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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12. 2019

슛터는 커피, 빵은 거들뿐

커피가 먼저일까? 빵이 먼저일까?


커피가 먼저일까? 빵이 먼저일까?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빵까지 맛있으면 애정이 더 샘솟는다. 커피와 어울리는 빵은 커피의 맛을 헤치지 않아야 한다. 빵을 즐기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므로, 빵은 철저히 조연이어야 한다. 예전에 빵집이라 하면, 빵과 케이크를 파는 곳이었다. 음료는 고작해야 우유와 주스 정도. 그런데 요즘의 빵집은 거의가 카페테리아의 형태를 취하며 빵을 메인으로 커피도 판다. 손님들은 으레 빵과 커피를 시켜 먹는다. 이때는 빵이 매인이니, 커피는 그저 거들뿐이다. 어떤 빵이든, 어떤 케이크든 어울리는 커피. 그건 무취향의 커피일 것이다. 하지만 커피가 메인이 되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슛터는 커피다. 빵은 거들뿐이다. 슛터가 누구냐에 따라 커피의 맛이, 빵 맛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욕심이라는 변수가 등장한다. 빵집 사장님은 커피도 많이 팔고 싶고, 커피집 사장님은 빵도 많이 팔고 싶다.


 결국, 빵집의 커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 지점의 맛을 향한다. 커피집의 빵 또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지점의 맛이 되고 만다. 손님들은 실망한다. 커피도 별로고, 빵도 별로다.


 그래도 가긴 간다. 선택지가 별로 없으니. 커피도 맛있는데 빵까지 맛있는 집을 찾기가 그래서 어렵다. 사장님들도 어렵다. 이 까다로운 손님들의 입맛을 맞추려니.


 본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커피가게의 본질은 '커피'다. 커피가 맛있어야 하고 커피가 제일 중요하다. 빵은 있어도 좋겠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빵가게의 본질 또한 '빵'이다. '빵'에 충실하되 손님들의 니즈에 맞춰 '커피'는 부가적으로 가는 것이다. 중간이란 없다. 맛있으면 계속 가고, 그저 그러면 피치 못할 때 어쩔 수 없이 들르다 다른 가게로 간다. 빵이 맛있으면 커피는 마시지 않아도 빵은 계속 사러 간다. 그럼 된다. 


  커피집은 커피가, 빵집은 빵이 먼저다. 



커피가 책을 부른 것일까? 책이 커피를 부른 것일까?

 

 사실 커피는 커피 그 자체로 맛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커피는 커피 자체로 다채로운 향과 맛을 가지고 있어 그 하나가 작품이다. 완벽하게 맛있게 내려진 커피라면 그 한 잔 만으로 아무런 디저트가 필요 없다. 그런데 이 완벽한 작품을 마시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배가 고프지 않아야 한다. 배가 고프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침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기도 하지만, 그건 그 나라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코스 요리를 배 터지게 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밤새 소화가 안 된 더부룩하고 느끼한 뱃속이라면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도 족할 터이다. 부족하다면, 티라미수가 곁들여진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않은가. 우리의 뱃속은 밤새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 공복이다. 공복에는 뇌에 영양을 공급해 줄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그 탄수화물이 밥이어도 빵이어도 좋다. 

 아침 식사 후 마시는 커피가 하루 중 제일 맛있다. 나는 때로,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마실 커피 한 잔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 적도 있다. 빵이든 밥이든 몸에 에너지를 공급해 준 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 커피와의 단절을 겪은 후 마시는 아침 첫 커피는 감동이다. 매일 아침 마시지만 감격이다. 아직도 나는 커피와 목화 열애 중이다. 

 아침 첫 커피의 감격의 유효시간은 10시. 10시쯤이면 약간 출출한 시간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시간쯤이면 밤새 먹은 만찬이 소화되고, 아침에 마신 에스프레소의 유력도 막 사라지기 시작할 쯤이다. 두 번째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휘둘러 마시면 다시금 에너지가 샘솟는다. 그래도 출출하다면 우유를 곁들인 카푸치노를 마신다. 나 또한 이 시간쯤 두 번째 커피를 마신다. 10시는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의 분주함이 사라지고, 아직 하루는 많이 남아 있다. 이럴 때는 핸드 드립이 제격이다. 그라인더에 슝 갈아도 좋겠지만, 시간이 있으니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 향의 숨결을 하나하나 맡아가며 간다. 그 콩을 종이 필터에 조심스레 옮겨 담고, 정성스레 커피를 추출한다. 드립 커피는 분주할 땐 준비하는 과정도, 마시는 과정도 버겁게 느껴진다. 핸드드립은 자고로 손뿐 아니라 머리도 여유로운 시간에야 마실 수 있는 느린 커피다. 다 내려진 커피 한 잔을 들고 읽다 만 책장을 펼친다. 커피는 책이랑 마셔야 제 맛이니까.

 커피를 마시려고 책을 펼친 것일까? 책이 커피를 부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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