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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12. 2019

삶을 카페에 내던졌고, 행복했다

카페 다시 안 하세요?

 만 서른 살에 카페를 오픈했고, 올해로 만 마흔한 살이 되었으니 카페가 딱 만 10년을 채웠다. 카페는 지금 나의 길 위에 없다. 단골손님이 이어 운영 중이다.

 카페는 내 나이 만 서른 살을 기점으로 가장 잘한 일이었고, 마흔 살이 된 지금도 지금껏 가장 잘한 일이다. 카페를 운영한 건 3년 남짓이지만 그 세월은 40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몇 년 이었고, 남은 인생도 그 카페 이야기로 충만할 것이다. 제주에 사는 늙은 애인은 말했다. 이 카페 이야기만 가지고도 늙어서 재밌을 거라고.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그 이야기가 어렴풋이 와 닿았는데 마흔이 되고 보니, 카페를 떠나보니 이제야 그 이야기가 실감 난다.


 카페는 현실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먼저 엄습한다. 카페는 많아도 이미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 카페에 온 삶을 내던졌다. 현실도, 두려움도 모두 바람에 날려 버린 채. 2009년 2월 21일, 카페 오픈을 시작으로 나는 매일 선택을 하며 살았다.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감당 안 될 크나큰 일을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카페 손님, 매출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매 순간 그 선택을 포기하지 않았다. 해보고 싶은 일을 향해 마음껏 선택하고 망신당하고 상처 입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냈다.

 카페를 운영하기 전 나는 밥벌이 차원에서의 일을 해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라디오, 텔레비전 가리지 않고,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나를 부르는 곳에 응답하며 글을 쓰고 또 썼다. 아무리 방송을 해도 행복하지 않았다. 늘 허전했다.

 그런데 카페는 전연 달랐다.

 분명 마이너슨데 전 보다 더 고달픈 삶인데, 커피 내리느라 열 손가락이 늘 화끈거려 화상 연고를 달고 살면서도 그래도 행복했다. 카페는 밥벌이 차원이 아니었다. 그건 우주적인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벅찼고, 행복했다.

누군가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라는 말을 했다. 행복하기라 정말 쉬울까? 나는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돌고 돌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 행복은 어려웠다. 그 행복의 길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이 짧지 않았다. 다만, 행복의 길에 들어서자 그 행복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한 번 찾아온 행복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나를 꼭 붙잡아 주었으니까. 내가 그 행복의 마중물에서 떠났는데도 내 곁에 남아 있으니까. 지금도 카페를 생각하면 행복하고, 그 시절의 추억만으로도 앞으로 10년 후 40년 후에도 행복할 테니까.

 

 지금도 가끔씩 그때의 손님들은, 지인들은 내게 말한다.


"카페 다시 안 하세요?"


 카페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 물론 있다. 강렬하게 하고 싶다. 그리고 강렬하게 두렵다. 카페의 행복한 추억이 사라질까 봐. 이미 또 많은 카페와의 경쟁 때문에, 매출 걱정 때문이 아니다. 카페에 대한 나의 행복한 추억에 금이 갈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왜 일까? 왜 두려워졌을까? 그건 중간에 삶이 끼어들어서다. 나는 이제 그 길에 내 삶을 통째로 내던질 수가 없게 됐다. 그래도 섭섭하지 않다. 카페와의 행복한 추억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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