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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11. 2019

카페를 마감하고, 시 한 편의 위로 샤워  

카페에 다이빙했던 몸과 마음은 시 한 편의 위로가 절실하다

 카페 오픈과 동시에 몸과 마음은 카페로 다-이-빙! 카페가 너무 좋아서 몸도 마음도 한눈이란 걸 팔지 않았다. 그저 커피를 만들고 손님들을 응대하고, 그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그 시절엔 카페가 나의 우주였다. 카페를 마감하는 시간이 되면 그제야 몸과 마음이 반란을 일으킨다. 손님들에겐 카페라는 공간의  여유를 즐길 권리가 있었고, 나에게는 그 여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커피콩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맛은 괜찮은지, 카페의 온도는 괜찮은지, 공기는 탁하지 않은지, 컨디바에 물은 비지 않았는지, 세미나룸 예약 상황은 어떤지, 공과금 낼 것은 무엇인지, 통장에 월세 낼 돈은 있는지...... 쉴 새 없이 살피고 또 살펴야 했다. 누군가에게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카페가 너무 좋았고, 그 일들이 내게 의미를 주고, 재미를 주었기에 그 힘으로 계속 밀고 나갔지만,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쯤이면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몸이 무너지든, 마음이 무더지는간에 바는 마감을 해야 하고, 청소기는 돌아가야 한다. 나에겐 내일이 없을 지라도 카페는 내일의 오픈이 벌써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순간 절실한 건 '위로'.


위로 :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속리산에서


-나희덕


가파른 비탈길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은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살면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시 한 편의 위로 샤워를 받으면 카페에 다이빙되었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카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젠 집에 갈 시간. 집에 가는 차 안에서도 줄곳 시를 생각한다. 시는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카페만, 커피만 생각하던 나를 산으로도 데려가고, 절간으로도 데려간다. 알고 있다. 시인이 말했듯이 카페를 벗어나도 나는 여전히 카페 안에 있다는 것을. 다만 나는 카페에 갇힌 시간을 선택했고, 그 삶을 고달프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맷새 소리


-백석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겨울밤 카페를 마감하고 백석의 시를 읽으면 기막히게 좋다. 물론 언제 읽어도 좋지만, 겨울밤에 읽는 백석의 시는 그 맛이 더 좋다. 신묘막측-이런 거창한 표현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의 결정체이다. 제목은 맷새 소리고, 시 내용은 '명태'다. 처마 끝 명태를 말리는 풍경을 어려서 본 기억이 난다. 겨울이면 엄마는 명태를 사다 처마 끝에 매달아 꽁꽁 언 명태를 마당 구석 땅 밑에 묻어 놓은 무 하나를 꺼내어 뜨끈한 명태탕을 끓여내셨다. 여기서 명태냐, 동태냐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을 터이다. 그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기인데 꼬리에 고드름이 열린 것이고, 해는 저물어 날은 다 지나고 볕은 서럽게도 차갑다. 한 겨울 카페를 마감하고 차 안에 올라타면, 차는 꽁꽁 얼어있다. 그러면 나는 명태가 되어 버린다. 차 안의 온도가 올라갈 때까지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리는 것이다. 풍경이 아니라 현실이고, 신묘막측한 백석의 시로 위로 샤워를 받는다. 따-뜻-하-다! 시는 따뜻한 것이다.


 카페의 오픈은 커피지만, 커피의 마감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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