자소서를 필수로 요구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한 것같다. 전문학사에 비전공자인 나는 차라리 자소서라도 읽어줘야 어필이 될 거 같은데, 역시 쉬운건 없구나. 그래도 여전히 자소서를 보는 기업들도 있기 때문에 다시한 번 워드 프로그램을 켜고, 과거의 단편들을 떠올리며, 경험에서 얻은 성과를 쥐어짜내는 창작 아닌 창작(?)을 하며 자소서를 작성했다. 처음엔 취업하고 싶은 간절함에 온갖 경험들과 성과들로 난잡하게 작성됐던 글이,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 거듭된 퇴고 등으로 나름 깔끔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글도 잘 쓰고, 영어도 잘하고, 프로그램들도 잘 다루고, 배우는 것도 참 잘하는데 막상 내 이력서 속 자격증 란에는 '운전면허 1종 보통'만이 자리해 있다. 나 스스로는 내 자신이 능력있고, 무슨 일이든 잘 할 사람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력서라는 것은 타인에게 나를 객관적으로 어필할 유일한 수단이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속, 참가자들의 열띤 춤사위가 아른거렸다. 나도 나의 춤을 출 때가 온 것 같다.


현실의 벽

 

 그렇게 열심히 이력서에 자소서도 만들고 혼자 끙끙대며 포트폴리오도 완성하여 기쁜 마음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지만, 문전박대를 많이 당했다. 이력서를 열람한 지 1~2분 만에 바로 탈락을 당하기도 하고, 확인 조차도 안하는 기업, 읽고 씹는 기업 등도 많이 존재했다. 그래서 처음엔 기대한 만큼 굉장히 많이 절망하고, 실망했던 것 같다. 

 물론 절망한 채로 그대로 멈춰있진 않았다. 우선 왜 거절을 당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데이터 분석가를 지망하고 있기에 처음부터 데이터 분석가 업무에만 지원을 했는데, 데이터 분석가 업무는 기본적으로 학사 이상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운좋게 학위를 많이 따지지 않는 곳이라 해도, 학사 정도의 능력이나 경험이 모자르기에 결국 뽑지 않은 것 아닐까?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그 다음엔, 처음부터 데이터 분석가로 취업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어차피 지금 당장의 나는 학위를 한순간에 딸 수도 없고, 사람들을 혹하게 할 만한 포폴을 만들어낼 시간도, 능력도 없을 뿐더러, 어떻게 어거지로 취업을 한다해도 아쉬운 순간이 꼭 생길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시간과 경험, 그리고 기반이다. 나중에 데이터 분석가, 혹은 다른 커리어를 쌓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으로 취업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시한 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표를 달리 하고 지원을 하니,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은 면접 볼 기업에 대해서 공부하고, 옷도 차려입고, 아내에게 부탁해 면접 연습도 하고, 식은 땀도 흘려가며 긴장되는 면접도 보고 오고,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취업 했습니다. 일단은

 

 최근 면접 본 기업 중 한 군데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다. 나보다 아내, 양가 부모님이 훨씬 좋아하신다. 오랜만에 순수한 아버지의 미소를 본 것 같다. 주말 중엔 장모님이 직접 양복도 사주시고, 내가 받고 있는 과분한 사랑을 다시 깨닫는다.

장모님 피셜 '킹스맨'

 

그렇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약간의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다. 나보다 먼저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친구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많이 봤다보니 두려움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하니 '만약 이 회사가 너무 나랑 안맞으면 어떡하지?' 라던지, '이 회사가 과연 미래의 나에게도 도움이 될까?' 라던지, 워낙 중요한 일이다보니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계속 된다. 어쨌든 데이터 분석가가 되려면 최소한 2년은 더 공부를 해야될 것 같은데, 과연 데이터 분석가가 그만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직업인지, 내가 너무 뒤쳐지는 것 아닌지, 또 다른 직업을 준비하는게 차라리 괜찮을 지...괴롭지만 이런게 또 삶이 아닐까 싶긴 하다.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14학번이었던 내가 23학번?


 2014년, 파릇파릇한 신입생이었던 내가 2023년 다시 한 번 학생이 되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통계·데이터과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되었다. 하필 또 방송대라니, 운명인가 싶기도 하고...어쨌든 다시 학생이 되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방송통신대학교 특성상,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특히 내가 들어간 과는 단톡도 엄청 활발하고, 커뮤니티도 다양하게 잘 형성 되어있는데, 여러 사람들의 열정을 마주보게 된다. 텍스트에서 나이대가 진~하게 느껴지는 어르신도 많이 계시고, 벌써 재입학을 몇 번째 하고 계신 분들도 있고, 대부분 직장 생활하며 함께 수업을 듣는 것 같다. 다들 공통점은 '잘 할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열심히 배우려 하시는 의지가 느껴진다는 점인 것 같다. 나 또한 그 열정을 이어 받아 얼른 학위도 따고, 자격증도 따며 열심히 살아가봐야겠다.


한계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무력함을 맛봤던 것 같다. 포트폴리오도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결과가 아쉽고, 학위라는 변수가 이렇게 크게 작용할 줄도 몰랐는데, 당장에 해결도 불가능 하다니. 데이터 분석가라는 포지션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었고, 이력서 등을 쓰며 자존심도 많이 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힘든 순간에 고민을 털어놓을 아내와 친구들이 있고, 함께 고민하며 이것 저것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취업을 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또 다른 문제가 언제든 생길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잘 이겨내기를 소망해본다.


P.S 브런치에 동시 게재를 시작했습니다. 기존 글은 티스토리 (https://programmerhallucy.tistory.com/)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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