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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12. 2019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

관계를 맺을 시간이 필요해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레그 모텐슨ㆍ데이비드 올리버 렐린 [세 잔의 차] 중에서


 

 

 차 한 잔 할까?


 '차 한 잔 할까?'처럼 일상어로 쓰이는 말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밥 한 번 먹자'는 말보다는 말을 하는 쪽에서나 말을 듣는 입장에서 부담 없는 인사이기도 하다. 밥을 먹자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끼어들겠다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 한 잔 하자는 것은 그저 그 삶의 주변을 탐색해 보자는 의미 정도이다. 

 그런데 그 차 한 잔이 그저 한 잔이라면 탐색에서 그치겠지만, 그 차가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의 삶에 끼어들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즉,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세 잔의 차]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짓게 된 미국인 이야기다. 주인공 그레그 모테슨은 첫 학교인 파키스탄의 한 마을에서 인부들이 학교를 짓는 걸 하나부터 열까지 매의 눈으로 감독한다. 그때 그 마을 촌장이 그를 불러 당신 때문에 인부들이 미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차를 함께 마실 시간, 관계를 맺을 시간이 필요한데 모테슨은 목표만을 향해 그야말로 돌진했던 것이다. 그들은 꼭 필요한 학교라는 완성체 보다 모테슨과 관계를 맺을, 차 마실 시간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제야 모테슨은 그들과 차를 마시며 관계를 맺어간다. 한 잔, 두 잔, 세 잔...... 차를 마시고 그들과 관계를 돈독히 맺자 그의 감독이 없어도 공사의 속도는 놀랍도록 빨라졌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차를 한 잔 마셔보면 그 사람과 다음번 두 잔의 차를 마실지 아닐지가 결정된다. 차 한잔은 가벼우면서도 운명론적인 성격을 지닌 무거운 것이다. 운명이 차 한 잔에서 갈리기도 하는 것이다. '차 한잔 마실까?'의 그 놀라우리 만치 가벼우면서도 운명론적인 말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게 한다.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두 번째 차를 예약하게 하는 만남이 있다. 기분 좋고, 호기심 가득한 만남이었을 테다. 특히나 요즘 같은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살이에서는 차 한 잔의 만남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그 만남은 차 한 잔으로 끝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그런 만남만 있는 건 아니다. 꼭 두 번째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 


 통성명을 하던 낯선 차 한 잔의 시간을 가졌기에 두 번째 차 시간은 조금 더 유연하게 삶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두 번째 차는 느긋하다. 서로의 잔이 비워 가는 걸 바라보는 여유가 있다. 첫 번째 찻 시간엔 마음에서 멀리 돌아 말하던 문장들이 두 번의 차 시간에선 머리에서 바로 나온다. 나의 말을 헤아리지 않아도 된다. 진심을 말하면 된다. 


 이제는 판단을 한다. 첫 번째 차 한 잔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 선택은 빗나가기도 하니까. 


 선택지의 답에 따라 세 번째 차 시간이 결정된다. 세 번째 차를 마신다는 것은 이제 서로의 삶 속에 뛰어들겠다는 각오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 잔의 차]에서는 첫 번째 차는 이방인이요, 두 번째 차는 영예로운 손님, 세 번째 손님은 가족이라 했다. 그렇다. 가족이 되는 것이다.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신 사람을 헤아려 본다. 가족이 누구더라?


 한 잔의 차를 같이 마신 사람은 많다. 세 잔 이상의 차를 함께 마신 사람도 많다. 그러나 세 잔의 차를 통한 긴 시간을 통해 진정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을 진정한 관계의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목숨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아니 그 보다 그런 사람과 차 한 잔, 두 잔, 세 잔을 같이 마실 시간을 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차를 마실 시간, 관계를 맺을 시간이 필요하니까. 


 "차 한 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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