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아래 커피 타임

커피 취향만큼은 저격당하지 말자

by 커피 읽는 여자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과 호텔 잡역부 아브람이 커피타임을 가졌던 볼쇼이 발레단이 내려다 보이는 지붕 위는 아니지만, (실상은 아파트) 지붕 아래서 수년 째 커피타임을 갖고 있다.


로스토프 백작은 아브람과 지붕 위에서 첫 커피타임을 가진 이후로, 매일 아침 자신만의 커피 타임을 의식을 치르듯이 매우 정교하게 치른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셀프 커피타임이랄까. 이른 아침에 여는 맛 좋은 동네 카페가 있다면, 가끔씩은 그곳에 들러 아침 첫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아직 이루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365일 늘 내 손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지 13년쯤 되어간다.


첫 직장이 방송국이었다. 상근직 라디오 구성작가로 AM 라디오 데일리 시사교양 프로그램 원고를 썼다. 원래는 FM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작가 자리가 비게 되어 대타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 그 자리를 탐내던 작가 언니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프로그램을 바꾸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시쳇말로 꿀 프로그램을 셀프 반납하고, 하드코어 프로그램에서 죽을 쑤게 된다. 일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의 PD이자 아나운서, 일명 아나듀서인 엠씨가 문제였다. 나는 결국, 그 아나듀서 때문에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인생의 파도는 나를 방송의 세계에서 TV와 라디오 작가로 넘실대게 했다.


그 시절, 나는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라 써야 되니까 썼다. 그렇게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서른이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답은 의뢰로 쉽게 나왔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 행복한 걸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2008년이었다. 이제 막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년 후 로스터리 카페를 오픈했다. 커피를 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 후 나는 늘 커피를 만들었다. 2022년 지금도 여전히. 그것이 취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커피 취향을 발견하고, 커피라는 취향을 가꾸는 사람이 되었다.




취향 저격수


취향이라는 말, 요즘 참 많이 쓴다. ‘취저(취향저격), ‘개취(개인의 취향)’란 축약된 말이 일상으로

쓰이고 한 사람을 평가하는 의미로 ‘취향이 좋다’ 또는 ‘취향이 별로다’ ‘취향이 고급지다’, ‘취향 참

특이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 취향이란 대체 뭘까? 취향은 그 단어를 풀이하자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경향성이다.


넷플릭스는 '취향'을 팔아 돈을 번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취향을 데이터를 통해 추천하고 머신 러닝을 통해 끊임없이 심화 학습한다. 나보다 내 취향에 더 관심이 많고 오로지 취향만 파서 돈을(그것도 떼돈을) 번다. 내가 삶의 온갖 희로애락에 던져진 채 곤죽이 되어 하루를 마감하더라도 넷플릭스는 나의 사정이라는 것에는 관심 따위 없고, 오로지 내 취향에 맞는 영화라며 어서 클릭하라고, 지금 당장 봐야 한다고 재촉한다. 클릭 한 번만 하면, 그게 내 취향이라고 냉큼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쯤 되면 취향의 주체가 누구인지 아리송해진다. 영화 한 편 값도 안 되는 저렴한 구독료만 내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저렴한 가격으로 넷플릭스에게 내 취향을 구독당하고 있었다.


‘000님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준비했어요.’


그렇다면 취향이란 것이 이토록 연약한 것일까? 취향이란 도대체 뭘까? 취향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이 나이 먹도록 모르겠다.’ 이런 신세한

탄을 당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피엔스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자. 취향이란 것, 내가 좋아하

는 것은 경험, 학습해야 알 수 있다. 넷플릭스가 우리에게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다만 주체

가 다를 뿐이다. 내가 해야 할 경험과 학습을 넷플릭스가 대신해준다.



마이크 월시의 2020년 책 <알고리즘 리더>에 보면 넷플릭스는 시스템이 인간들의 취향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넷플릭스 태거 Netflix Tagger에게 콘텐츠를 감상한 후 사용자의 취향과 연관된 데이터를 이용해 구독자에게 영화를 추천한다. 즉, 넷플릭스 태거를 이용해 머신에게 넷플릭스 구독자의 취향을 학습시킨다. 정작 이 취향 데이터 학습의 기원자이자 넷플릭스의 구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학습하지 않는데 말이다.


넷플릭스는 숟가락을 들고 쫒았다니며 내가 떠먹여 주겠다고, 일단 결제만 해! 그리고 입만 벌리면 돼! 라며 사랑스러운(?) 메시지를 보내온다.


나도 안 하는 내 취향 공부를 왜 넷플릭스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을까?




네스카페 돌체구스토의 뮤즈가 된 김이나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주제가 <취향과 커피에 관한 인터뷰>였다.


취향이란,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



취향이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넷플릭스는 나 대신 내 취향을 러닝, 그것도 머신을 동원한 딥러닝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고 있는 것이 된다. 취향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래서 취향만큼은 저격당하지 말자는 것이다. 취향은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도구다.


하지만 취향의 세계는 부부의 세계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저 관심이 있다고, 좋아한다고 해서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상미는 <취향>에서


미적 경험과 교육으로 연마되지 않은 취향이란 취향이라 할 수 없는 것


이며 취향이란 그 사람의 미적 방향성을 나타내 주는 ‘감성의 풍향계’라고 했다.


취향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저 얻어진 것은 취향이 아니고, 그저 유행일 뿐이다. 경험하고 학습해서 나의 것, 나를 정의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취향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취향 중에 하나로 ‘커피’에 관한 취향 클래스를 연 적이 있다.


아직 자신만의 커피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커피 취향을 알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조지 오웰은 ‘취향은 배워가는 것이다.’라는 근사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취향은 배워가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사람들은 커피 취향 클래스에서 커피 취향이 아닌 카페 창업을 배우고 싶어 했다. 수강생 중에 중견기업 간부가 있었는데 이분도 역시나 은퇴 후 카페 창업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분은 카페 창업이 목표라고 분명히 말하고는 클래스를 진행할수록 커피 배우는 게 너무 재밌다고 이걸 왜 이제 알았나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이 수업의 원래 목표인 커피라는 취향을 제대로 학습하고 가셨다. 여담으로 전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를 창업하셨다. 카페를 경영하진 않고, 전문 바리스타에게 모든 걸 맡기셨다.


내가 커피 취향 클래스를 연다고 하니, 전 커피 회사 입사 동기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축하보다는 염탐의 동기가 더 컸다는 거 나도 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수익 구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클래스가 궁금해서 참여해 보고 싶다던 지인 2명을 초대해 취향 클래스를 열어 준 적이 있다. 이들은 정말 커피의 취향이 궁금하다기보다 나라는 사람이 궁금했다는 것도 안다. 커피를 통해서 그들은 나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커피 취향도 슬쩍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커피 취향이 궁금하다면, 커피 취향을 가꾸고 싶다면, 시간과 돈을 들이기 바란다. 돈을 어디에 쓰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보인다. 커피에 쓰는 돈을 보면 당신의 커피 취향을 알 수 있다. 커피라는 취향을 가꾸려면 일단 커피를 마셔야 한다.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원두와 커피 도구를 사서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지만 모두 소비 즉,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커피가 취향이 되려면 돈을 들여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따로 내어 알아봐야 한다.


취향은 학습되어야 한다.


커피는 매일 마시고, 접근성도 쉽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의 커피 취향은 내가 찾고, 스스로 가꿔보자. 다른 건 다 늦었어도 커피는 지금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


커피 취향만큼은 저격당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