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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12. 2019

커피는 그냥 좋다

커피를 사랑하니까 더 잘하고 싶다

 커피는 그냥 좋다  


 예전에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 할 때 김용택 시인을 초대한 적이 있다. 그 날 김용택 시인이 초등학교 제자의 '사랑'이라는 시 얘길 해줬는데 시의 전문은 기억나질 않으나 그 일부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사랑


엄마는 그냥 좋다


 엄마를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제자의 시를 읽으며 무릎을 쳤다고 했다. 이유가 있는 사랑은 그 이유가 사라지면 사랑도 끝나지만, 이유가 없는 그냥 좋은 사랑은 계속된다고, 그게 사랑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랑


커피는 그냥 좋다


 내게는 커피가 그렇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그 사랑이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2교시가 끝날 때쯤이면 커피를 드셨다. 그 향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청소부서를 배정받던 날, 난 뛸 듯이 기뻤다. 선생님들이 커피 타임을 즐기던 휴게실 청소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 집엔 커피가 없었다. 나는 그 휴게실에서 생전 처음 커피가루를 만났고, 프리마라는 하얀 가루를 만났다. 뚜껑을 열어 보고 싶었고, 맛을 보고 싶었다. 하루하루 그 유혹은 더 강해져 갔고, 나의 인내심은 드디어 한계치가 이르고 말았다.


 선생님이 오시지 않는지 주위를 단단히 살핀 후, 쿵쾅 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손으로 커피 뚜껑을 간신히 열었다. 


 '히야! 훅 끼쳐 오는 향기, 이게 커피로구나.'


 유리병에 쓰인 '맥심'이라는 타이포그래피가 경이롭게 보였다. 커피 카루 결정체 한 알을 입에 넣어 본다.


 '앗! 퉤 퉤 퉤!'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쓴 맛이었다. 그렇다면 그 옆에 자리한 '프리마' 저것은 또 무엇인가. 저게 바로 커피의 맛일지 모른다. 냄새도 분유 냄새가 나는 것이 먹을만하겠다 싶다. 커피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퍼 입속에 넣는다.


 '우와! 맛있다!'


 그날 이후 청소 시간이면 프리마를 상습적으로 퍼마셨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리송했다. 선생님이 마시는 그 커피는 분명 연한 갈색이었는데 향기가 기가 막히게 좋았는데, 이건 커피가 아닌데...... 대체 그 커피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 거지?


 기회가 왔다!


 선생님이 어느 2교시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 커피보다 더 진한 갈색의 컵을 주며 휴게실에 가서 커피를 타다 달라고 했다.


 '앗!'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선생님 얼굴과 컵을 번갈아 바라보자 선생님은 지령을 내려주셨다. 그때까지 나의 세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담임선생님뿐이었다. 


 "먼저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이고, 그 사이에 컵에 커피가루 2스푼, 프리마 2스푼, 설탕 2스푼 넣고, 물 끓으면 이만큼(컵에 손가락으로 표시를 해주셨다) 물 붓고 스푼으로 잘 저으면 돼."


 그 순간, 나는 비밀의 문이 열리는 걸 환희를 맛봤다.


 '저거였구나. 커피 만드는 법.'


 선생님이 알려주신 2:2:2 대로 커피를 제조했더니 과연, 진짜 커피가 되었다. 참을 수 없도록 좋은 향이었다. 선생님이 매일 마시던 바로 그 커피 향이었다. 스푼에 뭍은 커피를 핥아보았다. 내 생에 첫 커피 입문의 순간이었다.

 

 '이게 뭐야. 냄새는 이렇게 좋은데.......'


 그토록 고대했던 순간이었는데 첫 커피와의 만남은 실패였다. 그런데 그 이후, 나는 선생님의 커피 심부름을 계속했고, 휴게소 청소도 계속하면서, 커피를 자연스레 내 삶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커피를 진짜 마시게 되었는지, 좋아한 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고3 때 하숙집 언니가 내려주던 원두커피인지,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마시던 자판기 커피인지, 방송국 다닐 때 리포터 언니가 사주던 생크림 가득 올려진 카페 모카인지......


 모르겠다. 이유도 모르겠다. 커피는 그냥 좋다.  



사랑하니까 더 잘하고 싶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피아노를 사랑하고, 사랑해서 더 잘하고 싶었다고.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뭉클했다. 당시 나는 회사의 커피 마스터라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실기 시험에는 1분간 나라는 사람이 왜 커피 마스터가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출사표를 소개하는 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 어떤 멘트로 시작해야 할지 며칠 째 방향을 잡지 못했는데 조성진이 그 길을 정확히 제시한 것이다.

 커피를 사랑하니까 더 잘하고 싶다.


 커피를 사랑해서 더 잘하고 싶어 커피 마스터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이유였고, 목표였다. 소개 이후 커피 시연은 15분. 시연이 끝나고,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 말씀하셨다. 최고의 자기소개였다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커피를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더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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