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얼마 전, 우리와 3년 남짓 함께 했던 고양이가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는데, 손 쓸 겨를도 없이 너무나 먼 곳으로 가버렸다.
오래간만에 글로써 인사드린다. 사실 새롭게 작성하던 글도 있고, 신혼여행기도 정리를 해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 소식을 전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마음을 추스르기가 참 어려웠는데, 그 사이에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일상생활로 돌아오고 나니 그래도 진정이 됐다. 슬픔을 달래고, 상냥이와의 추억을 남기고자 글을 적어본다.
상실을 겪은 이가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3년 전, 이제 막 부부의 연을 맺은 우리에게 천사 같은 고양이가 찾아왔다. (https://programmerhallucy.tistory.com/63) 2번의 파양으로 인해 상처가 많았던 녀석을 보듬어주는 과정은 냥이에게도, 우리에게도 회복의 시간이었다.
처음 냥이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사진으로만 보던 녀석을 만나게 되니 신기했고, 그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떨리는 마음 또한 들었다. 그렇게 첫인사를 건네었는데, 냥이가 겁을 잔뜩 먹고 있어서 나도 덩달아 긴장을 했었다. 새로운 집과 새로운 삶에 대한 긴장감은 둘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겁쟁이 고양이와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츄르도 주고, 매일을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일상이 될 때쯤, 냥이도 새로운 삶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만 하면 집에서 가장 구석진 부분으로 도망가기 바빴는데, 언젠가부터는 우리가 옆을 지나가도 놀라지 않았고, 눈앞에서 그루밍을 한다거나, 침대에 누워있으면 후다닥 달려와 엉덩이를 바짝 들어 두드려 달라고 하는 등 우리가 편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여전히 겁이 많고 눈치를 엄청 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여는 모습에 참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겁 많고 눈치 보는 모습에 슬퍼지기도 했다. 파양 당하기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상처를 받았던 걸까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었다. 그 상처만큼 우리가 더 보듬어줘야겠다 싶었던 것 같다.
냥이는 수다쟁이였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울었는데,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 중이면 자기와 이야기하는 줄 알고 계속 야옹야옹 우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겪기도 했다. 다른 고양이랑 비슷하면서도 남다른 면이 있는 고양이가 아니었나 싶다.
냥이는 따뜻한 걸 참 좋아했다. 낮에 해가 비치면 햇살을 만끽하고, 전기장판을 틀면 그 위에서 한참을 누워있고는 했고, 어느샌가부터 우리보다 침대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자려고 침대로 올라가면 짜증 내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나는 꽤나 예민한 성격이라 냥이와의 동거가 쉽지는 않았다. 야밤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우다다 하고 방을 뛰어다닌다던가, 내가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심심하다고 낮은 소리로 웨옹웨옹 운다던가, 여기저기 토를 한다던가 하면 치우느라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발톱 자르다가 몇 번 팔에 상처도 나고, 온몸과 옷에 새하얀 털이 항시 붙어 다녔던 건 말할 것도 없다.
당시엔 그런 모습들을 귀찮게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유독 그런 순간들이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신혼여행을 일주일 앞둔 우리는, 오래간만에 둘만의 금요일 저녁을 맞이하여 외출을 하게 되었다. 집 앞에 오뎅바도 들렀다가, 노래방도 즐기고, 포켓볼도 치고... 즐거운 금요일을 보내고 잠에 들었다.
한창 자고 있을 무렵, 갑자기 냥이가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내서 잠에서 깼다. 처음엔 그냥 찡찡 거리는 줄 알고 냥이를 말렸는데, 그래도 계속 울길래 보니 냥이가 화장실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 몸을 들어 올리니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패닉이 온 아내를 달래며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 주변 동물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 서둘러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버린 듯했다. 의미 없는 선생님의 반복 동작 끝에 아내는 무너지고,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선생님은 냥이가 아직 우리 얘기를 들을 수 있으니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 아내는 냥이에게 거듭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나도 그렇게 믿기지 않는 작별을 고했다.
잠시 후에 우리 앞에 놓인 건, 고스란히 누워진 냥이가 담긴 상자였다. 허망함이 몰려왔다. 갑작스럽고, 잘 믿기지도 않고, 이게 정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심장마비라니. 그냥 잠에 든 거 같은데, 콕 찌르면 눈을 부라릴 것만 같은데, 더 이상 눈을 뜨지 않는다.
차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병원에서 받은 팸플릿을 보고 허겁지겁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예약했다.
