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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23. 2023

친구 사이에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 #1

집 나가면 개고생



스에오카 요시노리의 '부의 열차에 올라타는 법'에 보면, 인간관계는 돈을 빌려주는 순간 부정적인 에너지가 흐른다고 한다. 


'친구 사이에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이 아프다.




대학 원서지원을 앞두고 부모님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어려웠던 가정 형편상 부모님은 집근처 지방국립대를 가시길 바라셨고, 나는 무조건 서울로 가고 싶어했다. 지방의 청소년에게 서울은 마냥 꿈과 희망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결국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지원했다. 숨어서 논술 시험을 보러 다녀오고 한 군데에 합격했다. 몰래 혼자 원서를 쓴 것도 기가막힐 일인데 합격 소식과 함께 등록금 고지서를 다짜고짜 내미는 자식에게 부모님은 기함하셨다. 엄마는 대화를 하지 않으셨고 아빠는 마주칠 때마다 화를 내셨다. 난 결국 집을 나와 친구집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등록금 납부 마지막 날 사정사정해서 결국 등록금은 납부해주셨다.




입학을 두 달 정도 앞 둔 어느 날 저녁 나는 짐을 미리 싸서 집 앞에 놔두고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갈등상황을 못 견디고 탈출했던 것 같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몸소 시전했다. 처음에 머문 곳은 학원을 같이 다닌 언니의 집이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곳인줄 알았는데, 알바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언니의 어머니가 언니의 자취집에 무전취식(?)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셔서 눈치를 보다가 천안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 집으로 옮겼다. 서울에서도 알바를 제대로 구하지 못했는데 천안이라고 제대로 구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집 울타리 밖의 생활은 처음이었고 우리의 겨울은 추웠다.




어찌저찌해서 학교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학교를 갔다. 그런데 내가 상상하던 대학 캠퍼스와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생활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학사장교 필수과목을 수강신청이랍시고 도와주는 선배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괘씸하지만 그때는 멋도 모르고 수업까지 참여했다.(수업에 참여한 학사장교 여러분들의 신기한 시선과 교수님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OT는 못갔지만 신입생 환영회도 참여하고 나름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당시에 낯선 타지 생활의 고단함과 돈의 무서움에 대해 뼈저리게 깨달아가며 지쳐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 나가서 강의를 듣고 돌아와서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 들어오면 매순간 회의감에 젖었다.(대학교 다니는 내내 이 회의감은 나를 지배했다.) 돈이 없는데, 현재 이렇게 살고 있는데 강의 듣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가 아닌 일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고 결국 자퇴를 했다.




1년을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살았다. 모은 돈은 없다. 시급 4000원으로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아침 연장하면 오전 11시까지 일했다. 그럼에도 월세와 휴대폰 비를 납부하고 나면 수중에는 한 달 생활비 정도만 남았다. 그럼에도 그 때 친해진 사람들은 다 비슷한 유형이라 나쁘지 않게 보냈다. 옷은 지하상가에서,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은 대패삼겹살로 대체하며 보냈다. 참 희안한 일이지만 몇 푼 못 버는 우리들은 밥 한 끼 먹어도 너도나도 사겠다고 나섰었다. 오늘은 네가 내일은 내가 이런 식이었다. 돈 거래도 활발했다. 서로 다른 아르바이트 급여날로 인해 몇 만원씩 오가는건 흔한 일이었다. 각자의 급여날은 입금과 동시에 채무정산을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일 끝나면 국밥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낙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본업으로 돌아가게 된 건 뜻밖의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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