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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l 05. 2023

그런 마음을 알까

목화와 솜사탕



"설렘이 없이 어떻게 사람을 만나요? 그래도 설렘이 있어야 만날 수 있지 않아요?"



우리 팀 막내 루피가 묻는다. 청춘 소녀인 그녀는 연애란 주제에 호기심이 많다. 

맞아. 설렘이 없이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설렘과 두근거림, 불같이 타오르는 마음, 함께 있기만 해도 몽글몽글 솜사탕처럼 피어오르는 마음. 

나에게도 그런 연애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연애치고 단 한 번도 끝이 좋았던 적이 없다. 

끝이 좋은 연애가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웃으면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헤어진 연인들도 있었다. 



 

목화와 솜사탕.

닮은꼴이지만 손안에 쥐는 순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내게는 그런 두 가지 모습의 연애가 있었다.




솜사탕 같은 연애. 

보기만 해도 예쁘고 조금씩 먹으면 달콤하지만 욕심부리는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첫눈에 반했지만 단번에 외면당한 첫사랑('비가 오는 날엔' 참고), 바람으로 끝나버린 어린 날의 연애, 첫사랑만큼 사랑했지만 역시나 바람과 함께 잠수이별로 끝나버린 어느 날의 사람. 쓰는 이 순간에도 마음이 쓰라리다. 특히 바람피운 것도 용서했지만 잠수를 탄 데다 정리했다던 그 여자와 함께한 사진을 목도하는 것으로 이별이 된 그 연애 이후로 2년간은 사람을 못 만났다.


형체도 없이 사라질 만큼 욕심부렸던가 하고 자문해 보지만 그건 아니다. 다만 욕심이 아닌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크기였다.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이상하게 내게만 큼은 손안에 든 유리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일상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연애를 할수록 자꾸만 내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내가 가진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니 그만큼 상대에게 더 기대하는 바가 커지고 기대는 게 심해졌다. 결국은 그러다 병은 깨지고 말았다. 깨진 병은 다시 붙이기 어려웠고 그만큼 깊은 상처를 남기고 회복하는데 오래 걸렸다.




그에 반해 무난하게 유지가 잘된 연애들도 있었다. 불타는 마음은 아니지만 서로가 적당한 호감을 가지고 적적정선의 거리를 유지하며 만난 사람들. 


목화솜과 같은 연애였다. 손에 쥘수록 찬찬히 온기가 퍼져 나오는 그런 연애. 


불 같은 사랑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깊어지고 안온해지는 연애. 이런 연애들은 오히려 나를 지탱하는 힘이 돼주었다. 내 일상을 유지하는데 무리를 주지 않았고 나 자신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이상 없었다. 이런 연애의 끝은 서로의 앞 날을 응원하며 뒤돌아서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아쉬움은 크지만 생각할수록 아프거나 괴롭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연애가 끝이 나면 다음 연애의 반성의 기회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굳이 따지자면 조금 더 감정적인 연애 vs 이성적인 연애 일 것 같다.

연애를 이성적으로 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더 이성적으로 관계를 생각할 때가 더 나에게 맞는 것 같다. 불타는 마음보단 안온한 온기가 더 좋다. 어떤 일이든 급하게 마음먹으면 되지 않는 것처럼 연애 또한 마음이 앞서게 되면 다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순간부터는 목화솜 같은 연애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마음이 다치지 않을 적정선의 거리, 서로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는 영역, 배려 뒤에 숨어있는 서로에 대한 관심의 농도. 내가 생각하는 목화솜 같은 연애의 일면이다.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상처받는 게 두려워져서 안정적인 연애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비겁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다시는 불같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말의 아쉬움도 느끼기도 하고. 그래도 여전히 굳이 선택하라면 목화솜 같은 연애가 좋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더 이상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





연애 그리고 연애관에 대해 풀어놓다 보니 다른 이들의 생각도 문득 궁금해졌다. 

솜사탕과 목화솜. 어떤 선택을 내릴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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