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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26. 2023

친구 사이에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 #2

사채업자의 충고


어느 날, 우리 사이에서 '일수오빠'로 통하는 오라버니(별로 친하지 않은데 오빠라는 표현을 쓰려니 오라버니로 대체)가 밤늦게 술 한잔 하자며 불러냈다. 그 사람은 흔히 말하는 일수를 걷으러 다니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항상 옆구리엔 클러치, 클러치 안엔 삼단봉이 들어있는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늘 일이 끝나고나면 우리가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에 와서 혼자 500cc 한 잔을 시키고는 내내 수다 떨다가 취해서 가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삼단봉을 들고 다니지만 수면제도 같이 들고 다닐 정도로 본인이 하는 일이 영 적성에 맞아 보이지않는 수다 떨기 좋아하는 흔한 20대 남성처럼 보였다. 거의 매일 우리 가게에 오니 인사는 하고 지냈지만 그의 넘치는 수다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나를? 그것도 술을? 의아해하며 길을 나섰다.




술 한잔 하자고 해서 가게에서 술을 사주는 줄 알았는데 그는 편의점에서 과일소주를 한 병 사더니 빨대를 꽂아 들고 나섰다. 남의 빚은 받으러 다니지만 정작 본인 주머니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산책을 하자고 하더니 앞장을 선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하면서 뒤따라갔다. 처음엔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원래 대학생이었었다고 그랬지?"


"네. 그런데 그만뒀어요."


"부모님이랑은 연락하나?"


"연락 안 한지 좀 오래됐어요. 왜요?"


"부모님이랑 다시 연락할 수 있으면 연락해. 다시 학교도 가."


"네? 갑자기 왜 그런.."


"넌 여기랑 안 어울려. 계속 보니까 이런데 있을 애가 아니야. 공부도 다시 하고 정상적으로 살아."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녘 국밥 한그릇을 먹고 헤어졌다.





자세하게 풀어놓을 순 없지만 우리랑 있을 땐 마냥 히히덕거리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일명 사채업자 라는 명성(?)에 걸맞은 모습도 여러차례 봤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터지곤 했다. 사채업자, 나이트 웨이터, 호스트, 노래방 도우미 등 다양한 군상들과 함께하는 하루살이의 아르바이트생의 나날들은 생각보다 다이나믹했다. 허구헌날 테이블은 뒤집어지고 집기들은 깨져나가고 심한 날엔 피가 튀기는(?)날도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체감했다. 나는 비닐하우스 속 화초였고 지금은 태풍이 비닐하우스를 날려버린 상황이라는것을. 그러던 중 당시에 가장 나와 맞닿아있지 않을 것 같았더 사채업자 오라버니의 충고는 제법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직접 연락이 안되니 그나마 연락을 했던 동생을 통해 끊임없이 연락을 시도했던 부모님이셨다. 자퇴한 학교에서 재입학 관련해서 연락을 해 이 기회에 다시 돌려놓고 싶으신듯 했다.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다시 학교에 가겠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고 올라오신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약 1년만에 고속터미널 고객 대기석에서 마주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시자마자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난 일부러 더 밝고 살갑게 엄마를 대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모습이 너무 추레해서 눈물이 나셨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 나름 가장 멀쩡한 옷으로 화장까지 하고 나갔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여실히 드러났었나보다.

엄마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재입학 신청 후 월셋방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살이 아르바이트생의 삶은 정리되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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