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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09. 2019

네팔 포카라 에스프레소 도피오

저먼 베이커리 에스프레소의 추억

 카페를 하면 커피를 많이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적으로는 '많이'가 가능했다. 그런데 오롯이 커피 한 잔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손님이 언제고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손님은 내가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자 커피 한 잔을 막 내려 잔에 담아 한 모금 마시려는 찰나에 오고는 했다. 손님을 치르고 나면 커피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후다. 향도 맛도 모두 떠나고, 검은 액체만 남아 있다. 그날 마신 커피를 셈하여 보니, 아침 오픈에 마신 에스프레소 두오가 유일한 커피다운 커피였다.


 카페를 하는데도 커피가 마시고 싶은 갈증. 카페를 열기 전에 어느 대박 카페 사장은 정작 자신의 커피를 내릴 틈이 없어 자신은 믹스 커피를 타 마신다고 했다. 그땐 '설마 그럴리라.'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카페의 사장이 되어 보니, 정말이지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없는 것이다. 커피도 내려야 했고, 빵도 구워야 했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할 일이 우주만큼 방대했다.


 피곤이 파도를 치고, 몸은 허우적댔다.


 그러던 차에 안나푸르나에 오르는 여정에 삶을 통째로 실어버렸다.


 놓으면 된다. 무슨 일은, 걱정한 만큼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은 걱정일 뿐. 카페 걱정일랑 우주의 일로 맡겨 버린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골아떨어진다. 방콕을 거쳐,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아! 휘몰아치던 피곤의 파도가 흔적도 없이 잔잔해졌다.'


 나는 커피도 좋아하지만, 커피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산'이다. 커피는 1순위, 산은 0순위. 산이 부르면 나는 기꺼이 애정 하는 커피도 포기할 수 있다. 안나푸르나에 오르고 싶었다. 안나푸르나에 오르기 위해선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 가야 했다. 안나푸르나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등산객들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포카라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포카라에 가면 저먼 베이커리라는 곳에 꼭 들러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소망도 위시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카트만두의 매연 가득한 쾌쾌한 공기와 달리, 포카라의 공기는 맑았다. 포카라를 감싸고 있는 페와 호수에는 안나푸르나 설산이 비취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저먼 베이커리를 찾아 나선다. 저먼 베이커리는 숙소에서 얼마 걷지 않아 페와 호수 앞 이발소 옆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저먼 베이커리의 빵은 아주 작은 유리 진열장에 소량 진열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도 그럭저럭. 크로와상을 고르는데 어머! 커피도 판다. 기대 없이 에스프레소도 주문한다.


 빵을 한 입 베어 무는데 아니 이게 뭔가. 너무 맛있다. 밀가루가 한국에서 먹던 그 밀가루가 아니었다. '뭐지? 뭐야?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빵 맛에 혼미해진 정신이 막 풀어쳐진 상태에서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크레마 상태 좋고, 향기도 좋다. 게다가 내열 유리잔에 주니, 보기에도 좋다. 그래도 뭐 맛에 큰 기대는 없다. 이 정도도 이미 좋았기 때문에. 그런데,


'와우! 너무 맛있다! '


 커피에 대한 갈증이 일순간 해결된다. 에스프레소 도피오로 한 잔 더 주문한다.    



 옆으로는 페와 호수가 보이고, 초록의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커피는 맛있고......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커피 타임이었다. 안나푸르나에 오르기 전, 신이 내게 주는 선물 같았다.


 신의 선물 같은 커피 타임을 갖고, 야심 차게 안나푸르나에 올랐으나 도중하차했다. 고산병이 온 것이다. 롯지에 반나절을 머물며 쉬었으나 고산병이 가시질 않아 결국 하산을 결정했다. 언제 또 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산하는 발길은 가벼웠다. 산은 계속 여기 있을 테고, 산 밑엔 저먼 베이커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나푸르나 등정 입구인 나야폴에서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들썩 들썩이는 택시를 타고 포카라로 다시 돌아와 제일 먼저 저먼 베이커리에 들러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한 잔 마신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어슬렁어슬렁 근처 카페테리아에 들러 피자 한 판을 시켜 먹고 페와 호수에 배를 띄워 멀리서나마 안나푸르나의 발뒤꿈치를 쳐다본다.  


 가끔씩 삶이 발목을 잡고 힘들 게 할 때 포카라 저먼 베이커리의 에스프레소 한 잔을 떠올린다. 그러면 발목의 아픔이 에스프레소 도피오 만큼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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