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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Aug 29. 2023

다이어리에서 찾는 인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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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리엔 내 인생의 키워드들이 있다. 키워드들을 얼추 맞추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키워드는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타임머신처럼 사용한 마들렌과 같은 역할을 한다. 프루스트는 작은 조가비 모양의 쿠키인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으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고, 나는 다이어리의 키워드들을 펴는 순간 과거의 어느 순간의 인생 속으로 돌아간다.


 다이어리 속 키워드엔 특별한 기능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정확한 날짜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2022년 8월 29일의 내가, 다이어리 속엔 단단히 적혀 있다. 2002년 8월 29일의 내가 다이어리 속엔 똑똑히 적혀 있다. 우린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언젠가', '그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언젠가와 그때는 대부분 정확하지 않다. 기록하지 않은 것들은 시간이라는 모래사장에 사정없이 파묻힌다.  모래사장에 파묻힌 기억들은 잊힐뿐더러, 심지어 오류도 일으킨다. 나는 다이어리에 적힌 년도와 날짜, 요일을 보면 반갑다. 나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되고, 오류도 많지만 다이어리에 적힌 숫자들은 그런 나를 변호라도 하듯 나를 대변하고 있기에.


 그 숫자들, 날짜에는 나의 사건, 나의 이야기가 키워드로 적혀있다. 어찌 보면, 이것들이 내 삶의 평가 기준이 될 것 같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김영민 교수는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이어리에 적힌 키워드들을 엮으면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된다. 그 이야기는 나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 과연 나는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김영민 교수는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등장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춤하게도 다이어리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다이어리의 날짜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 누군가가 내 인생의 좋은 등장인물인지가 중요한 포인트다. 나쁜 사람 혹은 싫은 사람의 이름을 쓸 때도 있지만, 나쁘거나 싫은 사람의 이름은 다이어리에 중요하게 쓰지 않는다. 다이어리엔 단지 인물만 쓰여 있는 게 아니라, 인물에 대한 나의 태도까지도 적혀 있다. 태도에는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고. 내게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좋은 인물, 나의 다이어리 좋은 인물 넘버원은 제주 애인 청재설헌이다. 


넘버 원, 제주 애인 청재설헌


 애인은 직장인 제주도를 돼지우리로 비유했다. 전라도가 고향인 그는 직장 때문에 제주에서 돈벌이를 할 뿐, 마음은 늘 전라도에 있었다. 등치가 제법 있어 스스로에게 돼지라는 별명을 부여한 애인은, 제주도가 자신을 가두는 우리와도 같다며 제주도를 돼지우리라 불렀다. 나에게 제주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이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비행기 타고 가는 좋은 곳이었다. 애인이 제주에 있다는 이유로, 애인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제주 여행을 계획했다. 그때 숙소로 정한 곳이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B&B 하우스 청재설헌이었다. 제주까지 가서 애인을 만나고 가장 반가운 사람이 애인이어야 할 터인데, 나는 그날 제주에서 애인보다 청재설헌 주인장 김주덕 님에게 홀딱 반했다.


 청재설헌 김주덕 님은 끝내주는 이야기꾼이었다. 그날 나를 처음 봤는데도, 오래된 연인처럼 나를 다정하게 대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끊이지 않고 해 줬다. 애인이 혼자 제주시 연동에 있는 숙소로 떠나고 청재설헌 아줌마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좋아서 설렜다. 다음 날, 아침도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주시에서 애인이 내려와서 오히려 서운했다. 애인도 눈치챘는지, 청재설헌 아줌마에게 눈먼 나를 다독여 서둘러 체크 아웃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청재설헌 아줌마를 제주 애인이라고 부른다. 너무 좋아서... 아줌마는 나를 어린 애인이라고 부른다.


 후에 제주도에 혼자 갔을 때 아줌마는 아줌마의 친구들을 내게 소개해 줬다. 토우 작가, 서양화가, 금속 공예가, 한라봉 농부... 모두 제주 애인처럼 좋은 분들이었다.


 그 친구들이 어느 날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아줌마 친구들의 전시회도 보고, 무엇보다 아줌마를 보러 전시회장에 갔다. 그날은 아줌마와 못 본 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전시장 입구에서 나를 보자마자 덥석 안아줬다. 제주 애인에게선 랑콤 향수 냄새가 났다.


 "와, 엄청 오랜만에 보는데 어떻게 하나도 안 어색하죠?"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좋은 거예요."


 제주에 직장이 있던 애인은 전라도로 직장을 옮기고 내게서도 옮겨갔다. 내가 사랑했던 돼지우리 애인은 떠났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앓은 제주 애인은 지금도 나의 영원한 넘버원 애인이다.


 2007년 12월의 다이어리에 '청재설헌'이라고 쓰여있다. 매년 다이어리를 새로 쓸 때마다 '제주 애인 청재설헌 만나러 가기'라고 적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적혀있다. 가지 못해도, 애인은 알고 있다. 내가 올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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