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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n 20. 2023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2

술에 취해 잠드는 밤




처음엔 하소연을 했다. 

제법 친하고 평소 서로의 속사정도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 동료들과 술 한 잔 나누면서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소문이 있는데 알고는 있는지, 내가 그녀에게 직접 말하는게 좋을지 등 물어보며 말하게 된다면(전면 승부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앞에서 터트리기) 과연 이 사람은 유치하지만 내 손을 들어줄지 속으로 가늠하면서.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의 반응만으로도 내게는 참담한 패배였다.

길길이 화를 내면서도 전면 승부를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동료도 있었다. 그래도 나를 많이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안다면 내가 절대 그럴리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분명한 태도에 마음이 데였다.



시간이 흘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상처에 술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안주 없이 벌컥벌컥 들이키는 술은 식도를 타고 가슴 어딘가에 찌르르 고통을 주며 흘러들어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지나치게 믿었다는 자책감 등은 술과 함께 사라지고 술에 취한 순간만큼은 웃을 수 있었다. 



웃고 떠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모자란 술도 한가득 봉투에 담아서. 

그리고 혼자 남겨진 순간, 울음이 터진다.

심장이 쥐어짜여지는 기분이다. 인생이 혼자 걸어가는 길이라는 걸 알았지만 새삼스레 이토록 와닿을수가 없다.



눈물에서 술냄새가 날 때쯤 잠에 들었다.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아니, 미쳐가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술에 절여진 채로 출근을 하고 술이 깰때쯤 다시 절여질때까지 술을 마시는 나날들이 지속됐다.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무서웠다. 퇴근 전까지 어떻게든 누구라도 붙잡고 술을 마셨다. 기억이 끊기는 순간이 종종에서 매일로 바뀌어갔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여느때와 같이 잔뜩 부은 얼굴로 화장실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은 알콜중독자의 그것이었다.마음고생으로 줄었던 체중은 거나한 술과 함께 거대한 몸뚱이로 변해있었다. 드디어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이 여느 날과는 조금 달랐다. 조심스럽게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흔쾌히 함께 하자고 했다.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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