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가 내게 온다는 건

아버지가 되다

by Wave on the Blue
올 한해 가장 많이 들었던 염따의 <살아숨셔4>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6tnsYgMFN1emjg1Tzi0PAw3pTBM%3D 세계가 내게 밀려올 때


오랜만에 글로 인사드린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또다시 연말이 와버렸다.


올해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단순히 ‘많은 일이 있었다’고 말하기엔 하나하나가 너무 묵직했다.


2025년은 이렇게 모든 게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정리되는 해가 아니었나 싶다.


올해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아내와 부부 상담을 받았고, 상사와의 면담 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교통사고를 냈고, 회사 워크숍으로 해외에 다녀왔다. 중국에는 총 5주간 출장을 다녀왔고,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했으며, 방통대 마지막 학기를 마쳤다.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있고, 운동도 하고 있다.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고양이 천국으로 떠난 상냥이를 위해 울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세계가 뒤집힐 법한 사건이 생기게 되었으니... 빠르게 글을 시작해 본다.


(주의) 제일 마지막은 꼭 보길!


3년차 부부의 위기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8u4uLxReG5%2FwNTuvdkpkOvtS0jI%3D 파리의 아침


'늘 하던 대로'가 통하지 않을 때


지난 설날이었다. 긴 연휴를 대비해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연휴 직전에 심한 감기에 걸려버렸다. 대부분의 계획은 무산되었고, 결국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내 역시 덩달아 간병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쉬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무기력한 내 모습과 집에만 머무는 답답함이 겹치며 아내가 점점 지쳐갔다. 서로 힘든 상황 속에서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결국 말과 말이 부딪히며 상처를 주고받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문제를 우리 둘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연인으로, 또 부부로 함께 지내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은 늘 있는 일이고, 이 정도 연차면 갈등을 해결하는 요령이 어느 정도 생기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자리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미 해결했다고 여겼던 과거의 갈등들까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사실 아내가 화가 난 이유는 단순히 이번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결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해 온 내 모습에 대한 실망감, 깊은 대화를 피하며 쌓인 오해, 그렇게 몇 년간 축적된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그건 분명 3년 차 부부의 최대 위기였다. 늘 하던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방법을 떠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상담받아볼까…?”


그렇게, 부부 상담이 시작되었다.


사랑의 카운슬링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BswXSTnlGzsVO%2FOlJS8gUixAGK0%3D (기간 한정) 파리의 연인


눈물은 계획에 없었지만


며칠 뒤, 아직 풀리지 않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상담소로 향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상담사는 믿을 만할까?’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비용 역시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한 상담소의 첫인상은 ’… 진짜 전문적인 곳 맞겠지?‘였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공간에 여기저기 붙어 있는 포스터들. 나쁘진 않았지만, 단번에 신뢰가 생길 만큼 전문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기 전 먼저 서류 형식의 심리 테스트와 가벼운 문답을 진행했는데, 나는 솔직히 엄청 와닿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질문도 그렇고 해석도 그렇고…

이후 본 상담이 시작됐다. 먼저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같은 사건을 함께 겪었음에도, 아내의 시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전혀 다른 장면처럼 느껴졌다.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할까. 아내는 자신의 마음을 ‘아이스크림을 들고 서 있는 답답함’에 비유했다.


아내의 이야기가 눈물로 마무리되고, 내 차례가 되었다. 하나둘 말을 꺼내다 보니 그동안 쌓여 있던 스트레스와 답답함,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스스로도 내가 울 줄은 몰랐기에 꽤나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상담사 선생님은 섣불리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 충분히 공감해 주었고, 우리에게 감정이 많이 쌓여 있으며 서로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어 주시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상담을 유도하셨다. 그런 위로를 체험하기 전이었으면 꽤 망설였을 금액이었지만, 효과를 경험한 직후라 그런지 우리는 흔쾌히 거금(?)을 결제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아깝게 쓰이진 않았다)

이후 우리는 수차례의 상담을 거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몰랐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각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가장 큰 변화는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다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서로의 성향을 고려하고 배려하며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계획이 있거나, 이미 삶을 함께하고 있는 연인이라면, 장기전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상담을 받아보기를 추천!

정답?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6Dkt3i7j%2B3dVaHecDXlJ7BlMqFE%3D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산에서


고난 속을 지나가며


작년 10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예상보다 훨씬 거친 시간을 지나게 되었다. 지난 글에도 상사 분께 와장창 깨졌던 이야기를 썼었는데, 이후로도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하며 계속 지적을 받았다. 결국 나에 대한 상사 분의 기대와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더 큰 절망에 빠뜨린 일이 있었다. 당시 상사 분과는 한 달에 한 번 정기 면담을 했는데, 하루는 이런 말을 들었다.
‘이 분야가 안 맞는 것 같으면, 진지하게 다른 직업을 고민해 봐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화가 확 올라왔다. 음악을 관두고 어떻게 2년을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관두면 나와 아내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데.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숨이 턱 막혔다.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상사 분은 나보다 이 필드에 오래 계신 분이고,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하신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수록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구렁텅이에 빠졌다. 출근이 두려워졌고, 매사에 긴장하게 되었으며, 상사 분에게 말을 걸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씩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했다. 새벽에 몸이 달아올라 잠에서 깨는 날도 잦아졌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 시기는 아내와 함께 상담을 받고 있던 때였다. 사실 상담 자리에서 직장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내와의 관계에 더 집중하고, 그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담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과거도 그렇지만, 지금 겪고 있는 일들도 결국 나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굳이 그 이야기를 피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둘 직장에서의 일들을 꺼내놓게 되었다.


