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부르고 커피는 대답하는 것처럼
독서는 책과 커피의 협업물
미안해요.
그럴 거 없어요... 이 고요가 보람이에요.
마음고생 많이 했을 테지요?
조금... 그러나 그 보람은 거기에서만 자라지요.
그래도 그 오랜 세월...
이제 이렇게 우산을 받고 있으니까 됐지.
비가 올 거 믿었나요?
부르고 대답하는 것처럼.
이윤기, <만남> 중에서
"부르고 대답하는 것처럼."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내 생에 남자와 여자로는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책과 커피로는 이토록 아름다운 만남을 여러 차례 겪었다.
부르고 대답하는 것처럼.
책이 부르고 커피는 대답하는 것처럼.
책은 부르고 커피는 대답하는 것처럼
책과 가장 좋은 만남이 있다면 커피 일 것이다.
책을 읽을 때 가장 절실한 건, 뭘까?
커피다.
커피를 마실 때 가장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
책이다.
나의 커피는 몰랐지만, 나의 책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이 부르면 대답할 커피를.
책을 읽는 동안은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다. 책 속엔 타인만이 존재한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독자는 자신을 잃고 타인 중의 하나가 된다. 작가가 꾸며 놓은 혹은 벌여 놓은 타자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는 순간 묘하게도 안정감을 느낀다.
'카르페 디엠'은 현자의 말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 수 없다면 우리의 안전지대인 소중했던 사람과의 추억 안으로 잠시 피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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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안전지대'가 어디인지를 기억하는 일이다.
-니나 상코비치, <혼자 읽는 시간>
작가는 안전지대 리스트가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내게 안전지대를 하나 주고 가셨다. 평일에는 데일리 라디오 생방송과 Tv 다큐멘터리 취재와 글, 구성, 주말에는 주말 라디오 프로그램을 오전 7시, 오후 5시, 밤 9시 3개의 프로그램을 뺑뺑이 돌던 20대의 나에게 외할머니가 물었다.
"너는 언제 쉬냐?"
누구도, 나의 쉼에 대해 언급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말에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그 말에 나는 꽁꽁 얼어버렸던 마음이라는 강이 사르르 풀려버렸다. 따스했다. 현재가 너무 힘들어 살 수 없을 때 외할머니와의 추억 속으로 피신한다.
어느 날은, 아무리 잘하려 애를 써도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때 나의 지도 교수와의 추억으로 달아난다. 늦깎이 대학원생이 된 나에게 지도교수는 학부 수업을 청강하게 했다. 출석은 기본이고, 리포트와 발표수업도 학부생들과 똑같이 해야 했다. 발표수업 1번도 만만한 나를 시켰다. 하지만, 나에게 발표수업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발표수업 준비양은 엄청났고, 나는 대학원생이라는 이유로 조별 발표수업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너무도 만족스럽지 않은 발표수업, 하루만 더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발표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의 한 마디.
"얼마나 더 잘하냐? 됐다."
그 꼬장꼬장한 양반이, 이렇게 말 한 건 실은
"잘했다."
라는 의미다. 설령, 내가 곡해했더라도 그 순간 나는 교수님의 그 말로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 교수님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내가 덜 초라해진다.
오늘 저녁 졸여진 심장과 짓이겨진 위를 생각하며 난 속으로 말했다. 그래, 아마 이게 인생일 거야. 숱한 절망, 그러나 그 순간에도 시간이 더 이상 같지 않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고. 음악의 음들이 시간 속에 일종의 괄호를, 일종의 휴지를 만드는 것처럼, 여기인데도 저기를, '다시는' 안에 '늘'을 만드는 것처럼.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이런 문장을 읽으면 카프카가 말 한 대로 책은 도끼가 되어 정수리를 내려 찍는다. 이때는 책을 덮어야 한다.
소포클래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말한다.
"추적하는 것은 잡을 수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달아나기 마련입니다."라고. 안전지대 리스트를 달아나지 않도록 뇌 속에 리스트 업해두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서 어느 때고 꺼내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으니. 노트에 적고, 또 적어두며 추적한다.
책의 취향이 커피
취향이란, 사전적 의미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나 경향이다. 책을 읽으면 커피가 마시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그러는 게 아니다. 책이 그러는 거다. 책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경향이 생기는 거다. 내가 영매라도 되는 양, 나를 이용해 커피를 부르는 것이다.
You need a break, grab a coffee!
책은 말한다. 잠시 쉬면서 커피 한 잔 하라고.
폴 오스터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서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 모른다는 이야길 한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걸 안다면 아마도 그 일을 할 욕구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폴 오스터
모든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이며,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 대화를 나눠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폴 오스터
소설이 작가와 독자의 협업물이라면 독서는 책과 커피의 협업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책과 커피라는 낯선 두 세계가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독서의 세계일 터이다.
인간의 언어를 쓰는 이상 민이도, 그리고 너도 당연히 이 이야기의 세계에 속해 있어.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직 미완성이듯, 민이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니, 이렇게 끝나서는 안 돼.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야.
-<작별인사>, 김영하
책의 이야기도, 커피의 이야기도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읽을 책들이, 아직도 마실 커피가 많으니.
책은 부르고 커피는 대답하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