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이하 알쓸 시리즈)의 미덕은, 알아둬도 쓸데가 없다는 데 있다. 쓸데가 없는 잡학사전에 지나지 않는다는데도 시청자들은 알쓸 시리즈 앞에 모여든다. 나도 그렇다.
다이어리를 쓰는 일도 다이어리를 쓴다고 쓸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만의 잡학사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런데 알쓸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그 주제가 인간이든, 지구든 그리고 내가 쓰려는 다이어리든지 간에 할 이야기가 무진장 많다. 알쓸의 백미는 '수다'에 있고, 수다의 본질은 쓸모가 없다는 데 있다. 수다가 쓸모가 있었다면, 애초에 우리는 쓸모라는 포인트에서 재미를 잃었을 것이다. 자고로, 호모 사피엔스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쓸모가 죽어야 재미가 산다.
tvN알쓸시리즈의 원조는 2018년 알쓸신잡이었다. 유시민, 김영하, 정재승, 황교익 4명의 박사가 출연해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마구 넘어서는 토크 수다를 펼쳤다. 주제 따위 무시하고, 옆길로 마구 새는 토크에 출연자들의 신들린 토크가 이어지고, 시청자는 쓸데없는 고퀄 토크에 환호했다. 원조 알쓸시리즈, 알쓸신잡의 인기에 힘입어, 알쓸범잡, 알쓸인잡, 알쓸별잡으로 시리즈를 이어갔다. 2023년 현재(2023년 8월 3일 첫방) 알쓸별잡이 방송되고 있다.
나의 다이어리 역사는 1994년에서 시작된다. 중학교 때는 필통 안에 시간표를 붙여 다니고, 수첩이라는 것을 이용해 숙제라든가, 시험 범위등을 적었다. 메모할 일이 있어도 역시 수첩을 이용했다. 중학교 3학년까지 나의 뇌엔 다이어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1994년, 시골에서 도시 고등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다이어리'라는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다이어리는 내게 빅뱅과도 같았다.
그 해의 연도와 월별도 달력이 달려있고, 간단하게 뭔가를 보관할 수 있는 주머니 같은 것도 달려 있고, 메모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이렇게 알찬 수첩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의 이름이 '다이어리'라고 했다. 일기를 쓰는 일기장이 아니라 월별, 날짜별로 생일도 적고, 중요한 일도 적고, 하고 싶은 일도 적고, 기뻤던 일도 적고, 누구를 만나는 날도 적고... 적을 것이 많았고, 기억할 것도 많았다.
학교에 가면 가장 먼저 다이어리를 폈다. 쉬는 시간에도 다이어리를 폈다. 공부 시간 외에 다이어리를 펼치는 행위 자체가 내게 숨구멍과 같았다. 한번 맛 들인 다이어리는 매년 쓰게 됐다.
대학교에 가서도 다이어를 썼다. 취직을 하고서도 다이어리를 썼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다이어이를 썼고, 40대 중반 조기 은퇴 후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지금도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다이어리 인생 30년이다. 다이어리를 써서 내 인생이 달라지거나(그럴 리가) 내게 교훈을 주거나 따위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알쓸시리즈처럼 써도 쓸데없었고, 안 썼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을 다이어리다. 그저 나의 30년 잡학 사전이 다이어리에 담겨 있을 뿐이다.
알쓸의 미덕은 쓸데없는 데 있다고 했다. 내 다어이리 쓰기 30년 세월의 미덕도 쓸데없는 데 있다. 다만, 쓸데없는 다이어리를 30년 썼는데도 여전히 쓰고 있다. 올해로 31년째다. 나는 왜 다이어리를 쓸까?
알아두면 쓸데는 없지만, 다이어리 잡학사전의 만렙 문을 여신 여러분 격하게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