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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27. 2023

친구 사이에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 #3

언니는 왜 항상 돈이 없어?



"워니야- 미안한데 5만원만 빌려줄 수 있을까? 내가 알바비 들어오면 바로 입금해줄게. 매번 미안해."


"친구끼리 고작 5만원에 뭐가 미안해. 괜찮아 천천히 갚아."




통화를 끊고 적막한 방에 수치심과 속상한 마음이 떠다닌다.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부모님께서 얼마간의 돈을 보내주시긴 했지만 생필품과 전공, 교양서적을 사고 나니 벌써 얼마 남지 않아버렸다. 서둘러 학교 앞 호프집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나름 1년간 일하고 돌아와서 경력이 있으니 아르바이트는 수월하게 구해졌다. 다만 급여를 받을때까지 생활한 돈이 없다. 라면과 김을 잔뜩 사서 고시원에서 제공되는 밥과 김치에 먹다가 물려서 생라면을 먹기 시작한지 이틀이 되었다. 결국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학생에게는 제법 큰 돈이었고 그만한 부끄러움도 내 몫이었다.




평일엔 수업 끝나고 호프집에서, 주말엔 쌀국수집에서 열두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늘 돈이 없었다. 남들 입는만큼 입고 싶은 욕심이었어서 그럴까. 그렇다기에는 늘 보세옷과 가방을 들었다. 구내식당이 아닌 학교앞 국수집에서 밥을 먹어서 그럴까. 카페모카를 한 잔씩 사먹어서 그럴까. 가벼운 지갑은 끝내 자책으로 이어졌고 집안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나이차이가 제법 나는 동생은 한창 꾸미고 싶고 브랜드에 예민한 중학생이었다. 


"언니, 나 뭐 사야하는데 2만원만 보내줄 수 있어?"


"미안한데 언니가 돈이 없어. 알바비 들어오면 보내줄 수 있는데 급한 일이야?"


" ...아냐. 그런데 왜 언니는 아르바이트도 하는데 항상 돈이 없어?"



아직 어린 동생의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아픈 말이다. 그러게 난 일도 하는데 왜 돈이 항상 없을까. 이미 과내에선 '알바머신'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던데. 왜 항상 돈이 없어서 동생이 보내달라는 소액도 못 보내줄 형편이고 왜 매번 친구들에게 빌려서 꾸역꾸역 버텨나가야하는걸까. 동생의 한 마디에 그 날 하루종일 마음이 고단했다. 




더욱 맹렬히 일을 했다. 학기 중엔 평일 주말 알바를 병행하고 방학 땐 열두시간씩 주 6일 정직원으로 일했다. 조금 지나고는 낮에는 학교를 저녁엔 사진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때그때 약간의 여유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있을뿐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친구 및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일은 잦았고 꽤 오랜시간동안 이런 생활은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에게 태그가 붙기 시작했다. 갚지 못하는 돈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과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친구 머리 위에는 'xxx원' 태그가 붙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인데 채무자로서 저절로 수그러드는 입장이 되곤했다. 군말없이 빌려주는 친구들이 한없이 고마웠고 항상 미안했다. 간혹 거절당할 때에는 웃기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군말없이 빌려주고 막연히 기다려주는 것, 그게 얼마나 큰 마음인지 깨닫게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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