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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08. 2019

커피 취향과 삶의 엔진

커피 취향을 배워 삶의 엔진을 갈아타다

 섬세한 커피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커피 취향의 근원이 궁금해진다. 취향이란 어느 날 불현듯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로부터 어느 순간으로부터 학습됐을 것인데 그 누군가가 그 언제가 궁금하다.  


취향은 배워가는 것이다.

-조지 오웰, [근사한 차 한 잔 A nice cup of tea] 중에서


 조지 오웰의 표현대로 취향은 배워가는 것이다. 특히나 여러 취향 중에서 '커피의 향'이라는 취향은 배우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맛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지라도 향은 감각으로 파악하기 힘든 취향이다. 맛을 배운다고 할는지 모르나 사실은 향을 배우는 것이다. 맛을 표현하는 것보다 향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한 지식을 요하는 일이다. 커피를 마실 때 단순히 맛을 표현하는 것은 쉬울지도 모르나, 커피의 다채로운 향을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곤욕스러운 일다. 이 향기를 대체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이 향기는 대체 무엇인지......


 어떤 커피를 좋아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는 사실, 어떤 커피의 향을 좋아하느냐의 선택의 문제이다. 예가체프 같은 아프라키 계열의 열대 꽃향기를 좋아하는지, 코스타리카 같은 중남미 계열의 시트러스 향을 좋아하는지 그건 학습, 즉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우리 뇌는 낯선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선택하고, 익숙한 것은 좋은 것이라고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광고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광고에 노출된다는 것도 모른 채 반복되는 노출에 따라 그 대상을 더 좋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학습 효과다. 단지 노출만 되어도 우리 뇌는 그것을 좋아하도록 학습된다. 많이 본 것은 좋은 것이 되는 것이다.


 향기도 마찬가지다. 우리 뇌는 친숙한 향을 좋아한다. 친숙한 향은 위험하지 않다는 시그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출되는 향, 자주 맡게 되는 향을 선호하게 되고, 그것이 취향이 된다. 화사한 꽃향기를 선호하는 사람은 예가체프 커피를 자주 마시며 자연스레 그 향에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좋은 것이다. 이 사람의 커피 취향은 예가체프가 된다.  


 물론, 우리 뇌는 신선함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반복되는 것은 익숙함이고 동시에 지루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뇌는 지루함을 죽도록 싫어한다. 결국, 취향은 신선함과 친숙함의 균형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우리 뇌는 갈구하면서 동시에 만족한다.


 그렇다면 그 취향은 언제 드러날까? 취향이란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소비할 때 드러난다. 숨길 수가 없다. 이것은 취향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래서 고급 취향이라는 것은 경제 능력, 지위, 뛰어난 심미안을 드러낸다. 하지만 취향이 경제적 능력자들만의 것은 절대 아니다. 좋은 물건을 자주 살 수는 없어도 맥락을 갖고 키감성을 키워온 사람이라면 그 취향은 어디선가 우러나기 마련이다.


 취향이란 많은 것을 맛보고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취향이 없는 사람들은 주변을 바꾸지 않는다. 반면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은 주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취향은 배우는 것이기에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학습한다.


 취향을 갖는다는 것, 취향을 배운다는 것은 삶의 엔진을 좀 더 짱짱한 것으로 갈아타는 일일 것이다.  


 나의 커피 취향은 견과류의 고소함과 스모키 한 향이 살아있으며 첫맛과 끝 맛에 신맛이 살짝 올라오는 커피다. 싱글 오리진으로 그런 커피는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블렌딩 된 커피에서 내 취향의 커피를 만나면 정말이지 반갑다. 시 챗 말로 '취향 저격'이다. 특히나, 블렌딩된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때 그런 나의 취향을 저격한 커피를 만나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이런 커피 취향은 불현듯 생긴 것이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마신 지 올해로 만 10년째다.


 나의 에스프레소 입문은, 현재는 배우 엄지원 남편으로 더 유명한 건축가이자 작가 오영욱, 필명 오기사이다. 오기사는 나의 로스터리 카페 인테리어를 맡았었다. 인테리어 의뢰 후,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는데 그때 오기사가 주문한 커피가 '에스프레소'였다. 그때까지의 삶 동안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커피를 배우고, 카페를 차리겠다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라테 마니아였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라테를 마셨다. 오기사는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털어 마셨다.


'앗! 충격! 아! 멋지다!'


 그랬다. 에스프레소는 그렇게나 멋진 음료였다. 그 날 이후, 두 달여 진행된 인테리어 기간 동안 오기사는 어김없이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나는 오기사에게 에스프레소를 배웠다.


 카페를 오픈하며, 에스프레소에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이후, 나도 오기사의 에스프레소 수제자가 되어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을 마셔보니 이제야 좀 알겠다. 나의 커피 취향을.

오기사에게 배운 에스프레소, 수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나의 뇌는 학습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커피 취향이 맞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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