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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30. 2023

J에게

동료 J의 존재


J는 내 후임이었다. 연예인만큼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반짝이는 피부, 흩날릴 것 같은 체형덕에 그녀의 입사는 회사 내에 파란을 일으켰다. 연예인 외에 이렇게 얼굴을 작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신기해서 자꾸 얼굴을 쳐다보게 됐다.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좋았다. 밝고 쾌활했고 무엇보다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반전인 면모도 있었는데 예쁜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구수한 국밥집 할머니 같은 말투였다. 예쁘장한 외모에 털털한 성격, 구수한 말투까지 사랑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무심한 성격, 악의는 없지만 가끔 툭툭 내뱉는 말투, 심한 낯가림이 있는 내가 그녀와 친해지게 된 건 순전히 선임과 후임의 관계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은 성씨를 가진 우리는 자매로 불리며 회사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했다. 무심하면서도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나는 타인의 말에 자주 상처받고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다른 말로 핵심은 명료하게 그러나 상처받지 않게 조언해 주었다. 그런 그녀의 존재는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매 순간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 팀에는 여왕벌 같은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 관한 소문의 주동자였으며 그로 인해 나는 크게 앓았다.((자세한 내용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참고) 맞서서 대응을 하는 대신 침묵을 택한 대가로 매일 앓는 나를 그녀는 때로는 화를 내주고 때로는 위로해 주며 늘 곁에 있어줬다.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연예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게 만드는 그녀는 타고나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표현하면 우습지만 신규 여왕벌의 등장이었다. 팀의 중심은 J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이는 기존 여왕벌의 불안을 일으켰다. 




어느 회식 날이었다. 기존 여왕벌 언니가 나에게 장난이랍시고 고추냉이로만 가득 찬 쌈을 먹였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아무 말하지 않고 웃었다. 이런 장난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때였다. J는 정색하며 지금 뭐 하는 거냐며 크게 화를 냈다. 사람들이 장난인데 왜 그러냐 했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그때의 일을 가끔씩 언급하며 화를 내곤 했다. 그런 그녀가 정말로 고마웠다.




앓기만 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취미를 가져보는 건 어떤지 운동을 해보는 건 어떤지 끊임없이 조언을 해주던 그녀였다.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다니는 피티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등록을 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J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 준 사람이다.(그 이후로 나는 바디프로필을 찍게 되고 전혀 다른 인생의 막을 시작하게 되었다.)




딱 어울리는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그녀를 본다. 가장 어두웠던 순간 빛을 비춰준 등대였던 그녀다. 그녀에게는 이제 그녀의 등대가 돼준 남편이 옆에 든든하게 서있다. 그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제 '아주미'가 된 그녀와의 연락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녀답게 씩씩하고 쾌활하게 삶의 모든 순간을 마주하며 걸어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J를 생각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웃음이 난다. 


웃음 요정 J, 늘 웃음이 함께하는 인생이길 바라요-. 잘 살아요.






꼭 전 남자친구가 쓰는 글 같지만 정말이지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애저녁에 퇴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만큼 고마운 이 사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J를 알게 되고 가장 크게 변한 건 외모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삶에 대한 시각자체가 바뀌게 된 계기를 준 사람이다. 정말 정말 고마운 사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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