얘기를 들은 상담사 선생님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왜 상사가 무조건 맞다고 생각해요?’였다. 상사 분이 경험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정답만 말하는 건 아닐 수 있고, 굳이 그런 말에 전부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갔다. 여태까지 내가 너무 과하게 긴장해 왔던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문제가 생기거나 긴장하는 상황에 놓이면 몸부터 굳고 위축되는 타입이라는 것. 그렇게 나를 돌아보니, 살아오면서 비슷한 순간들이 꽤 많았다는 게 떠올랐다.


그 이후로는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다루는 게 조금씩 쉬워졌다. 예전에는 위축될수록 오히려 상황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걸 한 박자 늦출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이 끝난 뒤, 이제 하나씩 상황을 바꿔보기로 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손을 보기 시작했다. 마인드적으로는 최대한 위축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내 일을 다시 열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흥미 있는 지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 생활 면에서는 취침 시간을 지키려 애썼고, 회사에서 졸지 않기 위해 커피뿐 아니라 콜라 등에 있는 카페인도 최대한 줄였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영양제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스펙을 보완하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그렇게 지켜 나간 지 몇 달째, 다시 상사 분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업무 이야기가 나왔고, 상사 분이 이렇게 말했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오랜만에 보이는 눈물이었다. 그동안의 시간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가며 순간 울컥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실수하고, 혼날까 봐 위축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진 기분이 든다. 중국으로 5주간 출장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 프로젝트도 마무리했고, 마음에 내상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만큼 단단해진 느낌도 든다.


여전히 업무는 내게 긴장감과 두려움을 준다. 다만... 이제는 그 두려움을 견뎌낼 힘도 함께 기르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기타 각종 소식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3Xlnp919GtGSbLdCxeb9qmoKnHM%3D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었던, 이탈리아 피렌체


분량 이슈로 짧게 전해 보는 소식들


올해는 팔자에 없던 세계 유랑을 했다. 회사 워크샵으로 일본, 중국으로 5주 출장, 유럽으로 신혼여행까지. 매번 밀도가 정말 높은 여행을 한 터라 각 여행기는 반드시 블로그에 담아내고 싶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최근 경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워낙 오래 함께한 친구들이라 언젠가는 결혼할 거라 생각했지만, 한 편의 잘 만든 드라마를 옆에서 지켜본 기분이었다. 우리 부부처럼 행복을 잘 일궈 나가길.

집 근처에 일명 ‘산스장’이 생겼다. 덕분에 놀이터에서 아이들 눈치 보며 턱걸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벤치프레스 머신도 있어 무게를 조금씩 늘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전히 주 3회 운동 중.

방통대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했다. 2년이 걸렸다. 마지막 학기라 조금 편하게 가려했는데, 점수가 아쉬워 재수강한 과목도 있었고 교양도 생각보다 빡셌다. 그래도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여전히 음악도 만들고 있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고민 중이고, 주변 몇몇에게만 조금씩 들려주고 있다. 언젠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업물이 나오는 날까지!

저번 글에서도 전했지만, 우리에게 왔던 천사 같은 고양이 '상냥이'가 천국으로 떠났다. 너무나도 슬펐고, 지금도 그립지만...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아내가 몇 개월의 고군분투 끝에 2종 보통 운전면허를 땄다. (나름 전부 한 번에 통과했다.) 부부 연수는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땄으니 오케이

올해 설날에는 나, 하반기에는 아내가 각각 교통사고를 냈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던 차를 시속 5km로 들이받았고, 아내는 주차하다 옆 차를 긁었다. 보험비가 두렵지만...덕분에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신기술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AI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라 ChatGPT Plus를 결제해 매일 씨름하며 코딩하고 있다. AI 만세! 까지는 아직인 것 같다.

최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다. 때론 놓아줘야 할 인연도 있다는 생각이 간간히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dqW8ao26GVlaxwf%2BO3WelncQZmc%3D 벌써 팔다리가 자라고 있다!


'찹찹이' 아빠가 되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무겁겠지만, 내게는 유독 더 크게 다가온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을 일에 몰두하며 자신을 돌볼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금전적인 여유까지 모두 가족에게 쏟아오신 분이다. 나는 그런 책임감과 성실함을 존경한다. 과연 나도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부부에게 축복이 찾아왔다.


사실 결혼 당시 우리의 계획은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혼여행이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고, (결혼식 후 약 2년 만에 다녀왔다) 상냥이의 빈자리까지 느껴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물론 이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고, '생각을 해보자~ '정도였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가벼운 마음을 단번에 꿰뚫고 생명의 축복이 찾아왔다. 아직 10주도 되지 않아 공개가 조심스럽지만 (보통 12주 이후가 안정기라고 한다), 연말이기도 하고 기쁜 소식을 나누고 싶어 조금 이르게 우리 ‘찹찹이’를 소개하게 되었다.


‘찹찹이’라는 태명은 태몽과도 관련이 있고, 우리의 소망을 담은 이름이다. 물건이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인 모습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 곁에 껌딱지처럼 찹 붙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지었다. 어느 날 아내가 꾼 꿈에서, 커다란 갈색 푸들이 자기 몸에 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모습이 마음에 남아 찹찹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이 주신 사랑과 헌신처럼, 우리 또한 찹찹이에게 사랑과 헌신을 전할 수 있기를. 저물어 가는 2025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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