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우리는 우울을 등으로 맞이한다. 이미 발목까지 들어찬 우울에 그대로 가라앉기보다는 애써 못 본 척 외면해야만 한다. 젖은 발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유튜브를 보다 잠들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내일을 맞이한다.
고됨, 우울, 불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들을 외면해 온 것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생계유지와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을 제외한다면 크게 두 가지 심리가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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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무지 ]
무지는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무기력에 장시간 몸담고 있다 보면 평소와 현재의 모습 사이에 벌어진 갭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평소라면 의식하지 않고도 거뜬히 해냈을 일들을 버거워하는 스스로를 보며 한심하게 여기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개선할 만큼 회복되지 않아 부정과 실망을 반복하고 눈앞이 노래져야만 밥을 먹는다.
현재 자신이 '숨만 붙어있는 상태'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기대를 버리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독한 우울과 무기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바로 이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다음은 보다 세심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산책과 운동 같은 것보다 더, 더 사소해야 한다. 가령 '오전에 일어나기', '일어나면 커튼을 걷고 물 한잔 마시기' 같은 것들이 좋겠다.
뜨고 지는 해와 함께 시간의 흐름까지 가려버린 커튼을 걷어 햇빛의 생기를 방 구석구석에 불어넣고, 놓쳐버린 시간들을 다시 쥐어본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살아났다면 그제야 본인의 몰골은 어떤지(아마 최악일 것이다.) 살필 여유가 생길 테고 손톱과 수염은 깎았는지,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면 된다.
그러고는 자신의 '꼬라지'를 고스란히 투영한 방을 치운 뒤,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거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정상이라고 여겼던 생활로 돌아가면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서 우리는 쉽게 조급해진다. 작은 루틴을 이어 붙여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빚어내는 과정이기에 차근히 기초를 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다독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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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게) 불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
현재 본인을 힘들게 만든 원인보다, 그로 인해 어느 방면에서든 한 부분이라도 가치가 떨어진 자신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우울을 등지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대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 사람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며, "이 정도쯤이야 아무렇지 않아", "남들 다 그러고 사는데"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틀어막는다. 또한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부족하고 무능한 거라며 가해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퇴로까지 차단해버린다.
나가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살아가며 한 번쯤은 필연적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일종의 천재(天災)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뒤집어지면 비교와 과시에서 얻은 행복은 금세 자기 연민으로 변모하여 발을 묶고 깊은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스스로를 낙과 취급하면서.
자기 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눈앞의 상황을 해결하여 추락한 자존감을 주워 담기보다 더욱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바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평소 사용하지 않은 근육처럼 익숙지 않고 괜스레 낯간지럽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행위에 대한 고찰은 유통기한이 긴 행복의 윤곽을 그려준다. 더불어 행복을 제공하는 주체를 타인에서 자신으로 돌림으로 비교와 자격지심에서 비롯한 불안정한 감정들에 비로소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것은 그저 행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일상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과시욕으로 가리고 외면한 사실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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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상실에 뿌리를 둔 허무를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모든 상실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허무를 딛고 일어설 자신만의 '트리거'를 마련해놓아야 한다. 현재를 비틀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줄 일말의 여유를 되찾기 위함이다.
평소에 체감하지 못하는 여유는 부재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내며 균일한 하루들을 보내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그러니 실컷 당황하고 울어봤다면 심호흡 한번 크게 들이켜보자.
걸음과 걸음 사이의 규칙적인 호흡이 안정감을 형성하듯 숙달된 여유가 일상을 이어나갈 최소한의 여력을 제공한다. 또한 무기력과 우울감에 잠기지 않도록 막아주고 수십, 수백 번을 굽히고 주저앉아도 나의 본질만큼은 지켜낼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