잠시 들른 집에서도 둘이 한참 눈물을 흘리다가 겨우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도착을 하니 우리 말고도 한 팀이 더 있었다. 강아지를 보낸 분들 같은데, 그래도 이분들은 갑작스럽게 죽은 게 아닌 건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였던 거 같다. 추억을 도란도란 얘기하는 걸 가만히 듣다 보니 냥이 모습이 떠올라 괜히 눈물이 더 났다.
시간이 지나 우리 차례가 되고, 냥이의 유품들을 조금씩 챙긴 후에 화장이 시작됐다. 가족들, 그리고 평소에 냥이 얘기를 많이 했던 지인들에게 하나 둘 연락을 하는데, 친한 형에게 전화를 했다가 눈물이 확 쏟아졌다. 아내가 나보다 더 힘들걸 알기에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한 거 같다.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눈물을 너무 흘리니 눈물샘이라고 해야 되나, 관자놀이가 너무 아팠다. 살면서 이렇게 울어본 게 처음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울면 이런 곳까지 아플 수 있구나 싶었다. 아내도 나도 너무나도 지쳤다.
화장이 끝나고, 우리 앞에 놓인 건 '메모리얼 스톤'이라고 하는, 조약돌 모양으로 가공된 유골이었다. 그 조그마한 돌이 꼭 나의 고양이같이, 깨질 것 같이 작고 소중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만 봤다.
그렇게, 냥이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에 대해 들어봤는가? 반려동물이 떠난 후 느끼는 상실감, 공허함 같은 정신적 고통을 칭하는 말이다. 생각보다 상실감은 불쑥불쑥 우리를 찾아왔다.
냥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냥이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루 날린다고 싫어했던 스크래쳐, 맨날 치우기 귀찮았던 냥이 화장실... 아내는 얼마 전 사준 장난감을 붙들고 오열을 했다. 나는 냥이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올수록 마음이 힘들어 다 치워버리려고 했는데, 아내가 극구 말리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외출했다가 들어올 때면 현관문을 여는 게 두려운 순간이 있다. 문을 열면 냥이가 있을 것만 같은데, 이제는 적막만이 우리를 반긴다.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원래는 매일 자기 전에 냥이 화장실을 치웠는데, 이제는 내가 치워놓은 화장실이 다시 더럽혀지지 않는다. 집 안에 햇살이 드리울 때면, 녀석이 자주 앉던 캣타워 한 편이 허전하다. 침대에 누울 때면 냥이가 잽싸게 다가와 자기도 같이 누워있자고 울고 있을 것만 같다.
아내는 하나님도 원망하고, 자신도 원망하고, 뭐든 냥이에게 더 해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냥이 냄새가 짙게 배어있던 침구류를 최근에 빨아버린 걸 후회했다. 병원이라도 한 번 더 데려갈 걸, 츄르라도 한 번 더 줄 걸 하며... 냥이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집에 차마 있을 수가 없어 아내는 나를 따라 출근길에 외출을 하고, 나와 함께 퇴근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지, 우리는 곧바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마음의 안정을 많이 얻어 돌아오게 되었다.
냥이를 보내고 며칠 뒤, 상실감 달래기의 일환으로 아내와 고양이 카페에 갔다. 나름 집사 출신이기도 하고, 고양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행동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만만하게 갔건만, 상대는 역시 고양이였다. 다들 츄르만 날름 받아먹고 볼 한 번 만지게 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 두 마리 쓰다듬는 거로 만족하려고 하던 찰나, 한 녀석이 아내의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막상 냥이는 겁이 많아 저렇게 품에 안긴 적이 없지만, 괜히 냥이 생각이 났다. (고양이 천국에서 질투나 안 하나 모르겠다)
요즘 아내는 새롭게 고양이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한다. 나는 괜히 새 고양이한테서 냥이의 모습을 찾을까 봐 시간을 더 갖자고 하는 중이다. 아직은 좀 더 그리워하고 싶은 거 같다. 그렇게 차차 살아가지는 거겠지. (근데 입양센터에 올라온 고양이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 오늘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거창한 내용보다는 그냥,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몇 자 적어봤다. 평소에 쓰던 글과 달리 조리 있게 말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덕분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잔뜩 해소한 기분이다. 글에 첨부할 사진을 고르려 사진첩을 켜보니, 참 많이도 찍었다. 아닌 척하면서 막상 나도 녀석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상처받은 고양이와 함께한 시간, 회복된 것은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주고받은 사랑처럼, 녀석의 상냥한 마음이 고양이 천국에서는 더욱 빛을 발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